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평> 시향, 매향, 스승의 향기
-이혜선(시인, 문학평론가)
...(상략)...
끝으로 두 가지의 특집에는 해당되지 않는 시 한편을 더 보기로 한다.
신호등 앞 건널목으로 위태롭게 건너오는 너는 누구냐
날 수 있었던 습성은 어디로
뒤뚱뒤뚱 가냘픈 다리에 온몸을 의지한 채
보도블럭 사이에 떨어진 썩은 먹이를 찾아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몸은 이미 과체중이다
...(중략)...
더러운 도시의 뒷골목을 후비고 다니는
버려진 무법자
골치 덩어리의 오염에 찌든 생명체
위로와 안식의 조건은 상실한 지 오래
파고다 공원에 가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한 때는 푸른 꿈을 싣고 날았던
날개 꺽인 백발의 비둘기들
-금동원「변화의 뜻」부분
본질을 잃어버리고, 꿈을 잃어버리고 전락한, 변화된 도시의 비둘기를 등장시켜서 알레고리기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1~3연에서 '더러운 도시의 뒷골목을 후비고 다니는/ 버려진 무법자'로 비유되는 비둘기의 변화된 생리를 묘사와 진술로 표현해 나가다가 4연의 끝에 가서 돌연 '파고다 공원' 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거기가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고 '날개 꺽인 백발의 비둘기들'과 앞에 등장하는 실제의 비둘기들를 동일시하면서 '한 때는 푸른 시절의 꿈을 싣고 날았던', 지금은 백발의 초췌한 모습으로 하루의 쉴 곳을 찾아 날마다 파고다 공원으로 출근하는 노인들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곧 이어서 어둡고 치욕에 찬 분위기를 벗어나 '불길하고 무거운 회색빛의 우울' 을 날려버리고 저 높은 푸른하늘을 향해 '날아보리라' 고 시적 화자가 일인칭이 되어 희망을 노래한다. 의심하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고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펴고/ 두 팔 힘껏 펼쳐 껑충 뛰어 올라' 유유히 날아오르는 희망의 실현을 노래한다.
다소 관념적인 표현이지만 '변화의 뜻' 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여 주저앉지 않는 힘, 현실에 져서 절망하지 않는 힘, '날렵하고 날카로운 위엄을 되찾' 을 용기, '최초의 본질' 을 찾아 사라진 꿈을 찾아내자는 권유 등으로 이 시는 긍정적인 힘으로 손길을 내미는 데서 평자와 독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문학이 독자를 위무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작품이다.
- 『지구문학』 2015, 가을호(통권 71호) p256~ p257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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