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인물 산책

칼럼 매캔 (소설가)

금동원(琴東媛) 2010. 6. 7. 15:02

■가끔은 가슴 저미게, 가끔은 웃음짓게 하는 게 문학

 

1974년. 완공을 앞두고 있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에 줄을 묶고 한 시간 동안 그 위에서 뛰고, 춤추고 걸었던 사내가 있다.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을 기억을 남긴 예술가 필리프 프티. 그는 줄에서 내려오자마자 경찰에 체포된다. 만약 줄에서 떨어졌다면, 그 밑을 지나던 사람을 덮쳤다면, 끔찍한 범죄가 될 수 있었으니까. 세기의 예술이 행해졌던 세계무역센터는 2001년 9·11 테러로 붕괴된다.

칼럼 매캔(45)의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뿔)는 30여 년 전의 뉴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구든 그의 소설에서 위험한 현대사회를 읽게 된다. 뉴욕이란 소설적 공간을 뛰어넘는 문학적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매캔은 위대한 소설가의 꿈을 안고 20대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장편 『빛의 이편』 『졸리』 『댄서』 『송독』 등과 단편집 두 권을 남겼다. 아일랜드의 여러 문학상을 받았고, 2005년엔 그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 나라의 모든 것은 반드시’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2009년 출간된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다. 그 해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주는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수상했고, 아마존이 선정한 ‘2009 최고의 책’ 1위,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까지 기록했다. 2004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에 ‘9·11 테러위원회 보고서’가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9·11은 미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상처였다. 매캔의 소설은 9·11을 다룬 문학작품으로는 가장 성공한 축에 속한다. 전세계 29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작가는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벌어진 줄 위의 곡예를 지켜보던 수많은 인간군상의 삶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베트남전에서 아들을 잃은 엄마, 가난한 자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사제, 대를 이어 거리의 창녀가 된 흑인 모녀, 줄을 탄 사내를 재판해야 하는 판사 등등. 전쟁·종교·인종·계급·가족 등 인간의 삶을 옥죄는 여러 요소에 대한 속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이민자이자 이방인이었던 작가의 체험이 반영된 듯, 주류 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이방인의 서글픈 삶을 들여다본다. 우리보다 미국이 먼저 앓고 지나갔을 다문화·다인종 사회의 진통, 전지구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 등이다. 작가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칼럼 매캔은 “소설을 쓰면서 한 국가가 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끔찍한 비극에서 회복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 초 부산에서 2주 동안 여행한 적도 있다. [도서출판 뿔 제공]

- 9·11 직후 소설을 구상했다. 줄 타는 사람의 일화를 갖고 온 계기가 있다면.

“장인 어른은 무역센터에서 탈출한 운 좋은 사람 중 하나였다. 재를 뒤집어 쓴 장인을 보고 딸이 ‘할아버지가 속속들이 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한 국가가 속속들이 타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9·11 이후 모든 사람의 가슴을 저미는 글을 쓰기란 거의 불가능해졌음을 알았다. 그날 아침, 가슴이란 가슴은 모두 산산이 부서져버렸기 때문이다. 9·11에 대해 보다 시적인 차원에서 쓰고 싶었다. 예술(줄타기)과 반(反)예술(파괴, 곧 쌍둥이 타워의 붕괴)을 대비시키며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 중산층보다 소수자·약자의 상처에 더욱 주목한다.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느냐가 지속적인 관심사다. ‘이야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 가운데 가장 민주적인 것이다. 그래서 항상 어두운 구석에, 익명에 가까운 후미진 곳에 눈길을 집중해왔다. 그런 곳이야말로 가장 심오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문학의 출발점도 그런 곳이다.”

- 1970년대의 미국과 현재를 비교해보자.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만큼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오바마가 이런저런 실패를 겪었지만 여전히 거대한 불빛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오만함, 군사적 무력행사, 미국이 세계의 흐름을 지배한다는 사고방식 등 미국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내가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고 빛 속에서 어둠을 발견하는 일은 작가의 책무다.”

- 베트남전에서 아들 잃은 어머니를 그린 장면을 보며 천안함 장병들의 가족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한국민 모두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자식을 잃은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나는 소설과 시가 독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문학이란, 좋은 글이란 공감과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어려움에 대해 상상하려 노력할수록 우리는 더욱 인간적이 된다.”

- 믿음·종교에 대한 메시지도 읽힌다.

“인간 영혼의 존엄성을 믿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톨릭이든 불교신자든 무신론자든 공통 분모는 근본적인 선함에 대한 믿음이다. 나는 낙천주의자다. 세상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보았기에, 이젠 세상이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 대학에서 문학창작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문학은 무엇이라고 가르치나.

“문학의 역할은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break)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어쩌면, 가끔씩은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다.”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인물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리드리히 니체  (0) 2014.12.08
니체(1844-1900)  (0) 2014.11.29
2009 노벨 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문학 고백   (0) 2009.11.10
다산(정약용)은 말한다  (0) 2007.07.27
박경리선생님  (0) 2007.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