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사
노발리스
그대는 내게 고귀한 충동을 일으켜
넓은 세계의 정서 깊숙이 빠지게 하네.
그대 손이 나를 잡아 믿음을 주니
온갖 폭풍우를 헤치고 나를 날라주리.
그대 꾸중하면서 아이를 돌보며
그와 더불어 전설의 목초지를 지나네.
부드러운 여인의 원형(原型)으로서
소년의 가슴을 한껏 뛰놀게 하네.
무엇이 이 지상의 집에 나를 얽매어놓고 있는가?
나의 가슴과 나의 삶은 영원한 당신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대 사랑은 이 지상에서 나를 감싸주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그대 고귀한 예술에 나를 바칠 수 있노라.
그대, 사랑하는 이여, 뮤즈가 되어
내 시(詩)의 고요한 수호신이 될지니,
영원한 변화 속에서 이곳 지상의
노래의 은밀한 힘이 우리에게 인사하노라.
이곳에서는 젊음으로서 우리를 에워싸 흐르고,
그곳에서는 영원한 평화로서 그 나라를 축복하도다.
그 힘은 우리의 두 눈에 빛을 부어주며
우리에게 모든 예술의 의미를 일러 정해주며
기쁜 마음, 피곤한 마음을
깊은 귀의심(歸依心)에 빠진 가운데 즐기고 있는 바로 그것이지.
그대 가득한 가슴에서 나는 삶을 마셨지.
나는 그대로 해서 나의 모든 것이 되었고
즐겁게 내 얼굴을 들 수 있었소.
아직도 내 높은 뜻은 깜박거린다오.
거기서 나는 그 힘이 천사로서 내게 떠오르는 것을 보았지.
그대 팔을 향해 날아가, 눈떠 있는 것을 보았소.
-『파란꽃』,(열림원, 2003)
『파란꽃』
노발리스 저 / 김주연 역 | 열림원
○책 속으로
오! 시간은 곧 지나간다.
오라, 사랑하는 이여. 빨리!
"사람들은 사랑만을 관찰해왔지. 시의 필요성이 사랑에 있어서처럼 그렇게 맑게 인간성의 성분을 이룬 일이 없네. 사랑은 말없는 것, 단지 시만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걸세. 혹은 사랑 그 자체가 최고의 자연시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닐 거야."
깊은 밤에 미소지으며
아직도 나는 계곡에 사네
쟁반 가득한 사랑이
매일같이 바쳐지기 때문이라오
당신의 거룩한 눈물은
내 영혼을 높여주나니
나는 하늘의 문앞에서
이런 생활에 취해있다오
행복한 조상에 마음 달래며
내 마음은 어떤 아픔도 걱정하지 않네
오, 여인들의 여왕이
내게 그 성실한 가슴을 주네
이 보잘 것 없는 소리가
눈물로 지새우는 세월을 씻어주며
그를 영원히 간직하게 하는
하나의 모습이 그에게 드리워져있네
그 무수한 긴 낯들이 내게는
한 순간으로만 생각될 뿐
나는 여기로 날아와
고맙게도 뒤를 돌아다보고 있네
~P102~103
" 비천한 것에 고상한 의미를, 평범한 것에 신비스러운 외관을, 이미 알려져 있는 것에 새로운 품격을, 유한한 것에 무한한 모습을 부여한다."는 저 유명한 『단장Fragment』 속 선언은 이같은 그의 전면적, 상대적, 종합적 사물인식을 반영한다. P 253
오늘날 세계문학에서 낭만주의 작품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소설 파란꽃은 그것이 의미하는 사상의 깊이에 있어 환상적이니 몽환적이니 하는, 일견 부정적인 평가에만 몸을 내맡길 정도의 이른바 분위기 소설은 아니다. 그렇기는 커녕 이 작품은 우주의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체험과 관념 양면을 통해서 꾸준히 반복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 기저에는 인간과 인간, 나아가서는 인간과 동식물, 무생물인 사물 그리고 사물과 사물사이에 사랑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해명해놓은 위대한 사상서이다. -작품해설 중에서-
○
노발리스는
1771년 독일의 오버비더슈터트에서 명문(名門) 하르덴베르크 가(家)의 11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다. 예나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피히테 철학과 실러, 그리고 스피노자에 심취했었다. 14세의 어린 소녀 소피 폰 퀸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그녀의 너무도 이른 죽음으로 인한 비애를 시로 노래한 「밤의 찬가」가 널리 알려져 있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설 외에도 유명한 시 를 남겼다. '노발리스'라는 필명은 라틴어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스물두살에 소피라는 열세살 소녀와 사랑에 빠지고 약혼했지만, 그녀가 열다섯의 나이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시인이 되었다. 그 또한 스물아홉의 나이에 요절했으며 '파란 꽃'은 그의 사랑과 사랑을 잃은 슬픔으로 시인이 되는 과정을 온갖 신비스러운 에피소드들에 혼합한 미완성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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