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함께 떠올랐다
[중앙선데이]입력 2017.03.26 00:02
물 밖 세월호가 ‘비정상의 정상화’
작가 김연수의 ‘세월호 1073일’
지난 23일 아침, TV를 켰더니 세월호를 인양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바닷물에 살짝 잠긴 세월호의 옆면이 보였다. 시커멓게 물때가 끼고 녹슬어 있었지만, ‘SEWOL’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차마 뭐라고 말하기 곤란한 감정이 들었다. 굳이 말한다면, 외진 수로에 방치된 강아지의 웅크린 사체를 보는 것 같았다. TV에서는 그 배가 바닷속에 1073일이나 빠져 있었다고 했다. 가여웠다.
비상식적 침몰 바닷속에 방치
진상규명 외면 정권 붕괴 자초
진실 향한 발걸음 이제 시작
‘침몰은 모두의 책임’ 글 썼다고
좌파 딱지 붙여 억압한 몰상식
이젠 복원하고 정상국가 향해서
흔들렸던 공동체 기본 회복할 때
그 가여운 배를 보며 나는 연대표(timeline)와 역사(history)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연대표는 별들의 밝기를 기록하는 일과 같다. 연대표에서 사건들은 독립적으로 기록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인용했다고. 또 같은 날,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인양 결정을 내렸다고. 역사는 이 독립적인 사건들을 서로 연결해 별자리를 만드는 일과 같다. 역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스스로 두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오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재킹 바지선 사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던 세월호를 보면서 내가 느낀 감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인과관계를 알아내는 데 대단한 통찰력이 필요하진 않다. 그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극히 평범한 상식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배 앞에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변호인이 진실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탄핵되어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직후에, 그리고 검찰 조사를 마친 뒤. 박 전 대통령에게 어떤 진실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 그 진실은 밝고 아름다워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 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내가 본 진실은 밝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건 대면하기 두렵고 끔찍한, 말하자면 인양된 세월호의 선체 같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에 있어서도 말하고 싶은 진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세월호는 진실의 대양은 고사하고 상식의 해협조차도 빠져나가지 못한 채 표류하는 중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금 자신들의 진실을 밝히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박 전 대통령과 참모들의 책임이 크다. 이 사건을 상식조차 통하지 않게 만든 그들과 진실을 얘기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아직은 상식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충돌 등 외부 요인이 없는 한 여객선은 침몰하지 않는다. 종이배도 아니고 항해하다가 넘어지는 배라니 상상할 수도 없다. 만에 하나 침몰한다고 하더라도 구명정도 있고 탈출 시간도 충분하니 승객들은 대부분 구조된다. 완전히 배가 뒤집어질 때까지 객실에서 대기하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대규모 참사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정부의 모든 역량을 구조에 집중하라고 신속하게 지시한 뒤 상황을 점검할 것이다. 우파든 좌파든, 내성적이든 외향적이든 그게 대통령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식은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의문은 당연했다. 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는 침몰했는가? 왜 전체 476명 중 304명의 승객은 죽거나 실종되어야만 했는가? 왜 많은 승객이 그 자리에서 대기하다가 죽어가는 동안, 선원들은 구조될 수 있었는가? 왜 안산 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나왔는가?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정부를 향했다. 전대미문의 이 비상식적 상황에 대한 의문을 정부는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박근혜 정권의 국정 어젠다는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국가와 사회 전반의 비정상을 혁신하여 ‘기본이 바로 선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정부는 이 국정 어젠다에 맞게 행동할 것이다. 그러자면 사건의 진상부터 규명해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비정상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에 2014년 여름이 되면서 정부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마치 반정부 단체인 양 대하기 시작했다. 그런 정부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한,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 때문이었다. 나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정부가 그들을 외면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주변에는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뒤 정부가 보인 태도에 삶이 바뀌었다는 사람이 꽤 된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본 중의 기본 상식이 뿌리부터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에 글을 하나 실었다. 세월호의 침몰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내용의, 너무나 상식적인 글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나는 그 책에 글을 실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이 책을 펴낸 문학동네를 ‘좌파’라고 지칭하며 지원을 줄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출판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실소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좌파는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을 뜻하는 것일까? 그런 맥락이라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것도 좌파들이나 할 수 있는 표현이지 않겠는가?
맹골수도에서 떠오르는 세월호의 선체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눈으로 확인시켜줬다. 세월호의 인양은 지난 3년 동안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 억압해온 사회적 상식을 복원하고 이 나라를 정상국가로 복귀시키는 일의 첫 단계다. 박근혜 정권은 일찌감치 세월호를 인양했어야 했다. 이 일을 자신의 탄핵과 연계시킨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악의적인 마음도 없이 담담하게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오네’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또 완성이 됐다. 여기에는 어떤 교훈이 있을 것인가?
인양 과정을 전하는 뉴스를 지켜보는데 세월호가 침몰하고 난 뒤의 여러 날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혼란과 두려움과 부끄러움과 고통이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심정으로 보도를 지켜봤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양 과정의 여러 고비들을 넘기고 사실상 성공했다는 뉴스에 진심으로 기뻐했다는 사실이다. 이 기쁨의 경험은 소중하다. 애당초 건강한 공동체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경험하고 지나왔었어야만 하는 기쁨이니까. 이 기쁨은 조금씩 우리 사회가 상식을 되찾고 있다는 신호다.
세월호 인양의 교훈을 찾을 때는 이 기쁨에 근거해야만 한다. 진상은, 매실밭에서 발견된 백골의 변사체와 같은 것이라 직시하려면 이성과 상식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그렇지 않다면 견디지 못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다. 외면한다는 건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으며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공백 상태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지와 무능의 증명이 결백의 증거라도 되는 양 자신은 전혀 몰랐다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무지와 무능을 자처한다. 이것이 그들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변론이다. 최선일 때, 무지하고 무능한 정권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주장과 달리 그들은 전혀 무지하지 않았고 무능하지 않았다. 무능 안에서 그들은 많은 일을 했다. 예컨대 그들은 거기 맹골수도에 누워 있던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무능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유가족들 앞에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렸는데 이를 두고 무지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무지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고 능력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진상을 외면한 그들이 무엇을 알았다는 뜻일까? 그건 그들이 환영을 보고 환청을 들었다는 뜻이다. 2014년 여름, 나를 놀라게 했던 정부의 태도 변화는 바로 이 헛것의 감각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 헛것의 감각은 ‘공통 감각’(common sense)이라고 말할 때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그들과는 대화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환영을 보고 환청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초월적이라고 생각한다. 초월적이라는 건 이 세상을 뛰어넘는다는 뜻, 그러니까 인양된 배의 뒤쪽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세월’이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바다. 이 세상을 뛰어넘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종교의 영역이다. 그 영역에서는 때로 이성과 상식에 벗어나는 일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정치는 초월적일 수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가 없다는 말이다. 지지자들을 제외한 다수의 국민들이 적으로 보이는 환영과 진상을 밝혀달라는 요구가 정권에 위해를 가하려는 음모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환청에 사로잡혔던 박근혜 정권은 종교적 맹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초월적 감각에 의해 스스로 붕괴됐다. 붕괴된 그 자리에서 세월호가 인양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 어젠다는 이렇게 완성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김연수 작가 writerkys@gmail.com
김연수 소설가. 47세. 소설집『사월의 미, 칠월의 솔』『세계의 끝 여자친구』,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산문집『소설가의 일』등을 썼다.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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