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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기형도

금동원(琴東媛) 2019. 3. 8. 09:23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기형도 30주기 기념)

  기형도/ 문학과 지성사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문학과지성사, 2019)는 기형도의 30주기를 맞아 그가 남긴 시들을 오롯이 묶은 기형도 시 ‘전집(全集)’입니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1989)에 실린 시들과 미발표 시들 97편 전편을 모으고, ‘거리의 상상력’을 주제로 목차를 새롭게 구성한 책입니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정거장에서의 충고’와 함께 생전의 시인이 첫 시집의 제목으로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여전한 길 위의 상상력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두터워지는 기형도 시의 비밀스런 매력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그의 시를 찾고 또 새롭게 읽기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작가 소개

기형도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한 시인 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 출생. 1979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하여 1985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을 앞둔 1984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 · 문화부 · 편집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대학 재학 시절 윤동주문학상 등 교내 주최 문학상을 받았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가 당선되면서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중앙일보에 근무하는 동안 여러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시집 『입 속은 검은 입』을 상자했으나, 출간을 준비 중이던 1989년 3월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그러나 살아생전 시집 한 권 묶지못하고, 첫시집이 유고시집이 되어버린 이 시인은 20년이 넘은 지금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시를 꿈꾸는 모든 문학청년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문학 대중의 압도적인 열광 속에, 한국 문학의 뜨거운 신화로 그리고 꺼지지 않는 생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20년이 되는 2009년 3월을 기준으로, 1989년 5월에 출간된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초판 24쇄, 재판 41쇄, 총 65쇄를 찍었으며 24만 부가 판매되었다.

  1999년 3월에 그의 10주기를 기리며 출간된 『기형도 전집』은 초판 15쇄를 찍었으며 4만 7천 부가 판매되었다. 또한 그의 20주기에는 그를 아끼고 추억하는 지인과 문우들의 산문, 그리고 그의 사후 그의 시를 분석하고 의미 지은 여러 비평가들의 밀도 높은 평문들을 한데 모은 『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가 출간되기도 하였다.

  어둡고 축축한 현실에서 길어올린, 불길하고 처연한 상상력의 시어들은 90년대의 어떤 시인도 넘어서지 못한 울림을 낳았다. 평론가 남진우씨가 기형도 시의 양대 질료로 요약했던 '환멸과 환상' 이야말로 지난 천년의 끝무렵을 지배하는 심상이기 때문일까. 기형도 시의 처절한 아름다움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이란 이름을 붙였던 김현은 '그의 시는 현실적인 것을 변형시키고 초월시키는 아름다움, 추함과 대립되는 의미의 아름다움을 목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모습에 대한 앎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목표한다'고 읽어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 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한 시 60편을 담고 있는데, 그의 시 세계는 우울한 유년 시절과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들을 기이하면서도 따뜻하며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공간 속에 펼쳐 보인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출판사 리뷰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문학과지성사, 2019)는 기형도의 30주기를 맞아 그가 남긴 시들을 오롯이 묶은 기형도 시 ‘전집(全集)’입니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1989)에 실린 시들과 미발표 시들 97편 전편을 모으고, ‘거리의 상상력’을 주제로 목차를 새롭게 구성한 책입니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정거장에서의 충고’와 함께 생전의 시인이 첫 시집의 제목으로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여전한 길 위의 상상력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두터워지는 기형도 시의 비밀스런 매력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그의 시를 찾고 또 새롭게 읽기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은 기형도라는 이름을 잊게 만들기보다는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어떤 문학, 어떤 이름들은 망각을 향해가는 시간의 힘을 거슬러가는 기이한 힘이 있다. 그 힘을 만든 것은 기형도 시 내부의 뜨거운 생명력이며, 기형도라는 이름과 함께 30년을 보냈던 익명의 독자들이다. 저 30년 동안 새로운 독자들이 나타나 기형도 시를 새로 읽었고 다시 읽었다. 기형도의 시는 잊히기는커녕 끊임없이 다시 태어났다. “추억은 이상하게 중단된다” (「추억에 대한 경멸」)라는 그의 문장과는 달리 기형도의 추억은 중단된 적이 없다. 30년 동안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이 계속 출현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문학사의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

  우리는 다시 기형도의 거리에 서 있다.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질투는 나의 힘」)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라고 탄식하던 거리, 길 위에서 문득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진눈깨비」)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읊조리던 바로 그 거리 말이다. “너무 많은 거리가 내 마음을 운반했구나”(「가수는 입을 다무네」)라는 문장처럼 시인은 거리에서 어떤 낯섦과 경이를 마주한다. 거리에서 그는 목표도 경계도 없는 헤맴 사이로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꾸었다. 거리는 가야 할 곳을 알려주지도 머물지도 못하게 하지만, 다른 시간을 도래하게 하는 유동성의 공간이다. 거리의 낯선 순간들에 대해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 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 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푸른 저녁」 시작(詩作) 메모)라고 쓴다. 기형도는 거리의 혼란과 현기증을 새로운 감수성의 원천으로 만들었다. 거리는 특정한 장소에 고정될 수 없게 하고 그 장소의 정체를 알 수 없게 한다는 측면에서 ‘장소 없음’의 공간이지만, 장소 없음은 역설적인 희망의 사건이었다. 거리는 현대적 불안의 공간이며, 무한한 잠재성의 시간이었다.

  기형도의 거리는 시인의 사회적 경험과 미적 감각이 동시에 관여하는 현대적인 지점이다. 거리는 동시대의 사회적 감각을 일깨웠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리에서 쓰는 자로서의 새로운 심미적 개인의 얼굴을 탄생시켰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입 속의 검은 잎』 시작(詩作) 메모)는 기형도와 그 세대의 문제적인 감수성이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같은 글)라는 고백은 그 시적 감각의 일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 문장을 변형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형도의 상상력은 고통이었으나 우리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하지만, 고통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만이 아니며 권위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기형도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이 우정의 지평에서 아무도 기형도를 독점할 수 없다. ‘거리’의 문맥을 지우고도 기형도를 읽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기형도의 시 앞에서 다만 그 고통을 나누어 사랑할 뿐, 기형도 시의 비밀은 세대를 이어가며 오히려 풍부해진다. 깊은 사랑의 경험은 대상의 정체를 파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밀을 더 두텁게 하고 그 앞에서 겸손하게 한다. 지속되는 사랑은 새로 읽기와 다시 읽기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차라리 은밀한 무지를 발견하는 일이다. 바라건대 이 시집을 통해 기형도 시의 비밀이 더 두터워지기를.” - 이광호(문학평론가), 「발문에서」

 

 

우상호∙정재숙∙성석제… 아직도 뜨거운 기형도를 기억한다

 

※‘영원한 젊음의 상징’이자 단 한 권의 시집, 그것도 유고 시집(‘입 속의 검은 잎’)으로 30년간 회자되는 시인, 기형도(1960~1989). 30주기(7일)를 맞아, <한국일보>가 지인들에게 그에 대한 기억을 꺼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물었다. 기형도는 왜 여전히 이토록 뜨거운 이름일까. 2019년에 그의 시를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첫 시집 발간을 준비하던 1989년 3월 7일 스물 아홉의 짧은 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기형도 시인(왼쪽) 그가 남긴 시들은 ‘유년’과 ‘청춘’의 통과의례가 됐고, 많은 이들이 어느 한 시절 ‘입 속의 검은 잎’을 옆구리에 끼고 걸었다.

 

 

 

◇연세문학회 후배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 쓰려고?” 문학 청년을 꿈꾼 연세대학교 1학년 시절, 쭈뼛거리며 연세문학회 사무실을 기웃댄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 사람이 기형도 형이었다.

선배들 모두 “네가 무슨 문학이냐”고 비웃을 때도 형만은 내 시가 좋다고 했다. 내 시를 한 구절씩 짚어 가며 “상호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좋은 시인이 될 거야” 응원해 줬다. 내가 지금까지 문학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는 건 형이 건넨 위로 덕분이다.

 

형은 시를 쓰면 제일 먼저 내 의견을 묻곤 했다. “잘 몰라요, 그런데 좋네요”라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형은 늘 내 생각을 궁금해 했다. 그때 본 시들이 기형도 시집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시로 따지면 연세문학회에서 내가 형의 직계다. 형이 직접 그렇게 말해준 적은 없지만.

형은 시에 모든 걸 바쳤다. 부끄럽거나 괴로운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고 시에 솔직하게 드러냈다. 사람들이 여전히 형을 추억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아픔과 슬픔을 감추지 않은 그 마음이 애틋하고도 아름다워서일 거다. 형은 비가 오면 학교 써클룸에서 트윈 폴리오의 노래를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불렀다. 그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형은 시 안에서 늘 괴로워했지만, 따뜻한 사람이었다. 형이 보고 싶을 뿐이다.

 

◇기자 후배 정재숙 문화재청장

기형도 선배는 늘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1987년 겨울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시 낭송회 현장.

나는 평화신문에, 그는 중앙일보에 몸담고 있을 때였다. 후줄근한 회색 외투에 부스스한 머리, 그 뒤로 비치는 기 선배의 자아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이제 와 보니 죽음조차도 그의 중얼거림을 닮았다. 예민한 자아, 상실감, 회의주의 같은, 누군가는 비판하지만 많은 이가 사랑하는 투박한 염세 말이다. 그의 창창한 앞날을 기대했던 언론계 동료들은 1989년 그의 부고에 함께 통음했다. 안타까웠다.

그의 시는 통렬한 시대 인식, 나아가 자아 인식에 빠지게 만든다. 1980년대라는 뜨거운 시대를 함께 거쳐온 사람으로서 그의 시를 읽을 때면 ‘젖어 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유를 그리워하던 그 때의 우리와 비틀거렸던 젊은 시절 기억이 소환된다.

3월 초가 되면 기 선배를 떠올린다. 그의 시 ‘물 속의 사막’과 함께.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우수수 아버지 지워진다, 빗줄기와 몸을 바꾼다//아버지, 비에 묻는다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 시를 통해 같이 울고, 위안을 얻고, 결국엔 슬픔에서 빠져 나온다.

 

◇절친 성석제 소설가

만 스무 살에 만나 스물아홉을 꽉 채우고 갔으니 알고 지낸 세월이 10년 남짓이다. 형도와 함께 한 10년은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라기보다는 긴 여행을 함께 다닌 시간 같다.

형도의 죽음 이후 30년은 형도가 부재한 상태에서의 여행이었지만, 늘 함께 여행을 다닌 느낌이다. 형도가 내 삶과 존재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소모되고, 나이 들고, 닳고, 지치지만, 형도는 영원한 젊음으로 남아있다. 생이 멈췄다는 이유만으로 형도가 젊게 기억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남긴 시와 산문들이 당대 젊은이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갖기 때문에 영원한 젊음의 상징이 됐다. 불안과 절망, 좌절과 희미한 희망. 형도가 포착해 시에 투영한 젊은 세대의 속성은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그의 시가 영원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형도는 모든 사람이 본인과 가장 친했다고 회고하게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참 다정다감한 친구였다. 그의 시도 그렇다. 모든 사람이 그의 시를 읽으며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지게 하는 힘이 있다. 보통의 시인은 쉽게 이르지 못하는 경지다. 윤동주와 김소월이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 읽히듯, 훌륭한 시인들의 시는 계속 읽힌다. 형도의 시 역시 그럴 것이다.

 


왼쪽부터 연세문학회 후배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기자 후배인 정재숙 문화재청장, 절친이었던 성석제 소설가와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문학과지성사에서 일하며 기형도 시인이 남긴 시로 작업할 기회가 많았다. 올해 30주기를 맞아 시 전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와 트리뷰트 시집 ‘어느 푸른 저녁’을 낸다.

이렇게 책을 만들고 알리는 것이 남은 사람으로서 문학적 우정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1989)은 30만부가 판매됐다. 반짝 인기가 만든 숫자가 아닌, 매년 1만 명의 새로운 독자들이 차곡차곡 쌓은 숫자다. 이벤트나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세대가 계속 달라지는데도, 10대와 20대가 계속해서 시집을 찾아 읽는다.

‘엄마 걱정’을 비롯해 기 시인의 유년 시절을 다룬 시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청소년 독자가 그의 문학 세계를 만날 기회를 열었다. ‘스물 아홉 살의 요절’이라는 사연이 드리운 청춘의 이미지는 그를 20대에게도 언제나 유효한 이름으로 만들었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엔 ‘기형도 감수성’이라는 세계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기형도를 읽는다는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읽는다는 뜻이다. 그의 시는 지금 읽어도 낡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새로운 감수성과 상상력의 원천으로 기능한다. ‘동시대성’은 그가 단 한 권의 시집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다.

 

◇직속 후배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1987년 중앙일보 문화부로 발령받아 가니 거기 기형도 선배가 있었다. 삼엄한 시대였다. 5공 치하였고, 6월 항쟁이 있었다. 등단하고 한동안 시를 많이 못 쓰던 선배가 그 해부터 폭발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의 시를 본격적으로 썼다.

회사 편집국에 앉아 있으면 선배가 시를 보여주곤 했다. 당시 선배의 시를 가장 처음 읽은 사람이 아마도 나였을 것이다. 나로서는 선배의 시에 좋다고 하든 나쁘다고 하든 한마디씩 거들어야 했으니, 고역 아닌 고역이었다(웃음). 선배의 시는 울적하고 어두웠지만, 사람은 밝고 명랑했다. 블랙유머를 구사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질투는 나의 힘’ 같은 시 제목은 그런 블랙 유머다. 선배는 술은 한 잔도 못했지만 엄청난 골초였다. 편집국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선배의 시에는 ‘환상’과 ‘환멸’이 공존한다. 절망하고 비판하면서도 앞날에 대한 환상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20대의 속성이다. 선배는 노래를 참 잘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젊음이란 무엇인가(What is a youth)’를 참 잘 불렀다. 노래 제목처럼, 선배의 시가 젊음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시로서 오래도록 읽히는 게 아닐까 싶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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