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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책 이야기

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금동원(琴東媛) 2016. 5. 11. 23:24



『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한비야, 이윤기 등저/한겨레신문사/ 2005년



  책 소개


  세계를 누비는 한비야, 신화의 권위자 이윤기, 똘레랑스의 전도사 홍세화, 동아시아를 새롭게 보는 박노자, 역사해석의 힘 한홍구, 문명사의 오귀환...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여섯 명의 인물들이 모여 21세기를 위한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간지 <<한겨레21>>이 주최했던 인터뷰 특강에서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이들과 함께 나누었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21세기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성찰하는 여섯 명의 개성있는 지식인들이 뿜어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비전,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인다.

  인터뷰 특강의 강의 내용과 청중과의 질문/답변 내용들을 현장감을 살려 충실히 수록하고, 강연 중에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사진자료 등을 첨부하여 읽는 이에게 보다 다양한 설명을 들려준다.



  목차


  한비야 : 고통을 나누는 상상력 - 긴급구호의 빛과 그림자
  떳떳한 한국인, 당당한 세계인으로 사는 법
  꿈만꾸는 사람 VS 꿈을 이루는 사람
  "너희들 전쟁 끝날 때까지 죽으면 죽을 줄 알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진정한 행복
  '세계'라는 이웃과 친구가 되는 법
  작은 실천으로 바꾸는 세상
  한 걸음 한 걸음 꿈을 향해 간다는 것

  이윤기 : 신화의 상상력 - 눈을 떠라, 숨어있는 1인치를 찾아라
  무심코 만난 직관의 세계
  인간의 원형이 그려내는 언어
  왜 그리스 로마 신화인가
  신화의 상상력을 즐겨라

  홍세화 : 자아실현의 상상력 - 교육과 인간 그리고 대한민국
  물신과 소유 - 한국사회의 말걸기
  배반의 공화국 - 공공성의 부재와 신자유주의
  자아실현을 위한 두 가지 조건
  소유에 대한 관심에서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박노자 :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드는 상상력 - 민중의 동아시아를 위하여
  민족주의, 21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마약
  동아시아 민족주의 열풍의 이면
  헤게모니와 민족주의 작동방식
  니트와 농민공 - 일본과 중국이 애국을 부르짖는 이유
  민족을 초월한 연대는 어덯게 가능한가
  민족주의,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
  '중산층'이라는 허상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
  타협과 연대의 차이
  민족과 국가에서 인간의 얼굴로

  한홍구 : 과거를 푸는 상상력 - 금기를 깨고 꿈을 꾸어라
  역사적 진실과 상상력
  단속의 추억, 금기의 시대
  간첩은 어디에서 오는가
  또 하나의 통제집단, 군대와 학교
  역사를 진보시키는 꿈, 불온한 상상력
  상징적 금기의 대표주자 '간첩'
  과거의 금기, 미래의 금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연대

  오귀환 : 문명에서 배우는 상상력- 과거에서 가져온 발명특허 톱 10
  역사에서 배우는 상상력
  콜롬버스는 어떻게 아메리카를 발견했나 - 지도와 문명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꿀 수 없는 까닭 - 언어와 문명
  세계 언어의 10%만 살아남는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의 지혜
  1만년의 도시, 바빌론의 비밀
  새로운 문명, 새로운 세기를 위한 발상의 전환



  Lee Yoon-ki,(李潤基, 1947~ 2010)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스인 조르바』, 『변신 이야기』 , 『신화의 힘』, 『세계 풍속사』등 20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윤기는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전 5권)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신화 열풍을 일으키며 200만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났다.

  번역과 동시에 작품활동도 이어갔다. 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출간하며 문단으로 돌아온 그는 중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적절한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또는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장편소설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등과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펴냈고, 그 밖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교양서와 『어른의 학교』,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Hong Se-hwa,(ホンセファ,洪世和, 1947년~)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10월 금속공학과를 그만두고 1969년 다시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에 입학한다. 입학후 대학재학중에는 문리대 연극반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1972년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했으나, 1977년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한다. 1977년 부터 79년까지 '민주투위' '남민전'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한다.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망명생활을 했다. 2002년 귀국하여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으로서 한국 사회에 대한 충고와 비판을 하고 있다. 2009년 4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의 새 편집인으로 선임되었다.

  홍세화는 자신에 대해,
  "두가지 우연이 있었다. 하나는 프랑스 땅에 떨어진 것. 또 하나는 파리에서 빈대떡 장사를 할 자본이 없었다는 것. 아무 카페든지 한 귀퉁이를 빌려서라도 빈대떡 장사를 해보겠노라고 마누라와 꽤나 돌아다녔다. 그 때 수중에 돈이 좀 있었다면 지금도 열심히 빈대떡을 부치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나는 빈대떡을 아주 잘 부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 대신에 나는 빠리의 빈대떡 장사'? 글쎄,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아무튼 두가지 우연과 몇가지 필연, 그리고 서울대 출신이란 게 합쳐져서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이를 꽤나 먹었지만 나이 먹기를 꽤나 거부하려고 한다. '양철북'의 소년도 아니면서 말이다. 나이 먹기를 거부한다는 게 주책없는 일임을 안다. 그렇다고 거게 하릴없는 수작이라고까지는 생각지 않는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한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는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사병으로 남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오래 전부터 가졌던 생각이다. 따라서 나에겐 나르시시즘이 있다. 내 딴에는 그것을 객관화함으로써 자율통제 하려고 애쓴다. 그러면 전투는 왜 하는가? 살아야 하므로. 척박하나 땅에서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워 작은 열매라도 맺게 하는 거름이고자 한다. 거름이고자 하는 데에는 자율 통제가 필요치 않다. 욕망이 춤춘다. 그렇다.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 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김규항등저,『아웃사이더를 위하여』,아웃사이더,2000)
라고 말한다.

  1995년 자전적 에세이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출간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에게 똘레랑스라는 말에 대해서 각인 시켰주었던 작품으로 영업용 택시기사 시절 이야기를 중심으로 프랑스에 망명하기까지의 곡절, 그가 바라본 프랑스 사회의 단면,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대학시절의 추억 등 그 애환의 어제와 오늘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1997년 『르 몽드』에 실린 기사묶음인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를 번역하였다. 1999년 문화비평 에세이인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출간하였고, 2000년 단행본 『아웃사이더를 위하여』와 격월간 「아웃사이더」를 발간하고 있다. 2010년 한국의 퇴보하는 민주주의를 염려하며 『생각의 탄생』과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를 쓰거나 번역하였다.

  '똘레랑스'라는 용어를 각인시키며 1995년 자전적 에세이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출간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은 언론인이자 평론가, 사회운동가이다. 2002년 귀국하여 지금까지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한국 사회가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Vladimir Tikhonov,( Park No-ja,블라디미르 티호노프, 朴露子)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다.

  박노자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난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날카로운 논리로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세계사를 보는 거시적인 혜안 속에서 치열하게 인문학적 성찰의 삶을 살아온 그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의 저서를 통해 '토종' 한국인보다 진한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그는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보다는 러시아를, 또 세계를 잘 아는 한국인에 가까운 그는 한국 사회를 그 주춧돌부터 다시 살펴본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고 살던 권위주의의 서까래며 집단이기주의의 기둥이 그 앞에서는 대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폐품이 되고 만다. 이제까지 나왔던 많은 한국인 비평, 비판보다 서너 길은 더 깊은 통찰이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한국에 대해 가지는 애정이 든든하다.

  두 번째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는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의 이모 저모를 소개하고 있다. 상하의 질서와 복종을 강조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문화와 달리, 다양성의 존중과 소박한 삶을 생활의 주요 철칙으로 여기고 있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평등한 인간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박노자는 북유럽 사회에 비추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외견상 선진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 인종주의와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 등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젖은 그들보다 모순과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 큰 희망이 있음을 역설한다.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에서 보여주는 한국 사회는 '동양을 타자화하여 비화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과 서양을 정형화·범주화하는 '서양/비서양'식의 이분법적 인식 속에 좀 더 원어에 가까운 영어 발음을 위해 아이의 혀에 가위를 들이대는 부모들이나 '영어공용화'가 식자층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논의되는 사회는 오리엔탈리즘이 지배하는 곳이다. 또한, 후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미국과 유럽을 아무런 비판 없이 모범으로 삼을만한 미래로 여기는 자세에 대해서도 '맹목적'이라 일갈한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 시선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그 시선을 만들어낸 곳이 어디인지, 우리 안에 있는 서구제국주의의 시각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근작으로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리얼 진보』(공저)가 있다


  韓飛野( 1958~ ) 지구촌(global village)가 아니라 지구집(global hom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다른나라의 다른 민족들도 진정한 한 공동체 안에 있음을 강조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오지탐험가에서 NGO의 긴급구호 팀장으로, 이제는 학생으로 청소년과 젊은 여성들의 멘토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숭의여자고등학교 졸업을 했다. 대학입시에서 떨어지고 클래식 다방 DJ, 번역 등의 경험을 쌓으며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었다. 그러다 6년 뒤 특별장학생으로 홍익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제 홍보회사 버슨 마스텔라 한국 지사에서 3년간 근무, 타고난 능력으로 고속 승진의 길을 밟을 수 있었으나 15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약속한 '세계일주'의 꿈을 접지 못해 사표를 내던지고 세계여행길에 오른다.

  7년. 세계 오지 마을을 다니며 겪은 여행 경험을 책으로 펴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4권)과 해남 땅끝 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우리 땅을 걸어다니며 쓴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등이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키며 인기 저자로 단숨에 급부상한다.

  그녀는 오지를 다닐 때 지키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육로로만 다닌다, 한곳에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 민박을, 한 나라에서는 적어도 한달 이상 있는다, 그리고 생활은 현지인들과 똑같이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손님일까 생각하던 눈빛이 어느새 친근하게 바뀌면서 곧 친구가 되어버린단다.

  그렇게 정말 '바람'처럼 지구를 걸어다니던 오지여행가 한비야씨가 2002년 3월을 기점으로 국제난민운동가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비극의 땅'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딛게 된 이유도 첫 시작은 육로 이동의 원칙을 지키려던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전쟁의 한가운데 있던 아프가니스탄, 그 곳에서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와 오른팔을 잃은 여자 아이가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건넨 '귀한' 빵을 한입 덥석 베어 물어 난민촌 아이들의 친구로 거듭나던 순간, 그녀는 그간의 오지 여행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발견해 내었다.

  저자는 말한다 "한순간 어쩔까 망설였다. 이 빵을 이 아이가 먹고 배가 부른 것이 좋은 건지, 내가 먹어 내가 이 아이들의 친구라는 걸 알리는 것이 좋은 건지. 찰나의 망설임 끝에 나는 빵을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같이 있던 아이들이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마그마처럼 뜨거운 것이 솟아올라왔다. 그날 나는 마음을 굳혔다. 여행이 끝나면 난민기구에서 일하리라고. 특히 아이들을 위해 나를 아낌없이 쓰겠다고. 돌아보면 국제홍보를 전공한 것도, 7년 간 세계를 돌아다닌 것도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 과정, 이 일을 잘하기 위해 운명적으로 거쳐야 했던 과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한비야,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푸른숲, 2006)
  2001년부터 2009년 6월까지 국제 NGO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하면서 전세계 구호현장에서 전문 구호 활동가로 일했으며, 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여성특위가 뽑은 신지식인 5인 중 한 명, 대학생이 존경하는 인물, 평화를 만드는 100인 등에 선정되었고, 2004년 'YWCA 젊은 지도자 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론을 갖춘 구호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 2009년 8월 미국 터프츠대학교 국제관계 및 국제법 전문대학원 '플레처스쿨'에 진학해 인도적 지원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녀가 받은 광고료와 인세로 자신의 문제와 고통뿐 아니라 지구촌의 어려움까지 대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민 의식 배양을 위해 '세계시민학교 지도밖 행군단'을 구성하였다.

  세계 여행 전에는 난민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처음엔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던 그들인데 아프리카 여행을 끝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그녀에게 어린 소녀와의 만남은 인생을 결정짓게 되는 커다란 사건으로 꼽힌다.

  저자는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들국화예요. 늦깎이, 그래요. 사실 사람들마다 생애 최고의 시절이 각각 다르잖아요. 어떤 이는 10대, 어떤 사람은 20대에 맞이하지만 저에게는 아직 안 왔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국화라는 거죠. 가을에 피는 한 송이 들국화." 전쟁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나, 만에 하나라도 죽는 장소를 택할 수 있다면 현장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히고 있다.


  [독자리뷰]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상상력

  quartz2 | 2006-01-27 /http:// blog.yes24.com/document/50575


  나이 때문인 것일까. 삶의 속도가 한없이 빨라진 듯하다. 이런 생각은 어쩌면 나만의 것일지도 모른다. 보기 좋게 경쟁에서 낙오(?)했으니 말이다. ''실패''라는 단어로 내 삶의 정의한다면 너무 비관적일까? 내 의지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막무가내로 떠밀리는 듯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요즘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돌아볼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 여유는 현대인들에게 사치와도 같다. 오히려 그러한 사려 깊음(?)이 남들보다 나를 뒤쳐지게 만드는 원인일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물어서는 안 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쩌면 그저 ''남들보다 나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그런 면에서 일종의 이단아와도 같다. 그들의 삶은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신봉하는 듯한 ''경쟁''이라는 게임으로부터 다소 벗어난 듯해 보인다. 특정 나이가 되면 으레 무엇을 해야 되는 것 마냥 틀에 박힌 삶을 사는 우리에게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현 모습은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의 두려움을 요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내가 ''용기''라고 이야기한 것을 ''상상력''이란 단어를 통해 정의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시대는 상상력 부재의 시대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의 폐해라고 말하면 교육에 대해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이에게 교육은 어떠한 상상력도 허락하지 않는다.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일지라도 정해진 틀 안에서 뛰어난, 이는 우리 사회가 그토록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미 작년이 되어버린 2005년에 이루어진 인터뷰 특강을 통해 총 여섯 명의 인물이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세상을 재구성해 보였다. 그렇게 재구성된 세상은 입체적(?)이었다. 그 세상에선 일류의 최초 발걸음이라 할 수 있는 신화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숱한 문명들이 현실과 만나 생명력을 얻었다. 동시에 그 세상은, 감정에 급급해 무엇이 옳고 또 무엇이 그른지 확신할 수 없는 우리에게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눈도 허락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경쟁 일변도라 할 수 있는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따스한 곳으로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묻지 않고 그저 뛰기에 급급한 우리에게 그들이 이야기한 것은 잠시의 여유였으니, 그 여유는 그 동안은 속도에 의해 뭉개졌던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힘을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질병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는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훗날 내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며 더 나아가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소소한, 하지만 이 목소리는 문제의 근본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외면해왔던 가장 중요한... 물론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던져준 화두에 몰두하는 즐거움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없다. 그러잖아도 늦었건만, 여기서 더 늦으면 왠지 모르게 ''끝''일 것만 같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21세기, 삶의 주인으로 등극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물어야 할 것이다. 내게 필요한 상상력이 무엇인지, 나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지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