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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화가의 마지막 그림/이유리

금동원(琴東媛) 2016. 12. 9. 23:26


『화가의 마지막 그림』

-이유리 저 | 서해문집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들은 무얼 예감했고 무얼 그렸나?
  19인의 예술가가 남긴 마지막 명작 이야기

  가톨릭 성직자들 묘지 입구에는 라틴어 “Hodie Mihi, Cras Tibi(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해석하자면 “오늘은 내가, 내일은 당신이”라는 뜻이다. 수수께끼처럼 들리겠지만, 이 말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격언이다. 오늘은 내게 죽음이 드리워져 이렇게 누워 있지만 내일은 바로 당신의 차례라는 것이다.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여기 ‘기억하고’ 싶은 죽음들, 하지만 죽음조차 그 예술혼을 사그라뜨릴 수 없어 시공간을 초월해 ‘기억되는’ 화가들이 있다. 
 

  그림을 다리 삼아 세상을 통과해온 미술 저술가, 이유리는 예술가들이 남긴 빼어난 예술작품, 그중에서도 유독 ‘화가의 마지막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생의 끝, 가장 아름답고 치열한 시간에 화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그림 한 점엔 쉬이 껴안지 못할 삶의 진실이 녹아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실제로 화가의 마지막 그림 안에는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들이 무얼 예감했고 무얼 목격했으며 무슨 메시지를 최후로 남기고 싶었는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속설에 따르면, 백조는 평생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아름답고 구슬픈 울음을 뱉는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백조의 노래’는 보통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백조들이 토해낸 마지막 울음 같은 작품들을 정성스럽게 선별하고 묶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예술가들이 남긴 마지막 명작집’이라고 할 만하다.


  작가 소개


  어릴 적부터 미술 교과서나 신문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오려내어 스크랩하던 소녀였다. 영어 공부를 하러 간 영국에서, 영어 공부 대신 런던에 있는 갤러리란 갤러리는 모조리 훑고 다녔고 결국 영어 대신 머릿속에 방대한 미술지식을 안고서 돌아왔다.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인일보 사회부를 거쳐 현재 미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글쟁이의 삶을 살게 되었다.
괴테는 이야기했다. “세상을 피하는 데 예술보다 확실한 길은 없다. 또 세상과 관련을 맺는 데도 예술처럼 적당한 길은 없다”고. 괴테의 말에 동감하며 ‘예술작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책으로 《검은 미술관》,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국가의 거짓말》이 있다.



  목차


1.사랑, 그토록 간절했던
그립고 그리워서, 그리다_이중섭
서로의 전부를 쥐어준 사랑_잔 에뷔테른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죽음이 삶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날_에곤 실레
환희처럼 슬픔처럼, 이별_에드워드 호퍼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_나혜석

2 부상당한 희망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_빈센트 반 고흐
끝끝내 생명을 얘기하려 한 사람_프리다 칼로
이 주검의 행렬을 멈춰라_케테 콜비츠
내 그림만은 죽이지 말아주게_펠릭스 누스바움

3 예민한 영혼에 드리워진 덫
피지 못한 원초의 세계_폴 고갱
불행한 날들에 찾아온 뜻밖의 소녀_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비극에 무감한 사람들을 깨우다_마크 로스코
백인에게 ‘발견’되고, 백인에게 ‘소진’된_장 미셸 바스키아
혼돈이라니, 빌어먹을!_잭슨 폴록

4 화려한 성공, 뜻밖의 최후
경멸과 동정이 뒤섞인 자화상_카라바조
돌아온 탕자의 고해성사_렘브란트
혼돈의 시대에 당겨진 비극의 활시위_보티첼리
돌고 돌아 신 앞에 선 르네상스의 천재_미켈란젤로


  책 속으로


  바로 이 시기에 그는 [돌아오지 않는 강] 연작을 그렸다. 그림 속 여인은 바로 집 앞에 당도했고, 여인을 기다리는 듯한 남자는 이제 곧 그녀와 만날 참이다. 하지만 그림 제목이 [돌아오지 않는 강]이다. 이중섭은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영화의 제목 [돌아오지 않는 강]을 어쩌면 자신과 아내를 가로막은 운명처럼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아내와의 편지 연락에 무척 연연하던 그가 이 무렵부터는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개봉도 하지 않은 편지를 영화광고 아래에 잔뜩 붙이고 있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돌아오지 않는’, 아니 ‘돌아오지 못하는’ 아내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언젠가 만날 것이라는 희망마저 놓쳐버린 그의 앞에 무엇이 더 남았겠는가. 그는 돌아오지 않는 강 건너로 스스로 떠날 준비를 한다. --- pp.24-25「이중섭: 그립고 그리워서, 그리다」중에서

  테오의 큰처남 안드리스 봉허의 편지도 새로 발견되었는데, 편지에서 봉허는 반 고흐가 마지막까지 그리고 있던 그림에 대해 “죽기 전 아침에 그는 나무 덤불을 그렸다. 햇빛과 생명으로 가득한”이라고 적었다. 반 틸보르흐와 마스는 이 편지에 언급된 ‘나무 덤불’이 바로 [나무뿌리]라고 결론지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나무뿌리]는 반 고흐가 죽을 때 그의 이젤에 세워져 있던, 미완으로 남은 마지막 작품이다. 그렇다면 반 고흐는 왜 죽기 직전에 이 작품을 완성하려고 애썼을까? --- p.100「빈센트 반 고흐: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중에서

  라우리의 미공개 유작을 본 순간, 캐롤은 자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작품들은 라우리의 평소 작품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절반 또는 4분의 1이 찢어지거나 없어진 상태로 남겨진 그림 속에는 하나같이 소녀들이 그려져 있었다. 피부가 여린 소녀들이 좁은 튜브 같은 옷에 쥐어짜질 듯이 갇힌 채 위태롭게 서 있다. 심지어 단두대 속으로 강제로 밀어 넣어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녀와 그 옆에서 채찍을 들고 웃고 있는 사람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이 소름 끼치는 연작들을 눈살을 찌푸리며 훑어보던 캐롤은 한순간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 속의 소녀가 자신처럼 작고 살짝 치켜 올라간 코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캐롤은 외쳤다. “맙소사, 이건 나야. 이 그림들은 나야!” --- p.180「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불행한 날들에 찾아온 뜻밖의 소녀」중에서

  사실 폴록의 유작 [레드, 블랙, 실버]는 폴록이 죽기 직전의 애인이었던 루스 클리그먼이 가지고 있던 작품이다. 클리그먼은 2010년 사망하기 전까지 줄기차게 이 그림에 대해 “폴록이 1956년 7월 잔디 위에서 내게 직접 그려준 러브레터였다”고 주장했다. 크래스너가 클리그먼을 미워해 그녀 소유의 유작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풍문도 있다. 크래스너 입장에서는 클리그먼이 단순히 연적일 뿐 아니라 폴록의 죽음을 앞당긴 원흉이기도 했다. 폴록은 술에 취한 채 클리그먼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즉사했기 때문이다.
--- p.229「잭슨 폴록: 혼돈이라니, 빌어먹을!」중에서


  출판사 리뷰


  반 고흐는 자살하지 않았다? 화가의 마지막 그림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들

  화가가 생을 마감하기 전 최후로 남긴 작품이라 하면 으레 비장감과 비극성 혹은 무력감과 덧없음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 짐작하기 쉽다. 실제로 책에서 다룬 19인의 예술가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비극 속에서 화가들이 길어올린 작품에는 생에 대한 에너지와 열망, 끝끝내 놓을 수 없었던 희망과 염원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또한 일반에 널리 알려진 내용과 전혀 다른 놀라운 반전도 있었다.

  반 고흐의 진짜 유작 [나무뿌리]가 말해주는, 반 고흐 죽음의 진실


  많은 이들이 반 고흐가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라 믿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고흐의 진짜 유작이 아니다. 그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완성한 뒤에도 그림을 더 그렸다. 죽음 직전에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나무뿌리]가 바로 그것. 고흐의 동생 테오의 큰처남이 남긴 편지에는 고흐가 마지막까지 그리고 있던 그림에 대해 “죽기 전 그는 나무 덤불을 그렸다. 햇빛과 생명으로 가득한”이라고 언급돼 있다. 실제로 이 그림은 채색이 덜 되어 스케치가 그대로 보이는데, 한번 잡은 작품은 끝을 내고야 마는 고흐에겐 이례적인 일이다. 채 완성하지 못한 이 그림은, 고흐의 죽음이 알려진 대로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었다는 데 무게를 싣는다. 고흐에게 총상을 입힌 용의자인 10대 소년 세크레탕과 고흐의 악연. 자살로 오해받은 총상 사건의 전말이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의 두 연구사,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교수, 하버드대학 교수, 미국 내 총상 분야 최고전문가의 생생한 증언과 논쟁으로 펼쳐진다.

  이중섭, 잔 에뷔테른, 에곤 실레… 운명의 거친 옹이에 사랑을 맡기다

 

  운명의 거친 옹이는 수줍던 연인들을 비극으로 물들여 애달픈 유작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화가 이중섭, 그는 일제강점기에 야마모토 마사코와 국적을 뛰어넘는 열병 같은 사랑에 빠졌다. 가난 때문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며, 중섭은 그 유명한 ‘중섭의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허나 척박한 현실은 재회의 희망마저 꺾었고, 그렇게 살아갈 이유를 잃은 이중섭은 연작 [돌아오지 않는 강]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그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랑하는 모딜리아니가 결핵으로 끝내 숨지자 9개월 된 뱃속 아이와 함께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잔 에뷔테른, 아내와 아이를 스페인독감으로 잃은 후 장례식 화환이 채 시들기도 전에 그들 뒤를 따라야 했던 에곤 실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이 비극 속에서 보여준 능동적인 사랑의 방식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라는 사뭇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바스키아, 마크 로스코… 마지막 그림이 예언의 메시지가 된 화가들


  거리의 낙서화가로 출발해 부와 명성을 쌓고 ‘검은 피카소’라 불리었던 바스키아는 의미심장하게 [죽음과의 합승]이란 작품을 마지막으로 그린 후 자신의 주택에서 환풍기 앞에 기댄 채 숨졌다. 사인은 약물남용으로 인한 질식사. 그의 나이 불과 28세였다. 아프리카에서 새 삶을 살겠단 포부를 다진 바스키아였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유작에는 자신과 똑 닮은 인물이 해골에 올라타 죽음의 고삐를 당기고 있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섬뜩한 예언의 메시지로도 읽히는 이 그림에는 서구사회에서 백인에게 ‘발견’되고, 백인에게 ‘소진’된 바스키아의 피로했던 삶이 아프게 묻어난다. 바스키아 사망 후 그가 남긴 그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제도권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했다. 이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손목을 긋고 자살한 마크 로스코도 마찬가지다. 마크 로스코 역시 작업실을 물들인 붉은 피를 연상시키는 새빨간 채색화를 유작으로 남겼다. 그림으로 죽음을 예언한 이들의 삶은 참혹했지만, 화가의 삶이 참혹할수록 사후에 성공을 거둘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미술계의 얄궂은 속설을 이들은 자신의 생과 작품으로 증명하고 말았다.

  카라바조, 렘브란트… 화려한 성공, 뜻밖의 최후


  창녀를 성모마리아의 모델로, 거지와 평범한 속인을 성인의 모델로 그린 파격의 화가, 하지만 일상적 오브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줄 아는 천재적 재능으로 ‘로마 최고의 화가’라 칭송받은 카라바조. 안타깝게도 그는 화실 밖에서는 광기에 휩싸인 폭군이었고, 끝내 살인을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은 채 추방되었다. 그의 마지막 그림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는 자신을 향한 동정과 경멸, 그 복잡한 심사가 담겨 있다. 단시간에 성공한 화가의 반열에 올라 남부러울 것 없었던 렘브란트 역시 카라바조의 전철을 밟았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작품 [돌아온 탕자]에는 시작과 끝이 달랐던 그의 지난한 운명이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 허영과 낭비벽, 방탕한 스캔들로 인해 빚만 잔뜩 진 채 파산한 렘브란트는 결국 이름 하나 새긴 비석조차 갖지 못했다. 뜻밖에도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그림 속에는 마치 예수처럼 인자하게 아들을 감싸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림 속 탕자가 렘브란트 자신이라면, 그는 무엇을 용서받고 싶었던 걸까. 삶의 불가해를 착잡함으로 맞바꾸는 이 그림들은 우리에게 또 한번 ‘산다는 것’을 고민하게 한다.

  이외에도 시시각각 죄어오는 나치의 수색에 숨이 막힐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나는 살아있다’는 증거의 표시로 붓을 놓지 않은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 생때같은 아들과 손자를 연달아 전쟁터에서 잃은 후 ‘전쟁 반대’ 메시지를 새긴 작품을 줄기차게 생산한 케테 콜비츠, 세상이 반대한 사랑을 했다는 아픔을 기어이 숭고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미켈란젤로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이 아이러니!
  그림이 일러준 삶의 매서운 진실

  어쩌면 19인의 예술가들은 하나뿐인 마지막 유작을 남기기 위해 전 생애를 거치며 치열한 준비를 한 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묘비명’과도 같았던 예술가들의 마지막 작품을 살피는 것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죽음을 비껴갈 수 없는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화가의 마지막 그림만큼 잘 알려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남긴 마지막 그림을 통해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 이유, 체념해야 하는 이유, 기꺼이 용서해야 하는 이유, 비록 어긋났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삶을 되돌려야 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다. 이 이유들이 모일 때, 때로는 결별하고 싶은 이 고단한 생을,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랬던 것처럼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용기를 손에 쥘 것이다. 매일매일이 막연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만 잘 죽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 아니 삶의 매서운 진실이 화가의 마지막 그림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는 게 쉽지 않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이 책을 펼쳐봐도 좋다. 우리보다 앞서 치열하게 살다 간 화가들의 진심이, 인생의 의미를 풍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그림이 말을 걸어올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