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정초일 역/ 푸른 숲( (1999년)
창백하고 메마른 얼굴에 퀭하고 몽상적인 눈빛의 소유자로 현대인의 존재 상실과 회의, 불안을 심층적으로 다루어 온 프란츠 카프카. 이 책은 그가 아버지를 상대로 쓴, 그러나 끝내 보내지 못한 한 통의 편지이다. 이 장문의 편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문학성과 함께, 그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와 동기들을 숱하게 담고 있다.
1883~1917) 유대계 독일 작가.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소외, 허무를 다룬 소설가이다. 그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황 설정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끊임없이 추구한 실존주의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20세기 세상 속의 불안과 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이룩했다는 평을 받는다.
프란츠 카프카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프라하의 독일어를 쓰는 중간계급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수성가한 상인으로 기골이 크고 독선적이었던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했다. 현실적이고 빈틈없는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의 모습이 몽상가에 불과했으며, 어린 카프카의 눈에 아버지는 지독한 일벌레에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사업의 성공에만 몰입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신분상승을 위해 어머니조차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그는 줄곧 남의 손에 의해 키워졌고, 그의 나이 두 살 때, 그리고 네 살 때 동생인 게오르크와 하인리히가 태어났지만 곧 죽고 마는 일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인 1889년 여동생 엘리가, 또 1년 뒤에는 발리가, 그리고 그 2년 뒤에는 오틀라가 태어나지만, 이 세 자매 역시 제2차 세계 대전의 광기에 희생당하고 만다. 아버지와의 불화와 동생들의 잇단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는 불안정한 유년기를 보낸다.
그의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상인의 기질이 보이지 않자 독일계 인문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킨다. 이곳에서 카프카는 '루돌프 일로비, 시오니스트 후고 베르크만, 에발트 펠릭스 프리브람, 오스카 폴락 등 평생을 두고 교유하는 몇 명의 중요한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1901년 프라하의 카를 페르디난트 대학에 진학한 카프카는 주로 문학과 예술사 강의에 흥미를 보였으나,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1906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법원에서 1년간의 수습 기간을 마친 뒤 일반 보험 회사에 입사한다. 1908년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상해 보험 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로는 죽기 2년 전인 1922년까지 그곳에서 법률고문으로 근무하는 한편, 오후 2시에 퇴근하여 밤늦도록 글을 썼다.
이 무렵 유럽의 노동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카프카는 공무 출장과 노동자들과의 접촉 등 이곳에서의 업무를 통해 관료기구의 무자비성,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와 이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내면을 속속들이 꿰뚫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에서 개인의 소외와 무력감에 대해 보여주는 깊은 통찰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19년 각혈을 했으나 의사의 진찰을 거부하다 증세가 악화되어 결국 요양소와 여동생들의 집을 전전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그는 죽을 때까지 함께한 도라 디만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비로소 일찍이 맛보지 못한 삶의 애착과 행복을 경험한다. 도라는 그의 곁을 밤낮으로 지키며 간호했지만 1924년, 병약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출세,결혼 등의 중압감에 쫓기며 글을 쓰다가 폐결핵에 영양부족까지 겹쳐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카프카는 평생 불행하게 지냈다. 프라하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생전에 카프카는 출판업자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발표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꺼렸으며, 발표된 작품들도 대중의 몰이해 속에 거의 팔리지도 않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유서에서 자신의 모든 글을 불태워줄 것을 부탁했을 만큼 쓰는 것 외의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타계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12년에 『실종자』(후에 『아메리카』로 개제), 『변신』을 쓰기 시작했고, 1914년에는 『유형지에서』와 『심판』 집필에 들어갔다. 1916년에는 단편집 『시골 의사』를 탈고했다. 1917년에 폐결핵이 발병하여 여러 곳으로 정양을 다니게 되고, 1922년에 『성』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결국 폐결핵으로 1924년에 빈 교외의 키어링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변신』 외에 대표작으로 『심판』 『성城』 『실종자』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등 다수가 있다.
○책 속으로
제 글쓰기의 주제는 아버지십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푸념하지 못하는 것들만 글에서 털어놓았을 뿐입니다. 글쓰기는 아버지로부터의 작별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이 작별은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것이지만, 제가 정한 방침에 따라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글로 쓴 것들은 모두가 변변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제 삶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이야기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있는지 없는지조차 식별하지 못할 만큼 하찮은 일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쓸 가치가 있었던 이유는 오직 그것이 제 어린 시절에 예감으로서, 그후에는 희망으로서, 또 그후에는 절망으로서 저의 삶을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p.59
아버지께선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리려 할 때 신기하게도 그 내용을 미리 감지하시는 것 같아요. 가령 얼마 전에도 이런 말씀을 제게 하신 적이 잇지요. '나는 늘 너를 좋아했단다. 겉으로는 다른 아버지들이 자기 자식을 대하듯 다정하게 해주지 못했지만, 그건 다만 내가 다른 아버지들처럼 가식적인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아.' 아버지, 저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저에 대한 아버지의 따사로운 속마음을 의심해본 적이 없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말씀만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가식적으로 행동하실 수 없는 분이에요. 그 말씀이야 옳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는 아버지들의 다정한 행동이 가식적이라고 단언하신다면, 그 주장은 아마 재론의 여지가 없는 독선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독선이 아니라면, 그 주장은 우리 사이의 뭔가 잘못되어 있고, 그 원인-책임이 아닌-의 한쪽이 아버지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고 있지요. 제 생각으로는 후자가 진실에에요. 아버지께서도 사실 그건 그러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버지와 저의 생각은 일치하는 겁니다.--- p.17-18
따라서 가족이란 하나의 유기체이긴 하지만 극히 복합적이고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유기체이다. 그러므로 다른 유기체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균형상태를 추구하지. 앞에서 말한 저 '가족이라는 동물적 유기체'는 균형 잡힌 상태를 필요로 하지.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모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면 마침내 진정한 균형이 가능해진단다. 동시에 그것은 사랑의 균형이야.--- pp.177-185
○출판사 리뷰
아버지에 대한 증오인가, 사랑인가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곧 세계였으며,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분”이었다.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지배종속 관계에서 그는 아버지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은밀히 모색하는 한편 그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었다. 그런 카프카가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지 36년 만에 최초로 대화를 시도한다. "왜 아버지가 두렵다는 말을 하느냐고 물으셨지요?"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편지에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등장한다. 이 글은 분노의 발산이 아니라 분노에 대한 보고이다. 그가 쓴 것은 아버지의 가슴에 대고 터뜨리지 못했던 불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푸념하지 못하던 것들"이다. 이것을 그는 가능한 한 감정을 절제하고, 논리적으로 빈틈없이 서술한다. 편지는 분량과 내용 모두 충격적일 정도로 흥미롭다. 줄지어 등장하는 아버지의 가학적 언행, 그리고 한이 맺힌 듯한 카프카의 회상은 우리를 당혹스럽게도 만든다. 그러나 이 편지는 결코 억압과 분노만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이 편지는 애증이라는 복합적 감정의 산물이며, 편지가 작성된 힘의 원천은 깊은 사랑과 그만큼 깊은 미움이며, 이 두 가지의 상호충돌이 그 계기이다. 그가 거듭 말했던 "편지에 걸고 있는 온 희망"은 무엇보다 부자간의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자립적 존재 간의 대등하고 화목한 관계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애증으로 얽힌 부자 관계에 대한 극한의 탐색
이 편지는 고유한 용도를 갖는 사적인 서한인 동시에 자전적 에세이다. 그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진술은 그의 작품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들, 즉 교육, 사업, 유대주의, 작가의 실존, 직업, 성과 결혼 등의 문제를 차례로 짚어가며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카프카의 난해한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이 자전적 성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장 중요한 자전적 진술로 평가되는 이 편지가 그의 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카프카 문학의 난해성도 이 편지를 읽으면 서서히 단초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인 《소송》《성》《심판》에 등장하는 불가사의한 권력의 힘과 맹목적으로 지배당하는 개인의 실체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편지는 치밀한 구성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이고 흥미로우며, 평이할 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탄식하게 할 만큼 감동적인 동시에 소중한 통찰 을 선사한다. 수십 년 애증으로 굴곡진 부자 관계를 포함해서 한 인간과 다른 한 인간의 관계에 대한 글로서, 이 편지만큼 '극한에 가깝게 정밀한' 탐색은 또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독자 리뷰]
■어린 카프카를 만났다
[카프카의-] 이 말이 이 책을 한눈에 들어오게 했다. 예전에 아주 우연히 [변신]을 붙들었을때, 앞 표지의, 무언가 호소하는 느낌의 남자와 눈을 마주했을때 느꼈던 약간의 긴장과 함께 오는 두근거림을 또다시 느끼고 있었다. 카프카.프란츠 카프카를 이야기하자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변신]이다. 나와 그를 만나게 했으며. 그의 심리가 가장 여실히 들어난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에게 가장 많은 충격과 공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바로 [변신]이기 때문이다. 공포-. 변신에서 느끼게 되는 가장 큰 공포는 <소외>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카프카는 어떤 사람이길래 한없는 슬픔을 충격을 괴상하게 뒤엉킨 감정을 아니. 동질감까지 느끼게 하는걸까.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알 수없는 이 모든 신비함속에서 우리에게 약간의 힌트를 주고 있다. 카프카의 글 뒤의 숨어있던 그의 감정들이, 이야기들이, 기억의 조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글의 주제는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푸념하고 싶은 것들만 털어놓았을 뿐입니다..."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단순한 원망의 글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이다. 원망이라는 감정을 넘어서 저 넘어에 작을지도 모르지만 진심어린 사랑과 배려가 보인다. 그의 삶은 부유했지만 괴로움의 연속이였다. 아버지의 잘못된 교육관, 자신에 대한 집착,질책, 요구, 실망 . 분명 카프카는 벗어나고 싶어했다. 자유롭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 편지속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진짜 요구가 보인다. 카프카가 진심으로 바라던 것은 벗어남보다 [이해]였다. 자신의 삐뚤어진 성격들을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기는 하지만 모든 논리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말한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 느낄 수있는 사회에대한 소외감 무리력함 괴상함 튀틀림 그리고 불만. 이 모든 감정을 뛰어넘은 진실이 이 책속에 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아버지의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과 아주 조금의 배려를 바라는 프란츠 카프카가 여린 목소리로 말한다. "아버지, 외롭습니다..." 나는 이 책에서 어린 카프카를 만났다.
[인상깊은구절]
"제글의 주제는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푸념하고 싶은 것들만 털어놓았을 뿐입니다...하지만 그렇게 쓴 것들은 모두가 변변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제 삶에서 일어난 일이 었기 때문에 이야기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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