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황석영』-(상),(하)
-황석영 저/ 창비/The Old Garden/ 2000년
작가 황석영의 신작 장편소설. 방북사건 이후 독일 체류 기간과 옥중 생활 속에서 구상된 이 소설은 일간지에 연재되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80년대 이후 격동적인 한국사회와 몰락하는 사회주의권을 배경으로 하여 젊은 두 남녀의 극적인 삶과 사랑을 특유의 입담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서사구조를 기초로, 편지글과 비망록, 기록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통해 두 주인공의 심리와 삶을 기술한다. 두 주인공이 끊임없이 서로 되뇌이는 것은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라는 질문이다
작가소개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탑塔」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 후 방북 사건으로 7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 1989년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변혁을 꿈꾸며 투쟁했던 이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객지』 『가객』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무기의 그늘』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모랫말 아이들』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등이 있다.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세계 각지에서 『오래된 정원』 『객지』 『손님』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잠잘 때를 생각해봐. 온 밤내 같은 줄거리의 꿈을 꾸게 되지는 않아. 깨고 나면 몇 장면만 또렷하게 남곤 하지. 아무도 그 흐름을 미리 예상할 수는 없어요. 생이 어떤 결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것들이 서로 끼여들지 않고는 어떤 대목이 중요했는가를 모르고 죽게 될 거야.--- p.232
자유를 추상화하지 마라. 뒤 마려워봐, 그 순간부터 나는 속박된다구. 돈 없이 어디서 자유를 찾아. 이들은 자신이 속했던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양보하며 나누어 누리던 자유를 타락시킨 거라구. 이쪽이 낙원이 아니듯 저쪽두 낙원이 아니었어. 이제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거야. 우리 세기의 약속들을 지켜내야만 할 거야.--- p.252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p.308
당신은 그곳을 찾았나요? 윤희가 내게 묻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오,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인가를 찾아서 산을 넘고 언덕을 내려오는 중이라고, 멀리 마을의 불빛이며 연기나는 굴뚝이 보인다고. 당신이 살고 겪어온 길을 따라서 나는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고. 나는 젊은 내 얼굴 뒤편에 떠오른 그네의 눈길 이쪽으로 서서 중얼거렸다. 다녀올게.--- p. 312
나는 짜증은 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애기엄마이고 그보다는 좀더 철이 들었다고 생각되었거든요. 그가 두꺼운 안경알 뒤에서 가늘게 눈주름을 잡고 웃고 있었어요. 뭘 숨기려고 한다든가 해 보이지는 않고 선량한 것 같기는 해도 별로 서두를 것이 없다는 투로 어딘가 여유 만만해 보였죠.
나는 하는 수 없이 돌아가달라고 딱 잘라서 말하지는 못하고 그를 그냥 응접실에다 놔두고 화실 쪽으로 돌아갔어요.
송영태란 사람이 정희와 관련이 있어서는 아니었지만 그의 아주 자연스러운 느긋함에 나도 저절로 전염된 듯이 그에게 돌아가달라고는 말하지 못했어요. 나는 학생들에게로 돌아가서도 처음엔 좀 신경이 쓰여서 자꾸만 입구쪽을 돌아보고는 했답니다. 학생들 사이로 돌아다니다가 바깥 응접실이 내다보이는 데서 아직도 있나 하면서 힐끗 들여다보니까, 글쎄 송영태는 낡은 가죽가방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책과 종이며 사전이며를 벌여놓고는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p.10
그러나 나와 내 벗들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우리가 겪은 일들을 미래나 예견에 사호잡힌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현실 변화를 끌어내오기 위한 구체적인 과정으로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제는 시대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물결 속에 휩쓸리며 헤엄쳐가던 하찮고 갸냘픈 개인의 나날을 통해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도. 세로운 세기에 지난 세기의 암울한 고통과 상실과 좌절을 되새기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아직도 희망은 있는 것일까? 질문이 계속되는 한 우리응 언제나 다시 출발할 것이다. pp. 318-319
출판사 리뷰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황석영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방북사건 이후의 독일 체류와 귀국 후 옥중생활 속에서 구상된 이 작품은 지난 1년 2개월간 일간지에 연재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출간에 앞서 작가의 세심하고 대폭적인 수정 정리를 거쳤다. 80년대 이후 격동했던 한국사회와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근간으로 하는 세계사적 변화를 배경으로 젊은 두 남녀의 파란많은 삶과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작가가 『무기의 그늘』(1988) 이후 12년 만에 내놓는 역작으로서 그 미학적 성취와 튼실한 사회성을 통해 한국 소설문학의 새 자산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작품은 기본 서사구조에서 회상과 편지글, 비망록과 기록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두 주인공 오현우와 한윤희의 교차적 서술방식을 통해 박진감 넘치면서도 서정적으로 전개된다.
70년대말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지하조직 활동을 한 오현우는 광주항쟁 이후 수배가 되자 기약없는 도피생활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은거를 도와준 시골학교 미술교사 한윤희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한적한 시골 갈뫼의 외딴 마을에서 3개월여 둘만의 따뜻하고 오붓한 시간을 갖지만, 오현우는 다시 동지들을 규합하여 투쟁의 길로 나서는 과정에서 검거되고 만다. 그는 지하조직의 수괴로 몰려 무기형을 선고받고 18년이란 오랜 세월을 장기수로 지내며 옥중의 투쟁을 거듭하는 한편 신산한 여러 인생사와 맞물리며 내면적으로 성숙해간다.
만기출옥 이후 전해진 한윤희의 편지를 통해서 오현우는 그녀가 불치의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다. 오현우는 한윤희에 대한 추억을 찾아 과거에 둘이 함께 지냈던 갈뫼의 `오래된 정원`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한윤희가 남긴 기록을 통해 험난했던 80년대 이후를 뜨겁게 살아온 그녀의 삶과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오현우와 헤어진 후 미술대학원에 진학한 한윤희는 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채 송영태라는 학생운동가가 주도하는 반정부운동을 음양으로 돕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그림공부를 계속한다. 한윤희는 그곳에서 또다른 인물 이희수를 만나 그의 환경친화적인 생각에 공감하고 결국 뜻하지 않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 다시 실의에 빠진 그녀는 작품활동을 하다가 귀국한다. 한편, 오현우는 한윤희의 기록에서 그녀가 자신의 딸아이를 낳고 키워왔음을 알게 된다. 오현우는 갈뫼에서의 여정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준비하면서 딸과 만나게 될 설렘을 간직하며 서울로 올라온다.
`오래된 정원`은 한편으로는 오현우와 한윤희가 달콤한 사랑을 나누며 함께 지냈던 갈뫼의 시골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혁명가들의 이상향인 동시에 남성 위주의 물량적 혁명주의 대신 모성의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는 새로운 가치가 잉태 발현하는 모태이기도 하다. 오현우가 이곳에 내려와 자기 반평생의 역정을 돌아보며 새출발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은 한윤희의 자취를 더듬는 과정에서 이러한 새로운 각성을 얻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혁을 꿈꾸고 투쟁해왔던 이들의 삶과 사랑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황석영 특유의 세련되고 힘있는 문장이 뿜어내는 재미를 갖추고 있다. 특히 헌신적인 운동가들의 정서 심층에 잠재된 사랑의 음영, 계절과 시각에 따른 자연풍광의 미묘한 변화를 이처럼 절묘하게 포착한 소설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며,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는 감옥생활이나 한윤희가 독일 유학중에 체험하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대한 묘사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살아 있다. 진중하고도 묵직한 주제를 깔면서도 세월을 뛰어넘는 두 남녀의 애절하고 순수한 사랑이 잘 그려진 이 작품은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헤엄쳐가는 가냘픈 개인의 눈을 통해 시대의 영광과 상처를 조명함으로써 앞으로 새롭게 전개될 황석영 문학의 방향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 작품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이 시대를 헤쳐온 작가 황석영이 다양한 기법과 섬세한 문체로 작성한 지난 20년간의 문학적 연대기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북한방문과 해외망명 등을 통해 더욱 넓어진 시야와 옥중생활 동안 예민하게 다듬어진 감각,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사색적 깊이가 녹아들어 있다. 「객지」「삼포 가는 길」「한씨연대기」『장길산』『무기의 그늘』에서 맛본 감동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잊어서는 안될 한 시대의 진실을 작가 황석영의 녹슬지 않은 솜씨와 함께 만나는 보람은 한층 각별하다
아직도 희망은 있는 것일까?
-한겨레 |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 | 2014-07-20
어떤 이야기는 요약을 거부한다. 이 말은 단순히 요약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거부”다. 인물의 움직임을 시작과 중간과 끝을 기준점으로 잡고 간추려내면 그만이라는 걸 안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1970년대 말 군부독재 반대운동을 했던 오현우는 광주항쟁 이후 수배자로 지목되고, 이때 미술교사 한윤희의 도움을 받아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둘은 한적한 시골 갈뫼의 외딴 마을에서 삼 개월간 함께 지내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남자는 다시 투쟁에 나서고 결국 검거되어 무기형을 선고받는다. 그사이 여자는 딸 하나를 세상에 남겨놓은 채 세상을 떠난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의 줄거리다. 그러나 이렇게 정리하는 내내 내 안에서 여러 목소리들이 수런거린다. 구체적 개인,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정리해버리고 만다면, 눈빛과 주름, 특유의 말투와 걸음걸이 같은 것들을 지닌 구체적인 인간들은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나는, 허구적 인물들로부터 체온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왜 본 적 없는 인물들을 마치 실제로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 어떤 이야기가 요약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사람”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그토록 쉽게 입에 올릴 수 없으므로. 그저 그의 삶을 애틋하고 조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으므로. 그러니 이렇게 또 말할 수 있으리라. 요약과 거리를 둔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삶의 이야기라고.
[오래된 정원]에는 편지와 회상, 비망록 등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들이 삽입되어 있다. 이때 더욱 생생해지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목소리다. 한윤희의 마지막 편지를 보자. 오현우의 출소 후에야 가닿게 된 마지막 인사다.
“유행가 하나 적어놓을게요. ‘사랑은 어째서 언제나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지, 사랑은 어째서 죽음과 꼭 같은 닮은꼴인지.’ 오래전에 불경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정이 맺혔던 부분들이 제일 먼저 썩어 없어진대요.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이 목소리의 뜨거움을 감지하며, 나는 터지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을까봐 애써 마음을 여며야만 했다. 그리고 “화해”라는 단어 앞에 오래 머물렀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그저 소설 속 인물의 목소리라고만 여기기 힘들어진다. 선생 또한 “정원”을 꿈꾸었던, 냉전과 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역사적 증인이 아닌가. 더없이 자애로운 여성의 음성, 이제 곧 스러지고 말(이 편지를 쓰고 사흘 뒤에 한윤희가 죽었다고, 편지를 전해준 동생은 적고 있다) 연약한 인간의 음성을 빌려 선생은 “화해”라는 말을 발음하고 있다. 선생이 인물의 음성을 빌려 “화해”를 말할 때 그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십 년 가까이 옥에 갇혔다 이제 막 나온 남자가 되어, 우리는 “화해”라는 말을 아프게 듣는다.
선생은 후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아직도 희망은 있는 것일까? 질문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언제나 다시 출발할 것이다.” 선생 덕분에 알게 된다. 바로 거기, 구체적 개인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역사의 연속성을 감각하게 된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말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소설을 꼭 한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오래된 정원』은 『무기의 그늘』(1988) 이후 12년 만에 내는 작품인데 출간의 감회는? 오랜만의 집필에서 특히 어려웠던 일은?
황석영: 망명시절에나 감옥에서나 어느 한때 창작에 대한 생각과 의욕을 저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자유를 얻자마자 한달쯤 쉬고는 곧 집필에 들어갔는데 욕구를 오랫동안 참아서인지 술술 잘 풀리더군요. 어느날에는 대번에 백여매 분량을 쓴 밤도 있었어요. 일산 시절에 새벽이면 마감원고를 끝내고 호수공원까지 걸었는데 집필할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서 행복했습니다. 내게 감시자 없는 자신의 방과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책의 후기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어쩐지 목과 손에서 힘을 뺐고 마음을 비운 듯한 느낌입니다. 이러한 오랜만의 창작의 자유와 편안함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움이라고나 해야 할 것입니다.
--'후기'에서 『오래된 정원』의 구상을 윤이상 선생 댁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가운데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집필 동기는?
황석영: 나는 베를린에서 장벽이 무너지고 특히 소련이 해체되기 시작했을 때, 이것이 극적인 세기의 종막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 초에 문명에 대한 몇가지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출발을 했지만 결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쳐서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이러한 이념적 행로는 서구가 전 세계로 전파한 것이었고 우리는 제3세계 중에서도 최후까지 가장 혹독하고 심각한 변혁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습니다. 서구가 60년대 말에 이미 과거의 변혁 운동과 결별하고 세기말적인 이행기에 들어갔다면 우리는 그때로부터 한 세대에 걸친 자본주의 근대화과정을 겪고 80년대에 들어와서 비슷한 열병을 겪게 된 셈이지요. 나는 이 시대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 대단히 중요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또한 실제로 작품을 쓰는 도중에 확신을 하게 됩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알맹이들은 실로 의미심장합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생애 가운데서 중요한 시기를 바쳤고 그리고 변화되거나 거듭나면서 세상 속에 녹아 들어갔습니다.
--『오래된 정원』의 소재는 어떤 조직 사건인지? 주인공 오현우와 한윤희의 모델이 있다면 누구인지?
황석영: 작가는 자신의 체험과 세상에 일어난 일들을 함께 엮어서 짜내기 마련이지요. '남민전 사건'도 조금 나오고 유인물 작업은 내가 직접 겪은 일이기도 하고 변두리 공장이나 감옥체험 역시 그렇습니다. 이른바 '유학생 간첩단 사건'도 생각나고 서승 서준식 형제의 긴 옥중투쟁도 연상되지요. 나와 내 친구들이 겪은 일들이 서로 섞였다고나 하겠습니다. 오현우라는 인물의 절반 이상은 작가 자신의 어떤 면모가 반영되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리고 한윤희 역시 내가 알았던 여성들의 모자이끄라고나 해둡시다.
--이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황석영: 나는 유행어인 '모래시계 세대'니 '386세대'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굳이 말하자면 '80년대 세대'라고나 할까요? 이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어느날 갑자기 불운한 시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 아니라 해방과 분단 이후 치열하게 진행되어온 냉전과 저항의 연대기 끝자락에 서게 된 것입니다. 나는 당시에 기성세대로서 또한 이미 유명해진 작가로서 80년 광주 이후 이들 젊은이들과 혈육처럼 될 수밖에 없었지요. 어느 유행가 대목처럼, 우리가 겪은 것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다는 소리를 하고 싶었지요. 소설 속 어느 인물의 독백처럼 '우리는 그때 너무도 사랑했지만 사랑의 방법은 몰랐다'는 얘기 말이지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하니까 반예술적으로 들리는데, 한마디로 이들 '80년대 세대의 진혼곡'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가 꿈꾸었던 '좋은 세상'에 대한 생각들은 아직도 소중한 불씨처럼 각자의 가슴속에 살아 있으리라 믿습니다.
--옥중생활과 출옥 이후 생활은 어떠했는지?
황석영: 혼자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서 독서나 작업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감옥에서나 요즈음의 내 생활에서나 별로 다른 변화가 없을 듯합니다.
다만 옥에서 한 삼년쯤까지는 조금 달랐는데요. 독하게 살아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지사처럼 민주인사로 눈 부릅뜨고 지냈는데요, 어느날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풀어버리지 않으면 건강도 지켜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도 끝장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주위 잡범들과 농담도 하고 교도관들과 시시껄렁한 패설도 나누게 된 것은 나머지 두 해 동안입니다. 나는 이 기간에 사람이 좀 된 셈입니다. 그래서 심신의 건강을 지켜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털털이(시시덕이)는 영 넘어 가고 새침데기는 골로 빠진다는 속담처럼, 세속의 평상심이 어디서나 가장 중요한 듯합니다. 그런데도 나와서 삼개월 동안은 적응하느라고 한동안 헤맸어요. 나와서 전에 옥중에서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다가 소스라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른 거예요. 역시 갇힌 자의 눈과 의식으로 읽었던 겁니다. 삶의 미세하고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만 사람은 온전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명상까지도 죄수와 수도자의 그것은 다르겠지요. 삶은 관념이 아니니까요. 또한 독방에 오래 살다보면 말을 할 상대나 기회가 없으니까 자꾸만 단어들을 까먹게 되었어요. 작가로서 매우 초조했어요. 그런데 신기한 일은 나와서 한달쯤 되니까 그 안에서 생각나지 않았던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생생해지더군요. 독방이야말로 작가에게는 가장 가혹한 형벌입니다.
--최근 소설경향(특히 신세대소설)과 문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터넷과 하이테크 시대 문학의 바람직한 방향은?
황석영: 처음에 나와서는 그냥 '문예의 동산에는 백화가 만발할 수 있다' 라고 너그럽게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동시대의 여러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국제적인 경제대란의 시절에 구체적인 삶을 다루는 소설은 거의 보이지 않아서 조바심이 났습니다. 요즈음 한국소설은 일종의 '현실방기'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조만간 독자들의 보복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문학이 그런 것을 다루면 '천박하고 비예술적'이라는 생각까지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온통 '기화요초'들뿐입니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영화는 현실의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지난 몇년 동안 대중적 성과와 함께 알려진 영화들에는 과거와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 살아 생동하고 있더군요. 이러다가는 영화가 지상에서 몇발짝 떠 있는 문학을 밀어내고 말 것입니다. 지난 연대에는 문학이 영화에 영양소를 배급해주었는데요.
문학과 영상은 일심동체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고대 그리스나 동양 고전을 낯설지 않게 읽고 있으며 기술과 생산력의 변화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질은 여전히 탐구의 대상이지요. 오히려 저는 인터넷의 정보를 활용하는 기능과 활자를 화면에서 읽는 일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의 기초는 역시 아직도 문학적 교양이 그 토대입니다. 나는 내 소설이나 대본이 영상으로 바뀌는 일을 예전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환영할 작정입니다. - --- 창작과비평사 편집국과의 인터뷰 내용 중 (20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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