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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를 본다/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금동원(琴東媛) 2019. 7. 21. 21:50

 

 

 

『기억이 나를 본다-2011 노벨문학상 수상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저  | 들녘

 

 

                                                                                                                                                               

○작가 소개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1931~)는 201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詩賞),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다수의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한 스웨덴 출신 시인. 1931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스톡홀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방에서 심리상담사(psychologist)로 사회 활동을 펼치는 한편, 20대 초반에서부터 70대에 이른 현재까지 모두 11권의 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는 지금까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한마디로 ‘홀로 깊어 열리는 시’ 혹은 ‘심연으로 치솟기’의 시이다. 또는 ‘세상 뒤집어 보기’의 시이다. 그의 수많은 ‘눈들’이 이 세상, 아니 이 우주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시 한편 한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고 무변하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트란스트뢰메르 시의 주요 영역이 되고 있지만, 처녀작에서는 잠깨어남의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전도되어 있다. 초기 시에서 깨어남의 과정이 상승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강/낙하의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시의 지배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하강의 이미지 주변에는 또한 불의 이미지, 물의 이미지, 녹음(綠陰)의 이미지 등 수다한 군소 이미지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트란스트뢰메르는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구사의 마술사임을 알 수 있다.

  초기 작품에서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을 보여주었던 그는 그후 더 개인적이고 개방적이며 관대해졌다. 그리고 세상을 높은 곳에서 신비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자연 세계를 세밀하고 예리한 초점으로 묘사하는 그를 스웨덴에서는 '말똥가리 시인'이라고 부른다.

  순간에 대한 강렬한 집중을 통하여 신비와 경이의 시적 공간을 구축하면서 우리들의 비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트란스트뢰메르.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인생의 빛나는 종합을 성취하였으며 자연과 초월과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시인의 작품을 통해 심연으로 치솟기, 혹은 홀로 깊어 열리는 시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 발간된 저서로는 『기억이 나를 본다』가 있다.

 

 

 책 속으로

 

 

기억이 나를 본다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여름 초원

 

너무 많은 것들을 우리는 보아야만 했다.

현실은 우리를 너무 많이 닳게 했다.

하지만 마침내 여름이다.

 

커다란 비행장. 관제사가 한 짐 한 짐

짐을 부려놓는다.

얼어붙은 외계인들.

 

풀과 꽃들의 나라, 우리가 착륙하는 곳.

풀 나라엔 초록 감독이 있고,

그에게 나를 신고한다.

 

 

 ○책 소개

 

  심연으로 치솟기 혹은 홀로 깊어 열리는 시-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는 정치적 다툼의 지역보다는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또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북구의 투명한 얼음과 끝없는 심연과 영원한 침묵 속에서 시인은 세상을 관조하며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낸다. 


  트란스트뢰메르가 보는 이 세상은 ‘미완의 천국’이다. 낙원을 만드는 것은 결국 시인과 독자들, 자연과 문명, 그리고 모든 이분법적 대립구조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벨상 수상후보이자 스웨덴을 대표하는 트란스트뢰메르 시집의 국내 출간은 경하할 만한 일이다. 이 세상의 끝, 등 푸른 물고기들이 뛰노는 베링 해협이 산출한 시를 통해 한국 독자들은 미지의 세계로 지적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읽는 사람들은 모두 꿈꾸는 방랑자들이기에.
김성곤(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Tomas Transtromer) 역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시인이다. 한국에 그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을 때 노시인은 흔쾌히 승낙하면서 자신의 영역본 시집을 주 텍스트로 삼아달라는 주문과 함께 한국어판 시집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스웨덴에서 ‘국민시인’으로 사랑받고 있는 트란스트뢰메르는 10여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어 지금까지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나,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인생의 빛나는 종합을 성취한 시인, 자연과 초월과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은 시인이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1931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이후 린쇼핑, 베스테로스 등 스톡홀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방에서 심리상담사(psychologist)로서 사회 활동을 펼치는 한편, 20대 초반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11권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하지만 50여 년에 걸친 시작 활동을 통해 그가 발표한 시의 총 편수는 200편이 채 안 된다. 평균 잡아 일 년에 네댓 편 정도의 시를 쓴 ‘과묵한’ 시인인 셈이다. 이러한 시작(詩作) 과정을 통하여 그가 보여준 일관된 모습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결코 서두름 없이, 또 시류에 흔들림 없이,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고요한 깊이의 시 혹은 ‘침묵과 심연의 시’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시는 50여 년에 걸쳐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 바탕에 있어서는 국내적으로 스웨덴 자연시의 토착적인 심미적 전통과의 연관 속에서, 그리고 세계 문학사적으로는 모더니즘 시의 전통과의 연관 속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이 모더니즘 전통의 핵심에는 파운드(Ezra Pound)의 ‘이미지즘’(Imagism)이나 엘리엇(T. S. Eliot)의 ‘몰개성의 시론’(Poetics of impersonality) 등이 놓여 있다.

 

  트란스트뢰메르는 지금까지 다수의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중에는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詩賞),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언젠가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그의 시는 지금까지 40개 언어 이상으로 번역되어 있을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대로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시는 미국의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 메이 스원슨(May Swenson), 영국의 로빈 풀턴(Robin Fulton), 아일랜드의 존 디인(John Deane) 등 수많은 영어권 시인들에 의하여 번역되어 영어 세계에는 이미 넓고 깊게 ‘태어나’ 있는바, 이번 시집은 이들 여러 개의 ‘영어 트란스트뢰메르들’을 나름대로 대조하고 종합하여 96편의 한국어 시선집을 엮게 된 것이다. 이는 자신의 영어판 시집에 준거해서 한국어 번역시선을 만들어 달라는 시인의 주문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한마디로 ‘홀로 깊어 열리는 시’ 혹은 ‘심연으로 치솟기’의 시이다. 또는 ‘세상 뒤집어 보기’의 시이다. 그의 수많은 ‘눈들’이 이 세상, 아니 이 우주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시 한편 한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고 무변하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트란스트뢰메르 시의 주요 영역이 되고 있지만, 처녀작에서는 잠깨어남의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전도되어 있다. 초기 시에서 깨어남의 과정이 상승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강/낙하의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시의 지배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하강의 이미지 주변에는 또한 불의 이미지, 물의 이미지, 녹음(綠陰)의 이미지 등 수다한 군소 이미지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트란스트뢰메르는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구사의 마술사임을 알 수 있다.

 

  중기 작품의 특징은, 세상 혹은 자연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은 사색에서 배태되어 천상과 지상과 지하를 넘나드는, 혹은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시가 된다. 이럴 때 그의 시의 자유분방함은 기독교 신비주의의 차원과 긴밀히 연관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때 그는 많은 비판을 받는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종교적 경사가 심하여 반대로 정치사회적 맥락이 거세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눈앞의 정치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그 핵심인데, 그러나 그는 이러한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시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으며, ‘침묵과 심연의 시’의 흐름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그의 시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정치사회적 발언을 시적으로 전혀 내비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급진도 반동도 아닌 제3의 길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전반적인 중용의 인생관, 혹은 ‘침묵과 깊이의 인생관’에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00퍼센트’라는 표현을 극단적으로 혐오한다. 진실은 100퍼센트와 0퍼센트 사이의 어느 지점에 신비롭게 숨어 있으며, 그 신비스런 진리의 길을 올곧게 따라가는 것이 ‘똑바로 선 인생’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세상의 신비의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하며, 한 목표지점에 도달한 순간 또 다른 길이 ‘힘들게’ 열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의 특성이 스웨덴에서 그에게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져다주었는지 모른다. 그의 시는 말똥가리처럼 세상을 높은 지점에서 일종의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되, 지상의 자연세계의 자질구레한 세목들에 날카로운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꼼꼼한 거시주의’ 혹은 ‘거시적 미시주의’가 그의 특징적인 시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순간에 대한 강렬한 집중을 통하여 신비와 경이의 시적 공간을 구축하면서 우리들의 비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트란스트뢰메르.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인생의 빛나는 종합을 성취하였으며 자연과 초월과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시인의 작품을 통해 심연으로 치솟기, 혹은 홀로 깊어 열리는 시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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