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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오래된 질문 / 마종기

금동원(琴東媛) 2019. 3. 30. 08:51

오래된 질문

 

마종기

 

여러 개의 꽃을 가진 부자보다

한 개의 꽃을 겨우 가진

네가 행복하구나.

 

한 개의 꽃만 있으니

그 꽃의 시작과 끝을 알고

꽃잎의 색깔이 언제쯤

물 드는지, 비밀스럽게

언제쯤 향기를 만드는지.

 

다가가면 왜 미소를 전하는지,

몇 시쯤 잠이 드는지.

잠이 들면 그 숨소리도 하나씩

다 들을 수 있는 황홀,

꽃을 한 개만 가진 이가

소유의 뜻을 세밀하게 아네.

 

그러나 언젠가 나이 들어

다 늙고 시든 몸으로

우리가 맨 땅에 질 때,

생전의 모든 의미는

꽃의 어느 기억에 남을까.

아깝고 귀하다고

누가 우리 가까이 다가와

빈손을 잡아 잠 깨워줄까.

 

기도해 주어!

   -죽은 내 친구 규창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반신불수가 된

내 오랜 친구를 병문안 갔더니

친구는 침대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성한 한쪽 손으로 내 옷을 꽉 잡은 채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기도해 줘! 야, 기도해 주어!

 

착하고 빠르고 누구보다 똑똑하던

나라 최고의 외과 의사로 이름 날리던

그 명성만큼 애타게 눈물 흘리며 말했다.

야, 기도해 주어! 종기야, 부탁해!

물론 나에게만 청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 같은 신자의 기도 발은 약하고

네가 잘 듣도록 큰소리 내는 기도가

두서없을 까지 기도를 부탁하는 이 친구,

 

살려주세요. 늦었지만 드디어 당신을 찾는

이 친구의 지향을 다독여 위로해 주세요.

내 기도가 어느 틈에 몸에 스며들었는지

문득 네가 천천히 만족한 듯 웃더구나.

그런데 나는 오히려 눈물을 흘리고 말았네.

 

내 성심이 약해 친구의 차도는 별로였지만

반 년 만에 귀국해 찾아가니 명랑해졌고

마음도 편안하다며 모두에게 고맙다 더니

삼년이 좀 지나서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고맙다는 게 유언이었고 편안하게 눈감으며

내게까지 인사를 남겼다는 부인의 전언.

 

그래, 모두가 다 가는 길 우리는 다시 만나겠지.

기도는 한마음의 소망,

보이지 않는 믿음의 속삭임,

문득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나를 향한다.

기도해, 기도해 주어!

누구지? 내 안의 그 목소리는.

 

 

-『본질과 현상』,(2019 봄호, 통권 55호)

 

  마종기는 시인. 의사로서 도미하여 오하이오 의대와 톨레도 아동병원에서 근무함. 『현대문학』으로 등단 이후 시집으로는 『조용한 개선』, 『변경의 꽃』, 『마흔두 개의 초록』 등 여러권의 시집과 산문집 『우리 얼마나 함께』,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등이 있다.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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