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저/ 창비/ 번역서: Vegetarian
책 소개
10년전의 이른 봄, 작가는 한 여자가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 『내 여자의 열매』를
집필하였다. 언젠가 그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이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작가가 2002년부터 2005년 여름까지 쓴 이 세편의 중편소설은
따로 있을 때는 일견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합해지면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기는 장편소설이
된다.
올해로 등단 13년째를 맞는 작가는 작품 속에 단아하고 시심어린 문체와 밀도있는 구성력이라는 작가 특유의 개성을 고스란히
반영시켜 놓았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는 지금까지 소설가 한강이 발표해온 작품에 등장하였던 욕망,식물성,죽음 등 인간 본연의 문제들을 한 편에
집약해 놓은 수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를 바라보는 그의 남편 '나'의 이야기이다. '영혜'는
작가가 10년전에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에서 선보였던 식물적 상상력을 극대화한 인물이다. 희망없는 삶을 체념하며 하루하루 베란다의
'나무'로 변해가던 단편 속의 주인공과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길 꿈꾸는 영혜는 연관고리를 갖고
있다.
이 외에도 욕망과 예술혼의 승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던 2부 『몽고반점』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전체 줄거리에 연결되면서 소설의 텍스트를 더욱 확장시킨다. 상처입은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인 상상력에 결합시켜 아름다움의 미학에
접근하고 있다.
저자소개
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는 올해 영미판 출간에 대한 호평 기사가
뉴욕타임스 등 여러 언론에 소개되고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 선정 소식이(이후 수상했음) 잇따르며 인간의 폭력성과 존엄에 질문을 던지는 한강 작품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만해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해외 번역 판권도 20개국에 팔리며 한국문학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책 속으로
막을 수 없었을까. 두고두고 그녀는 의문했다.
그날 아버지의 손을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칼을 막을 수 없었을까. 남편이 피흘리는 영혜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간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영혜를 제부가 냉정히 버린 것을 말릴 수 없었을까. 그리고 남편이 영혜에게 저지른 일을, 이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값싼 추문이 되어버린 그 일을 돌이킬 수 없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린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 「나무 불꽃」 중에서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채식주의자」중에서
[ yes24 리뷰]
단편과 한국문학에 대한 선입관을 깨는 식물적 상상력의 변주
-이민정(ladyinred@ yes24.com)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모으는 친구에게 그 중에 꼭 한권만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 선뜻 『몽고반점』이란다.
왜냐는 질문에 ‘야하니까’라는 다소 싱거운 소리를 내뱉는다. 형부와 처제의 정사라는 소재만 보면 이 싱거운 소리가 수긍이 갈 법도 한데,
무미건조하고 존재감을 내뿜는, 그러면서도 지극히 탐미적인 문체를 읽다보니 그저 주인공 영혜의 차가운 손발과 드러낸 상체가 주는 담담한 해방감,
상상력을 자극하는 색채의 화려하고도 관능적인 이미지에 강렬히 사로잡힌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 좋았어. 근데 왠지 이야기가 더 있을 거
같아.” 라고 대답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몽고반점을 포함한 연작소설 전체가 담긴 『채식주의자』가
출간되었다.
『채식주의자』는 10년 전 저자의 단편 「내 여자의 열매」의 변주로, 식물적 상상력을 궁극의 경지까지 확장시킨 인물,
영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1부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의 시각에서 아내가 점차 육식을 거부해 가는 과정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본인과, 사회,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그는 처제의 몸에 남아있다는 몽고반점에 욕정을
느끼고, 이 욕정을 평소 머리 속에 그리다 못해 각인된 관능적 이미지와 결합시켜 비디오 아티스트로서의 작업으로 전환한다. 3부인「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그녀는 떠나버린 남편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생계의 부담, 동생의 부양을 몸으로 겪어낸다. 또한 점점
나무가 되려고 하는, 세상의 시선에서는 점점 구제할 수 없이 미쳐가는, 영혜의 모습을 담아낸다.
몽고반점을 덮으면서 가장 걸렸던
부분은 주인공 영혜가 왜 육식을 거부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점이었다. “꿈을 꿔서……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아요.”
“무슨……꿈을 꾼다는 거야?” “얼굴.”(-「몽고반점」중에서)” 1부인「채식주의자」에서는 그 꿈과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그릇을 다먹었어. 들깨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채식주의자」중에서)
세 단편은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을 버리려고 하는 영혜와 대립되는 주변인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평범하게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욕망과 몽고반점을 모티브로 한 관능적 이미지와 색채로 표현되는 예술에 집착하는
형부, 삶에 내부가 말라가면서도 부양을 계속해야 하는 언니. 이 대립성에서 식물로 대표되는, 인간이 잃어버린 태고의 순수성에 대한 동경과 어쩔
수 없이 욕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동물적인 욕망이 함께 쏟아진다.「몽고반점」에서 영혜는 육체에 바디 페인팅으로 꽃을 담으면서 욕망이
배제된 식물을 지닌 육체가 되고, 그 식물성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또한 역설적으로 지독히 동물적인 욕망의 행위로 태고의 순수성으로
돌아간다.
주인공 영혜의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갈망은 남을 해치지 않는 소극적인 면에서 -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로는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채식주의자」중에서) 궁극적으로 생명을 탄생시키고 지지하며 소멸하는 회귀로
발전해 간다 -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나무 불꽃」중에서)
삶에 치이는 순간순간, 일상의 끈을 놓아버리고 궁극적으로 소멸에 가까운 자연으로의
회귀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또한 지독히 세속적인 욕망으로 삶에 집착하고 조용한 열정을 불태우는 것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영혜는 그 극단에 서 있고, 우리는 범인으로 그 중간을 헤맨다. 작가 한강의 연작소설은 하나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히 완결적이며,
연작이라는 형식으로 소설의 폭을 다시 확장하고 다양한 욕망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완결 작을 만들어 간다.
출판사 서평
[채식주의자]
상처, 욕망, 그리고 죽음
『채식주의자』의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 남편인 ‘나’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어린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죽이는 장면이 뇌리에 박힌 영혜는 어느날 꿈에
나타난 끔찍한 영상에 사로잡혀 육식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영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처가 사람들을 동원해 영혜를 말리고자 한다.
영혜의 언니 인혜의 집들이에서 영혜는 또 육식을 거부하고, 이에 못마땅한 장인이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넣으려 하자, 영혜는 그 자리에서
손목을 긋는다.
2부 「몽고반점」은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아티스트 ‘나’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동생을 측은해하는 아내 인혜에게서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영혜의 몸을 욕망하게 된다.
‘나’는 영혜를 찾아가 비디오작품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청한다. 벌거벗은 영혜의 몸에 바디페인팅을 해서 비디오로 찍지만, 성에 차지 않은 ‘나’는
후배에게 남자 모델을 제안한다. 남녀의 교합 장면을 원했지만 거절하는 후배 대신 자신의 몸에 꽃을 그려 영혜와 교합하여 비디오로 찍는다. 다음날
벌거벗은 두 사람의 모습을 아내가 발견한다.
3부 「나무 불꽃」은, 처제와의 부정 이후에 종적없이 사라진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가족들 모두 등돌린 영혜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인혜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영혜가 입원한 정신병원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인혜는
식음을 전폐하고, 링거조차 받아들이지 않아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영혜를 만나고, 영혜는 자신이 이제 곧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한다.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려는 의료진의 시도를 보다못한 인혜는 영혜를 큰병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심한다.
영혜를 둘러싼 세 인물, 영혜의
남편?형부?언니의 시선으로 구성되는 3부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가족 모임에서 영혜가 손목을 칼로 긋는 장면이다. 아내의 육식 거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남편으로서는 그 충동적인 행동이 그저 끔찍한 장면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피를 흘리는 처제를 들쳐업고 병원에 간 형부는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비디오작업이 송두리째 모멸스럽고 정체 모를 구역질을 느끼고 그후로 전혀 다른 이미지(바디페인팅)에 사로잡힌다. 어린시절부터
가까이서 본 동생 영혜가 죽음을 불사하고, 식물이 되기를 원하는 것을 알게 된 언니는 그 장면을 안타깝고 원망스럽게만 기억한다.
동일한 장면을 다른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영혜’와 ‘아버지’에게서도 발견된다. 어린 딸의 다리를 문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다니다 죽이는 아버지에게는 개의 살육이 그저 부정(父情)의 실천이었을 뿐이겠지만, 모두에게 ‘불분명한 동기’인 영혜의 육식 거부가 실은 그
어린시절의 끔찍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다.
육체적인 욕망과 예술혼의 승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수작으로 극찬을 받으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2부 「몽고반점」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전체 줄거리에 연결되면서 이 소설의 차원을 확장하고 심화한다. 각 부에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조명되는 욕망의 근원은 결국 영혜라는 주인공의 상처와 기억의 문제로 수렴된다.
숨막힐 듯한 식물적 상상력의
궁극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작가가 10년 전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내
여자의 열매』, 창비 2000 수록)에서 선보였던 식물적 상상력을 궁극의 경지까지 확장시킨 인물이다. 희망없는 삶을 체념하며 하루하루 베란다의
‘나무’로 변해가던 「내 여자의 열매」의 주인공은, 어린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영혜와
통한다.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영혜는 벌떡 일어서서 창을 가리켰다.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 없어. 물이 필요한데. ―「나무 불꽃」 중에서
단순한 육식 거부에서 식음을 전폐하는
지경에 이르는 영혜는 생로병사에 무감할뿐더러 몸에 옷 하나 걸치기를 꺼리는, 인간 아닌 다른 존재로 전이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더 나아가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채식주의자」)라고 믿는 영혜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고, 공격받지 않는 순결한 존재가 되는 듯하다.
반면 영혜
주위의 인물들은 육식을(영혜 남편), 혹은 영혜의 몸과 몽고반점 그리고 자신의 예술혼을(영혜 형부) 지독하게 욕망한다. 그들의 욕망은 결국
누군가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고 끔찍한 기억을 남긴다. 인간의 욕망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생명이 있는 한, 그 대상이 무엇이든간에 욕망할 수밖에
없는 동물적인 육체로 살아가야 하는 정체성을 포기한 영혜는 결국 죽음에 이르는 길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영혜로 표상되는 식물적인 상상력의
경지는 소설가 한강의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는 소설 미학이며, 이야기로서든 상상력으로서든 감각으로서든 우리 소설의 차원을 확장시키는 시도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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