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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

금동원(琴東媛) 2019. 6. 1. 09:02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 /최민 역  | 열화당

 

 

 

  존 버거(John Berger)를 미술평론가로 널리 알려지게 한 작품으로, 1972년 초판 발행 이후 미술전공자들의 필독서이자 일반인들의 교양서로서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Ways of Seeing』. 국내에서도 이미 다른 출판사 세 곳을 통해 소개되었으나 번역상의 오류 또는 여러모로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은 곰브리치(Gombrich E. H.)의 『서양미술사』의 역자로 정평이 나 있는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최민(崔旻)의 번역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역자는 존 버거의 간결한 언어에 담긴 난해함을 텍스트와 이미지에 대한 깊은 이해로 친절히 풀어내며 독자들을 이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무엇보다 이미지도 하나의 텍스트로 읽히기를 바랐던 원작자의 의도를 살려 원작과 거의 같은 순서로 이미지와 텍스트가 흐르도록 편집했다.

  전통적인 미술사나 미술평론에서는 보통 미술작품을 볼 때 작품을 감상하는 이상적인 방식이나 태도가 있다고 가정한다. 마치 어떤 정답과도 같은 감상법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존 버거는 이러한 감상법이 어딘가 잘못된 또는 편협한 방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바탕이 된, 1972년 방영된 같은 제목의 BBC 텔레비전 시리즈 강의에서 존 버거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보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

 

 

  ○작가 소개

 

존 버거

 

 

  존 버거(1926~2017)는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했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했다. 저서로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예술과 혁명』 『다른 방식으로 보기』 『본다는 것의 의미』 『말하기의 다른 방법』 『센스 오브 사이트』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모든것을 소중히하라』 『백내장』 『벤투의 스케치북』 『아내의 빈 방』 『사진의 이해』 『스모크』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풍경들』 등이 있고, 소설로 『우리 시대의 화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G』 『A가 X에게』 『킹』,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이 있다.

 

  역자

  1944년 함흥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 고고인류학과와 동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파리 제1대학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명예교수로 있다. 시집으로 『상실』 『어느날 꿈에』가 있고, 역서로는 『서양미술사』 『미술비평의 역사』 『인상주의』 『동서미술론』 『다른 방식으로 보기』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존 버거의 대표적 미술비평서

 

  존 버거(John Berger)를 미술평론가로 널리 알려지게 한 작품으로, 1972년 초판 발행 이후 미술전공자들의 필독서이자 일반인들의 교양서로서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Ways of Seeing』. 이 책은 국내에서도 이미 다른 출판사 세 곳을 통해 소개되었으나 번역상의 오류 또는 여러모로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이번에 열화당에서 출간하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는 곰브리치(Gombrich E. H.)의 『서양미술사』의 역자로 정평이 나 있는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최민(崔旻)의 번역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시각과 언어 1』(열화당, 1982)에서 「광고 이미지와 소비문화」라는 제목으로 원작의 일부를 소개한 바 있는 역자는, 존 버거의 간결한 언어에 담긴 난해함을 텍스트와 이미지에 대한 깊은 이해로 친절히 풀어내며 독자들을 이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무엇보다 이미지도 하나의 텍스트로 읽히기를 바랐던 원작자의 의도를 살려 원작과 거의 같은 순서로 이미지와 텍스트가 흐르도록 편집했다. 또한 존 버거는 복제 기술로 인해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변용되었는지, 누드화에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시선의 정체가 무엇인지, 실제처럼 보이는 유럽의 유화에 담긴 소유관계와 무의식적으로 노출되어 온 광고 이미지의 본질 등을 톺아보며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지고 있다.

 


  어떻게 볼 것인가

 

  전통적인 미술사나 미술평론에서는 보통 미술작품을 볼 때 작품을 감상하는 이상적인 방식이나 태도가 있다고 가정한다. 마치 어떤 정답과도 같은 감상법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존 버거는 이러한 감상법이 어딘가 잘못된 또는 편협한 방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바탕이 된, 1972년 방영된 같은 제목의 BBC 텔레비전 시리즈 강의에서 존 버거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보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 그는 영국의 제도화된 강단 미술사학의 암묵적 전제들을 거의 난폭하다 할 정도로 공격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기존의 표준적인 보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고, 또한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이는 하나의 표준적인 방식(The Way of Seeing)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는, 여러 가지 방식(Ways of Seeing)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존 버거의 이 BBC 연속 강의는 기존의 지배적인 미술사 담론에 대해 전복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급진적 비판의 시각을 보여 줌으로써 방송 당시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존의 미술사학과 미술평론에 미친 그 충격과 파장을 한마디로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강단 미술사학의 주류였던 양식사 중심의 형식주의적 미술사학의 틀에서 벗어난, 다방면의 새로운 연구 방향의 모색이 그의 문제 제기 이후 활발하게 논의된 점은 분명하다. 즉 그 이전에는 미술이나 미술사의 논의에서 흔히 배제했거나 또는 덜 중요하게 생각했던 계급, 인종, 성차(gender)의 문제, 그리고 작품의 소유나 후원과 연관된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미술을 이야기할 때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는 논점들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누드’에 드러난 남성적 시선


  특히 남성적 응시를 중요한 의제로 제시함으로써 시선과 젠더가 연관된 권력의 문제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제기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유럽 회화의 누드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여자이다. 누드화에서 주인공은 절대로 그림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림 앞에 있는 관객이며, 여전히 옷을 걸친 남자로 상정된다. 유럽의 누드 예술형식에서 화가와 관객(소유자)은 보통 남자이며 대상으로 취급받는 인물은 대개 여자다. 이런 불평등한 관계는 문화 전반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여자들의 의식을 형성한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일을 여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여성성을 살펴본다.

  오늘날 이 누드가 포함하고 있는 태도나 가치들은 광고, 저널리즘, 텔레비전과 같은 좀 더 다양한 미디어 속에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여자를 보는 본질적인 방식, 여자들의 이미지가 사용되는 본질적인 용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좋게 해 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존 버거는 회화 양식의 하나였던 누드화에 그려진 여성을 단순한 감상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캔버스 너머의 남성적 시선을 읽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선에 한정된 여성을 밝혀낸 것이다.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페미니스트 예술가 그룹인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는 존 버거가 제기한 남성적 시선을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해냈다. 그들은 앵그르(J. A. D. Ingres)의 유명한 누드화인 〈그랑드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를 ‘왜 여성들은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벌거벗어야 하는가?(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U.S. museums?)’라는 포스터로 패러디했다. 원작의 여성은 포효하는 고릴라의 머리를 가진 여성으로 뒤바뀌어 있고, 그 옆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품의 여성 화가는 3% 미만인 반면, 83%의 누드가 여성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광고 이미지로 본, 백일몽에 저당잡힌 현재

  과거, 소유자가 진짜 물건을 소유하거나 소유한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던 유화의 자리는 현대에 와서 광고로 대치되었다. 이 두 가지 매체는 모두 고도로 촉각적인 수단으로서, 그 이미지들이 보여 주는 실제의 사물들을 획득하였다는 느낌을 보는 사람에게 주지만, 그 기능은 꽤 다르다. 유화는 흔히 소유주가 자신의 소유물 또는 생활방식을 통해 이미 향유하고 있던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이 가치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더욱 확고하게 갖도록 한다. 반면 광고의 목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딘가 자기의 현재 생활방식이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데 있다. 광고에서는, 만일 그가 광고하는 물품을 구입한다면 그의 생활이 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한다. 광고는 그의 현재 상태가 아닌, 그보다 더 나은 미래를 느끼게 한다.

  이렇듯 광고는 미래 시제로 얘기하지만, 그 미래의 달성은 끊임없이 연기된다. 그럼에도 광고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광고가 내건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는가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주는 환상이 그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품는 환상에 얼마나 적절하게 들어맞느냐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광고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백일몽에 적용된다. 광고는 계속 연기되는 미래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현재를 배제하고, 그럼으로써 모든 생성과 발전의 여지를 아예 없애 버린다. 광고에서는 획득될 수 있는 능력 이외에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환상을 뿌리로 삼아 자본주의는 성장해 왔다. 과거 유화가 특정 계층이나 소유자에게 한정되었다면, 현재의 자본주의 문화는 광고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저자는 광고가 불특정 다수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중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광고 이미지의 사회적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지속 가능한 담론을 위하여

 


  이 책은 차례 없이 번호가 매겨진 일곱 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네 편은 글과 이미지가 함께 흐르고 있고, 세 편은 이미지만으로 채워져 있다. 여성을 보는 방식 및 유화 전통에서의 다양한 모순적 측면들을 드러낸 이미지들로만 구성된 에세이들은 글로 쓴 에세이들만큼 여러 가지 다양한 질문들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이미지들로만 구성된 에세이들에서는, 때로는 복제 도판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정보를 곁들이는 것이 제기된 논점을 벗어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판에 관한 정보는 이 책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도판 목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존 버거의 이러한 주장과 논의들은 소략하고 단정적인 발언들로 이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미술사 논의와는 문자 그대로 ‘전혀 다른’ 방식의 획기적 문제 제기라는 점과 미술사와 미술비평의 새로운 담론적 차원을 여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의 제기는 출간된 지 사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신선하며, 시각 문화 연구의 새로운 차원을 선구적으로 전개시킨 지적 촉매로서의 역할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삶과 추억] 부커상 받은 급진적 인본주의자 존 버거 잠들다

  [중앙일보] 입력 2017.01.04 00:51 수정 2017.01.04 15:09

 

 

이민노동자 문제를 다룬 『제7의 인간』을 공동 작업한 장 모르가 2006년 찍은 존 버거. [사진 열화당]

이민노동자 문제를 다룬 『제7의 인간』을 공동 작업한 장 모르가 2006년 찍은 존 버거. [사진 열화당] 

 

 

  신자본주의의 빈곤을 인상적인 문장으로 고발해온 미술·사회비평가 겸 소설가 존 버거(John Berger)가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 앙토니의 집에서 타계했다. 90세. 버거의 아들인 이브 버거는 1년여 병석에 있던 아버지가 평온하게 잠들었다고 전했다.
 

 

  영국 런던 태생인 존 버거는 몇 안 남은 우리 시대의 행동하는 지성으로 꼽힌다. 1958년 발표한 첫 소설 『우리 시대의 화가』를 시작으로 3부작 『그들의 노동과 함께하였느니라』, 시각 이미지의 새 독법을 제시한 『본다는 것의 의미』 『말하기의 다른 방법』 『다른 방식으로 보기』(사진) 등으로 ‘급진적 인본주의자’란 별명을 얻었다. 72년 소설 『G』로 영국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을 때는 상금 절반을 흑인민권운동을 위해 기부하며 식민주의 착취로 조성된 부커상을 에둘러 비판해 화제가 됐다.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해 온 버거는 알프스 산록에서 농사일을 병행해 농부와 작가, 은둔과 참여를 아우른 독창적 삶의 태도를 보여줬다. 자신의 글쓰기를 ‘포토카피’라 이름붙이고 글로 사진을 찍었다. 그는 한국 문화계에 끼친 영향이 큰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20세기 미술의 신화로 추앙받던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이면을 뒤집어 보인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는 서구 화단의 주류에 경도돼 있던 미술학도들의 시각을 교정해줬다. 

  존 버거의 책을 10여 권 펴낸 열화당은 오는 3월 서울 자하문로 온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존 버거의 스케치북 그리고 그의 초상’ 전을 열면서 고인의 마지막 저서인 『담소』와 50여 년 우정으로 그의 모습을 찍어온 스위스 사진가 장 모르의 사진집 『존 버거의 초상』을 출간한다. 

  2008년 편집자로서 존 버거를 만난 이수정 열화당 기획실장은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을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너무나 적확하게 표현한 영화라고 극찬하던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버거는 당시 한국 독자들과 긴급한 국제적 사안들을 격의 없이 나누고 싶다면서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일상에서 나는 패배를 모르는 절망, 체념하지 않는 절망을 체험하고 그걸 써왔다. 오직 이윤만을 경배하고 탐욕만을 부추기는 지구적 전제주의에 저항하는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자”는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버거는 “아직까지 마르크스주의자냐?”고 묻는 이에게 답했다. “자본주의가 보여준 이윤의 추구에 의해 광범위하고 극심한 파괴가 자행된 이 행성의 재난을 예고하고 분석했던 마르크스에게 어찌 주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그를 일러 미국 평론가 수전 손택은 “양심이 이르는 바에 따라 세속 세계를 이토록 주의 깊게 써낸 작가는 없었다”고 기렸다. 고인이 남긴 연대의 메시지는 그가 쓴 글의 한 대목에서 울려 퍼진다.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다시 한 번 죽으려 한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