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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미당과의 만남/이숭원

금동원(琴東媛) 2016. 11. 13. 08:37

 

 

미당과의 만남』 -서정주 대표시 해설

이숭원 저 | 태학사

 

 

  한국 최고의 서정 시인’부터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친일 시인’까지
  민족과 문학의 경계에 선 미당 서정주, 그의 시와 삶을 되돌아보다

  미당 특유의 예술적 통찰력과 섬세한 감수성은 그에게 ‘20세기 한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미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단적이고 소란스럽다. 역사에서, 문학사의 가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미당 서정주의 시적 정취와 성취. 서정주의 다사다난했던 삶과 그의 수려한 작품들을 [미당과의 만남]에서 돌아본다.

  [미당과의 만남]에는 서정주의 시를 향한 저자의 애정과 존경이 담겨 있다. 작품 해설이라기보다 서정주 평전에 가까울 정도로 그의 삶과 정신이 세세히 담겨 있다. 또한 서정주 문학에 대한 찬반 양론을 고려하면서도 일정한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각 작품의 전체적 맥락을 충실히 해석하였다. 또한 서정주 시를 이해하는 데 최대한 원본의 음감과 구어적 표기를 살리는 등 원본이 해체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돋보인다.

 

  ○작가소개

 

  이숭원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남대, 한림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여 시와시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을 받았다. 중요 저서로 ''감성의 파문''(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2007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세속의 성전''(2008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백석을 만나다''(2008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영랑을 만나다''(2010년 문화관광부

 

  ○책 속으로

 

  시간의 전변에 대한 안타까움이 반복된다는 것은 시인의 내면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과 지향이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지킬 수 있는 영원한 어떤 것은 ‘사랑의 감정’이다.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사랑은 계절의 차이를 넘어 아무 차별 없이 그대로 지속될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그 사랑을 남이 모르는 혼자만의 사랑이라고 했다. 나 혼자만의 사랑은 거의 모든 서정 시인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속성이다. --- p.101

  대구로 내려가 종군 문인들과 합류한 서정주는 불안감에 의한 환청 때문에 거의 정신착란 상태에 이르렀다. 이 증세는 부산의 유치환 집에서 몇 달간 요양하면서 조금 안정되었는데, 1·4 후퇴 이후 피난지 전주에서 생활하면서 그 증세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마음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1951년 초여름 다량의 학질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여름 내내 요양을 하면서 『 논어』, 『중용』,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을 정독하여 정신의 안정을 얻으려 했다고 회고하면서 「무제」와 「상리과원」이란 작품이 자살 미수 뒤 안정기에 쓴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 p.122

  기쁨의 생명공동체가 보이지 않을 경우 그 대비책으로 관조의 별과 침잠과 위안의 종소리를 준비함으로써 인간 세상의 슬픔에 대처할 수 있는 구성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 자신은 정신분열의 불안과 고통에 시달렸지만 우리가 키우는 어린 생명들에게만은 절대 설움을 보이지 않고 찬란한 기쁨의 꽃밭만을 보여주려 한 정신의 가장家長, 시인 서정주의 모습을 이 작품에서 마주하게 된다. --- p.1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종이 되어 소리를 내겠다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으니, 이 시를 쓸 당시 연정의 열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루지 못할 사랑이지만 그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싶은 내면의 충동, 그 타고난 시인 기질을 미당은 40대 초반까지 밀고 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행동을 20대 이래 지속되어온 “감정의 지랄병”이라고 비하할 수 있는 이성적 균형감도 지니고 있었다. 이 양 측면의 긴장 속에 미당의 시가 창조되었고, 그 긴장이 유지될 때 그의 탁월한 시가 창출되었다. --- p.158

  서정주 시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이 확고한 소망의 결의는 사소라는 신화의 인물을 화자로 설정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과장된 내용이라 해도 설화의 세계에서라면 영웅적 주인공의 입을 통해 확고한 의지를 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대 추구의 결의는 그의 시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삶이 절대 추구의 힘겨움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의 나이 마흔셋. 이 시기를 변곡점으로 하여 그의 시는 굴절해간다. --- p.177

  미당은 마흔다섯의 나이가 생의 한 고비를 나누는 변곡점이라고 인식했던 것 같다. 이 나이에 그의 신체와 정신의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런 판단이 위의 시를 쓰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미당이 자신의 판단에 증거로 내세운 것이 귀신이 보인다는 현상이다. 헛것을 보게 되었으니 기력이 약해졌다는 뜻도 되고, 또 다른 맥락에서 보면 귀신과 통하게 되었으니 삶과 죽음을 이어서 볼 수 있는 열린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 p.199

  이런 기획 연작시 창작에 기울인 미당의 정성을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것은 이미 정상적 궤도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미당의 시정신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 이후 미당의 창작의 예봉은 꺾였다. 미당은 무엇에 쫓기듯 정신없이 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처럼 미당은 걷잡을 수 없이 앞으로 내달았다. 1986년 9월에는 어딘가에서 나오는 돈을 받아 『문학정신』을 창간했고, 급기야 1987년 1월에는 그 악명 높은 전두환 생일 축하 송시를 쓰기에 이른다. 이 시절 미당의 내면을 몰아친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생전에 미당에게 이 질문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추정만 무성했다

 

  ○출판사 리뷰

 

  서정주 시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위하여

 
  시인 서정주를 향한 시선(視線)
  시인 서정주의 대표작 '국화 옆에서'가 어느 순간부터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서정주의 삶에 대한 역사적 평가 때문이다. 2010년에 타계한 서정주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는 양극화되어 있다. 그것은 그의 이름 앞에 친일 시인이 붙을 것인지, 민족 최고의 서정 시인이 붙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사실 미당은 일제 말기에 일본 군대 훈련 현장에 나가 종군 기자 역할을 하고, 1942년 친일 어용 문학지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에 본격적으로 친일 작품을 썼다. 미당이 이 당시에 쓴 친일 작품은 평론 1편, 시 4편, 단편소설 1편, 수필 3편, 르포 1편 등 10편에 이른다. 후에 미당은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백 년은 갈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런 역사적 행보로 인해 서정주는 문학사의 가변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까지 부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서정주 시에 대한 정당한 평가

  미당의 친일이나 권력 추종의 전력이 선입견으로 작용하여 이 진심마저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시를 읽는 기본 독법을 상실한 태도다. 인간이란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존재여서 현실 추수적인 사람의 경우에도 이런 자기 갈등에 빠질 때가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20년 넘게 시인의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이런 자책과 자학이 솟아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에 속한다. (p.184)

  소문만 무성히 남기고 떠난 미당 서정주. 저자는 미당을 향한 세상의 날선 평가를 우려한다. 미당의 삶의 행보를 역사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어도, 그의 작품까지 똑같은 잣대로 매도하기는 어렵다는 것. 실제 미당은 어린 시절 남녀 관계에서 미숙한 모습('중국인 우동집 갈보 금순이')을 보이고, 40세가 넘어서까지 짝사랑을 앓는('신록', '속 천지유정') 등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자기 삶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학('근교의 이녕 속에서')의 모습을 보이며 연약한 심리상태도 드러낸다. 실제로 그는 자살을 시도했고, 평생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내 아내', '기도 1'). 이렇듯 심리적으로 나약했던 미당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에 굴복하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미당의 작품들을 민족적인 잣대 하나만으로 판단하고 평가절하 하는 것은 그의 진심과 순수까지 외면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가 이렇게 절묘하게 호응을 이룬 시를 한국시사는 그렇게 많이 갖고 있지 않다. 천부적 재능으로 엮어낸 이 시의 운율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일은 학자의 몫이요, 그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p.101)

  그렇기에 [미당과의 만남]에는 서정주의 시를 향한 저자의 애정과 존경이 담겨 있다. 작품 해설이라기보다 서정주 평전에 가까울 정도로 그의 삶과 정신이 세세히 담겨 있다. 또한 서정주 문학에 대한 찬반 양론을 고려하면서도 일정한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각 작품의 전체적 맥락을 충실히 해석하였다. 또한 서정주 시를 이해하는 데 최대한 원본의 음감과 구어적 표기를 살리는 등 원본이 해체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돋보인다.
  특히 누구나 알고 있는 서정주의 대표작보다는 저자가 애착을 갖거나, 어린 시절에 깊은 감명을 받은 작품 위주로 해설하였다. ‘감성을 살려 해설하고 읽어야 미당의 내면을 잘 볼 수 있다’는 이숭원 교수의 혜안으로 빚은 평설은 가독의 힘을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