햇살이 너무 투명하게 눈부셔 한톨이라도 버려질까 아까운 마음으로 가득했던 오월의 어느 날,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서 만난 것은 두가지 얼굴이였다. 아득한 시공을 거슬러 만난 고려시대의 숨결과 함께 느껴지던 쇠락하고 지친 오랜 세월의 그림자, 그리고 현재라는 '지금' 남한강의 속살이 갈기갈기 파헤쳐 얼룩지고 있는 4대강 조성사업 현장의 비정한 현실, 오래전 역사의 발자취가 느껴지던 기품있고 단아했던 고찰은 간 곳 없고, 소란스럽게 흐트러진 신륵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천박한 풍경만이 씁쓸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0 신륵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