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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라스트 크리스마스’ 조지 마이클 세상을 뜨다

금동원(琴東媛) 2016. 12. 26. 14:20

   누구나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노래들이 있을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팝가수 조지 마이클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매년 연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캐롤송과 함께 거리에서 자주 들려오는 노래다. 특히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날에는 특별한 사랑의 추억이 없어도 젊은 날의 설렘과 그리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로 불려지기도 한다. Careless Whisper도 너무 유명한 곡이지만

  이 노래를 부른 조지 마이클이 어제 12월 25일에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눈내리는 스키장을 배경으로 찍은 풋풋한 젊음이 전해지는 낭만적인 비디오도 큰 사랑을 받았었다. 자신의 노래와 비슷한 인생을 살거나 예감하는 가수들의 소식을 가끔 전해 듣는다. 가수와 노래와의 특별한 인연, 더 나아가 예술가의 삶과 그 자신의 작품과의 인연을 보면 참 신기하고 특별한 관계라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된다. (참치)

 

 ■ '라스트 크리스마스조지 마이클, 크리스마스에 세상 떠나

  -경향신문/ 등록2016-12-26 09:41수정 :2016-12-26 09:44

 

  대변인 25일 자택서 평안하게 영면”…사인은 밝히지 않아  

     


  지난 201299일 프랑스 파리에서 콘서트 공연을 하고 있는 조지 마이클의 모습.

  파리/AP 연합뉴스



  ‘라스트 크리스마스’라는 곡으로도 유명한 영국의 유명 팝가수 조지 마이클이 그의 노래 제목처럼 크리스마스에 숨을 거뒀다. 향년 53세이다.

  마이클의 대변인은 25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마이클이 집에서 평안하게 세상을 떠났다”며 “사랑하는 아들이자 형제, 친구였던 마이클이 크리스마스에 떠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 등이 전했다.

  1980년대 그룹 왬(Wham)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 ‘케어리스 위스퍼’라는 곡으로 유명세를 탄 조지 마이클은 87년부터 독립해 솔로로 활동했다. 솔로 데뷔 앨범인 <페이스>(Faith)는 전 세계에 2500만장 이상 판매됐으며, 지난 40년간의 누적 앨범 판매량은 약 1억만장에 달한다. 세 번의 ‘브릿 어워드’와 두 번의 ‘그래미 상’을 수상했다. 크리스마스 명곡으로 꼽히는 ‘라스트 크리스마스’, ‘클럽 트로피카나’ 등의 곡으로도 유명하다.

마이클은 이달 초까지만해도 다른 작곡가들과 함께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대변인은 “어렵고 힘든 시기에 가족들의 사생활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말하며 마이클의 구체적인 사인을 밝히지 않았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인 엘튼 존은 25일 마이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조지 마이클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매우 큰 충격에 빠졌다. 가장 친애하고, 관대했던 영혼,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를 잃었다. 그의 가족들, 팬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글을 올리며 마이클을 추모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https://youtu.be/E8gmARGvPlI


https://youtu.be/gpqmoBYkQfc


https://youtu.be/pIgZ7gMze7A



 


  왬(Wham!)이란 도발적인 이름으로 팝 신에 뛰어들어, 지난 1982년 데뷔 싱글 'Wham Rap (Enjoy What You Do)'를 발표하던 때만 해도, 그 둘에게는 달라붙는 검은색 가죽 바지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섹스 어필하는 '배드 보이'의 이미지가 짙었다. 하지만, 점차 스포트라이트가 핀 업 보이 앤드루 리즐리 대신 싱어 송라이터 조지 마이클에게로 옮겨가면서 급기야 1986년 '천국의 가장자리에' 이른 이들은 해체를 결심하게 되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믿을 것은 얼굴 뿐, 정작 기타 코드 하나 제대로 못 잡았던 앤드루는 이제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예견된 솔로행을 진행한 조지 마이은 1987년 [Faith] 앨범을 발표해, 타이틀 트랙을 필두로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 'I Want Your Sex'과 같은 넘버 원 싱글을 낳았다. 국내에서는 그윽한 재지(jazzy) 발라드 'Kissing A Fool'이 각별히 사랑받았다. 


  하지만 어쿠스틱 주의를 표방하며 포크를 결합한 그 만의 사운드를 들고 컴백한 2집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 Vol.1]은 'Praying For Time'과 'Freedom 90' 등이 거둔 히트에도 불구하고 판매고나 상업적 성공 면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앨범 홍보와 관련된 일체의 활동에 관여치 않을 것을 천명하면서, 뭔가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Vol. 2] 앨범은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되었고, 조지 마이클은 창작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버진(Virgin)]으로의 이적을 단행했다. 영국 소울의 첨병임을 자처하며 1996년 [Older] 앨범을 발표하지만 영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 시장에서의 인기는 미 대륙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 했다. 


   대신 1998년 4월, 뜻밖의 사건이 터지게 된다. LA에 위치한 공원 화장실에서 부적절한 행위 도중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져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coming-out)을 단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1999년 말에는 스탠더드 재즈 고전과 팝 히트 넘버들을 재해석한 [Songs From The Last Century] 앨범을 발표해 평단의 찬사와 일반 팝 대중의 냉담한 반응을 동시에 얻어냈다. 공창(公娼)을 그린 싱글 'Roxanne'의 뮤직 비디오가 일부 국가에서 방영 금지 소동이 일어난 일도 화젯거리였다. 그 밖에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든가 혹은 휘트니 휴스턴과 듀엣 곡 'If I Told You That'을 발표한 것 그리고 싸구려 팝 스타들로 물들어가는 영국 팝 음악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신문 기고문과 관련된 소식도 입수되었지만, 정작 신보를 갈망하는 팬들의 갈증은 쉽게 풀릴 줄 몰랐다. 


   하지만 존 레넌이 1971년 'Imagine'을 작곡하는 데 사용했던 피아노가 경매 시장에 나돌자 조지 마이클이 200만 달러 이상의 거금을 지불해 사들여 다시 리버풀에 있는 비틀즈 박물관에 기증한 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그가 스타인웨이(Steinway) 피아노를 사용해 신곡을 하나 녹음한 후, 돌려주기로 했던 일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중동(靜中動)'이라고 무언가 꾸준히 작업을 하고는 있었던 것이다. 


   2001년이 다 접어들 무렵 돌기 시작한, 조지 마이클이 [유니버설]로의 이적을 단행하리라는 혹은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라는 소문은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보다 정확히는 [유니버설] 산하의 레이블 [Polydor UK]로 소속사를 옮겼다. 올 상반기에 엄청난 파장을 낳을 싱글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이요, 한국계로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와 명성을 쌓은 뮤직 비디오 감독 조셉 칸(Joseph Khan)과 손잡고 LA의 모 스튜디오에 칩거하며 300만 달러짜리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2002년 3월 18일, 드디어 그 가공할 만한 위력의 새 싱글 ‘Freeek!’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이미 불법 유출된 MP3 음원을 통해 매력적인 펑키(funky)댄스 넘버의 맛을 보고, 파격적인 가사에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공개된 뮤직 비디오 클립은 클린 버전만으로도 이미 하드코어 포르노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 뮤직 비디오 출연을 제외하면 올 가을께 발표할 정규 스튜디오 앨범 발매 이전까지 대중들에게 일체 얼굴 드러내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장담이 있은 탓에 그만큼 주목도도 컸다. (출처:oimusic 2002년 12월 양중석)


   사실 현재 조지 마이클의 모습에 그의 올드 팬들은 당혹감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폴 매카트니, 엘튼 존의 뒤를 잇는 영국 국가 대표급 '멜로디 메이커'로서 재능을 과시했던 과거사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듀오 왬!(Wham!)은 물론이고 'Faith(4주)', 'Father Figure(2주)', 'one More Try(3주)', 'Monkey(2주) 등 무려 4곡의 빌보드 1위를 쏟아냈던 솔로 데뷔작 [Faith](1987), 한층 깊어진 동시에 여유로운 느낌을 담아내며 800만장을 팔아치운 2집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1990)에서 들려준 그의 선율은 매혹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급격히 변화된 시점은 [소니]와의지루한 법정 공방부터였다. 아티스트의 자율성에 대해 깊이 각성한 그는 '고의적으로' 비 대중적 곡들을 쓰기 시작했다. 비록 3집 [Older](1996)를 통해 영국 내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지만 귀에 착착 감기는 맛은 예전만 못했다. 대신 오랜 기간 천착해왔던 흑인 필을 대폭 주입시켰다. 


  이런 그의 음악적 방향타는 4번째 솔로 앨범이자 재즈 커버들만으로 채운 [Songs From The Last Century]로 결실을 맺었다. 본격적인 '재즈 보컬리스트'임을 선언한 것. 재즈 클래식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폴리스의 'Roxanne', 유투 멤버들이 제작한 'Miss Sarajevo' 등을 통해 강한 변신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제 2의 'I Want Your Sex'라 부를만한 싱글 'Freeek!'을 내놓으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조셉 칸이 연출한 뮤직 비디오가 특히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조지 마이클은 고난 끝에 획득한 아티스트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음악 여정을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그의 내면 속에는 마치 결코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물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출처:oimusic 2003년 06월 양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