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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코카인/ 고트프리트 벤

금동원(琴東媛) 2019. 8. 4. 16:51

코카인

 

고트프리트 벤

 

 

나를 몰락 시키는 것, 달콤한 것, 간절히 바라던 것

그것을 너는 내게 준다. 벌써 목구멍이 메어온다.

벌써 저 아래쪽에서는 낯선 소리가

내 자아의 말 못할 모습에 부딪친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튀어나와 여기저기

작용하면서 강한 힘을 내는 칼에

이제 그 소리가 부딪치지 않는다.

거의 그 모습이 희미한 형식의 언덕들이 쉬고 있는

벌판에 가라앉네!

 

그저 밋밋한 것, 작은 어떤 것, 평평한 것----

이제 올라와 바람의 입김이 되는데

원형, 둥글게 된, 무(無)---- 아주 희미하게

지나가는 뇌경련의 그 떨림

 

파열된 자아---- 오 흠뻑 마신 종기

흩날려간 열--- 달콤하게 무너진 둑----

흘러가라, 오 너 흘러가라---- 낳아주라

해체된 형식을, 피묻은 불룩한 배로서

 

 

-『올페의 죽음, (민음사, 1974)

 

 

 

 

 

   그의 표현주의적인 염세론과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타락을 상기시키던 경향은 점차 실용주의 철학으로 바뀌어갔다. 히틀러 이후의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으며, 벤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는 영국의 T. S. 엘리엇과 흔히 비교된다. 고트프리트 벤(1886~1956)은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군의학을 배우기 위해 그곳의 전문학교로 전학해 성병과 피부병 전문의가 되었다. 

  

   순양함에서 의료활동을 하면서 지중해(그의 시에 배경으로 자주 등장함)와 친숙해졌으며, 제1차 세계대전중에는 독일군 장교로서 점령지 브뤼셀의 죄수와 매춘부들을 감독하는 군의관으로 일했다. 초기 시에는 성도착과 타락의 의학적 측면이 중요한 주제였으며, 첫번째 아내의 죽음(1914)과 친구로 지내던 한 여배우의 자살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 있기도 하다. 첫번째 시집과 3번째 시집은 적절하게도 각각 〈시체 공시소 Morgue〉(1912)와 〈육체 Fleisch〉(1917)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우익에 섰으나 작품에 나타난 표현주의 성향 때문에 나치 정권은 작가와 의사로서 그의 직업에 제재를 가했으며 1937년에는 작품 발표를 금지했다. 시달림을 피하기 위해 군에 다시 입대했는데, 자신은 이 행동을 '귀족적인 형태의 이민'이라고 표현했다.

 

  〈정태시 Statische Gedichte〉(1948)를 발표해 다시 문학적 명성을 얻었으며, 이와 더불어 예전의 시들도 다시 출간되었다. 작품활동으로 바쁜 가운데 68세까지 내과의사로서 일했다. 자서전 〈이중 인생 Doppelleben〉(1950)은 그의 냉소주의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에필로그 Epilog〉라는 시는 "인생이란 사라져가는 강물 위에 세워진 다리 같은 것"이라고 끝맺고 있다.(출처: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