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혼자다』
-시몬 드 보부아르 저/ 박정자역 | 꾸리에북스
○책 소개
인간은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나라를 정복하며, 소망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언제나 반드시 “그다음은?”이 있다. 매 순간 그는 항상 새로운 정열을 품고 새로운 기획 속에 몸을 던진다. 돈 후안이 한 사람의 여인을 버리는 것은 다른 여인을 유혹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 돈 후안조차도 언젠가는 피로감을 느낀다. 어차피 자기 집에 돌아오기 위해서라면 출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중지해야만 한다면 시작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일 내가 어디서 멈춰야 할지 처음에 정해두지 않았다면, 출발한다는 것은 더욱더 허무하게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해야만 한다. 멈추거나, 아니면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정지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만일 출발한다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의 척도는 무엇일까? 인간은 어떤 목적을 세울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인간에게는 어떤 희망이 허용되는 것일까?
○작가 소개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는 1908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1928년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하였다. 1945년 사르트르가 잡지 '현대'를 창간하자 그 일에 협력하며 실존주의 문학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독일에 대한 레지스탕스의 저항을 그린 『타인의 피』, 죽음과 개인의 문제를 취급한『인간은 모두 죽는다』, 콩쿠르 상을 수상한 『레 망다랭』등은 한결같이 실존주의적 인간상을 표현한 작품들이며 이 외에도 평론 · 기행문 등을 꾸준히 발표하여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문학가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1949년에 발표한 『제2의 성』은 역사적 · 철학적 · 사회적 · 생리적 분석을 통해 여성문제를 고찰한 작품으로, 여성해방문학의 고전으로 불린다. 소르본 고등사범학교에서 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며 만난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 생활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요 저서로 『얌전한 처녀의 회상』 『나이의 힘』 『사물의 힘』 『결국』 등 자서전과 소설『초대받은 여자』, 『제2의 성』 『레 망다랭』, 『대장정 : 중국에 관한 에세이』 『인간은 모두 죽는다』『실존주의와 국가의 지혜』『거물들』 『노년』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보부아르가 실존주의 윤리학에 대해 쓴 첫 번째 철학 에세이다. 이후 그녀는 이 주제와 관련된 글을 계속 쓰게 되었는데, 이 책과 더불어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애매성의 윤리학』에서 그녀는 지속적으로 자유와 책임의 중요성, 그리고 삶의 진정한 애매성을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근대적인 관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매우 독특하며 그들의 작품에 환원되지 않는 뛰어나면서도 고유한 작품이다. 실제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예를 들어가며 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글들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의 난해함과 대비되면서 실존주의 입문과정에서 가히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사르트르의 연인이 아닌 사유하는 지성인 보부아르를 만나다
피뤼스Pyrrhus, BC 319~272는 주변의 많은 나라를 정복한 고대 희랍의 왕이고, 시네아스Cineas는 왕의 끝없는 정복전쟁을 저지하고 싶어 하는 신하다. 그는 특히 로마 원정에 반대하였는데, 이때 왕과 나눈 대화가 유명하다. 시네아스는 끊임없이 “그다음에는?”이라고 묻다가 피뤼스가 마지막 정복 후에 휴식을 취하겠다고 말하자 겨우 질문을 끝낸다. 그리고는 원정의 허망함에 대하여 왕에게 충고한다. 그 모든 제국들을 정복하느라 고생하고 결국 나중에 돌아와 쉴 텐데 굳이 뭐하러 떠나느냐는 것이다.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는 목적의 허망함을 설파한 이 고사에서 보부아르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의 단서를 찾는다.
시네아스의 질문은 인간의 모든 행위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원초적 질문이다. 다시 내려올 텐데 왜 산에 오르는가? 다시 집에 돌아올 텐데 뭐하러 여행을 떠나는가? 나이 들어 퇴직하면 다시 아무런 직업 없는 백수 상태로 떨어지는데 평생 애써 일할 필요가 있는가?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시네아스가 현자로 간주되었다.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단순하고 간소한 삶을 살았던 데이비드 소로도 근본적으로는 시네아스의 정신적 후계자이다. 시골 마을에서 자본주의를 굽는다느니, 심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느니 하는 현대의 한 트렌드도 분명 시네아스적이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피뤼스의 태도를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무상적인 행동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존재 양식이기 때문이다.
인간 본연의 존재 양식을 묻다
보부아르는 인간의 상황은 각 개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신의 가치와 목표, 기투를 선택하게 하고 그것들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모든 완성의 단계에서 “그다음은”이라는 질문 자체가 떠오른다. 시네아스가 “지금 당장 휴식하기로 하자”고 한 제안은 존재론적인 저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간의 한계와 기투에 관한 문제로서 시네아스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선을 그어야 할까? 충분히 수행했는지 혹은 이제 충분한지 언제 결정해야 할까?”
우리가 이 질문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인간의 한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극과 극의 잘 알려진 두 철학적 입장을 살펴보자. 자기 중심주의자들에게는 자신의 고유한 의식이 절대적으로 모든 것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다. 극기심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결정을 내릴 자신의 의지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내면성의 일부만이 그의 것이고 자신의 육체를 포함하여 나머지는 정반대에 놓여 있다. 즉, “인간과 그의 기투의 한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실제적이고 우연적이며 불굴의 정신력이나 에너지에 관한 질문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어떤 합의도 도달하지 못했던 철학적 질문이다.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에게 있어 각각의 인간에게 속하는 것은 가치와 목표, 기투를 수립할 자유, 선택할 자유이다. 그 기투는 그것을 완료할 때까지 “그의” 것이다.
그래서 보부아르의 실존주의 윤리학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선이 되도록 이 특정한 종류의 자유를 향상시켜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녀는 후에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애매성의 윤리학』에서 서술하듯 자신의 의지뿐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증진해야만 나의 자유도 증진된다고 주장한다. 보부아르에게 있어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한 존재이다, 늘 미래를 향하며 목표와 기투를 세우며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거나 실패한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그것들을 반복적으로 실행한다. 모든 새로운 목표와 기투는 멈춰지고 포기된다. 이것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배신이다. 그런 점에서 피뤼스가 옳았다, 시네아스가 아니라.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한 존재
인간에게는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 태어난 국가, 부모, 외모, 능력 등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강제적 조건이다. 이것을 사실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와 사실성이 합쳐진 존재이다. 그러나 이 주어진 여건을 어떻게 뛰어넘어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주체인 나의 선택과 자유에 달려 있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내 인생을 선택하거나 살아 줄 수 없다.
모든 결정을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순전히 내 판단으로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그건 내 책임이 아니라고 변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대자적인 삶이다. 이것이 자유다. 그 자유를 분명히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심한 불안을 느낀다. 자유에 눈 뜨는 것은 인간에게는 언제나 크나큰 고통이다. 실존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불안감이다. 그러나 동시에 빛나는 희망이기도 하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나는 뭐든지 내 뜻대로 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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