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책 이야기

괴테와 톨스토이/ 토마스 만

금동원(琴東媛) 2019. 12. 4. 22:10

 

 

『괴테와 톨스토이』

 토마스 만 저/신동화 역  | b(도서출판비)

 

 

  ○책 소개

 

  토마스 만(Thomas Mann)의 『괴테와 톨스토이』(“Goethe und Tolstoi”, 1922)가 신동화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과 함께 또 발자크와 스탕달이 주고받은 문학적 대화를 모은 『발자크와 스탕달』이 출간되었는데 도서출판 b에서 기획한 ‘예술과 인간의 깊이’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일명 ‘와(and)’ 시리즈이다. 수준 높은 예술가들의 상호 대조를 통해 독서의 깊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토마스 만은 ‘괴테와 톨스토이’, ‘실러와 도스토옙스키’를 새로운 쌍으로 묶고 각각 ‘자연의 아들들’, ‘정신의 아들들’이란 호칭을 부여한다. 그중 자연의 아들들, 즉 ‘괴테와 톨스토이’가 이 에세이의 제목이자 주제이다. 토마스 만은 괴테와 톨스토이를 통해 인문성(휴머니티), 다시 말해 인간답고 고귀한 문화의 문제를 다룬다. 자연은 엄청난 생명력과 구체성을 가지지만 그 자체로는 거칠고 야만적이다. 정신 역시 무한한 창조력과 가능성을 가지지만 그 자체로는 형태가 없고 공허하다. 그리하여 자연의 아들들과 정신의 아들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각각 반대편을 동경하며 서로를 향해 나아가려 노력한다. 이 노력 자체, 이 운동 속에서 토마스 만은 진정한 인간과 문화를 본다.

 

 

  ○작가 소개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2일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식 참석차 독일 여행 중 발병하여 취리히로 되돌아와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역자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표현주의 문학에 나타난 과학 기술 인식―되블린의 『산 바다 그리고 거인들』을 중심으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한국문학번역원 번역 아카데미 특별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 토마스 만의 『괴테와 톨스토이』, 『무용수와 몸』 등이 있다.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목차

 

 

  우열 문제 ─12
  루소 ─24
  교육과 고백 ─29
  미숙함 ─42
  순례지 ─48
  병 ─56
  발병 ─62
  조형과 비판 ─73
  정사 ─87
  자유와 고귀함 ─92
  귀족적 우아함 ─109
  회의 ─130
  자연과 국민 ─144
  공감 ─182
  고백과 교육 ─203
  교육 ─208
  마지막 단상 ─243

  옮긴이의 말: 『괴테와 톨스토이』에 대하여─249

 

 

  ○책 속으로

 

  정신의 아들들에게 주어진 감상적 명령이 ‘육체화!’인 것처럼 자연의 총아들에게 주어진 감상적 명령은 ‘정신화!’입니다. 이미 말했듯 괴테와 톨스토이는 이 명령을 수행하는 솜씨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고된 탈자연화 작업은 비록 정신화된 야성에 지나지 않으나, 괴테의 장엄한 문화와 견주어도 여전히 감동적이고 존경할 만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세상에 손쉬운 일이란 없다는 점입니다. 수고 없는 자연, 그건 조야합니다. 수고 없는 정신은 뿌리 없이 공허합니다. 정신과 자연이 동경에 부풀어 서로를 향해 가는 길에서 이루어지는 고차원적 만남,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 p.181

  결정이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유익하고 생산적이며 따라서 예술적인 원칙을 우리는 유보라 부릅니다. 우리는 음악에서 계류음의 고통스러운 희열로서, 즉 ‘아직 아니’라는 우울한 희롱이자 영혼의 절실한 망설임으로서 유보를 사랑합니다. 이 망설임은 자기 안에 충족, 해소, 조화를 지니면서도 잠시 동안 그것을 거부하고 미루고 내주지 않으며 황홀경에 빠져 조금 더 지체하다가 결국 항복하고 말지요. 우리는 정신적인 면에서는 아이러니로서 유보를 사랑합니다. 진심이 없지는 않으나 교활하고 애매한 태도로 대립관계 속에서 유희하며 한쪽을 편들거나 결정을 내리기를 특별히 서두르지 않는, 양쪽을 향한 아이러니로서 유보를 사랑합니다. 큰 문제, 인간의 문제를 다룰 때는 모든 결정이 성급하고 예비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을 거라고, 결정이 아니라 조화가 목표라고, 그리고 이 조화는, 만약 대립이 영원한 것이라면, 무한 속에 존재할 것이며 아이러니라 일컬은 저 유희적인 유보는 계류음이 해소를 지니듯 자기 안에 조화를 지닌다고 추측하면서 말이죠. 앞서 우리는 이 ‘무한한’ 아이러니를 입증했습니다.

--- p.243~244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사탕/ 백희나  (0) 2020.05.14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0) 2020.01.30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0) 2019.11.28
식물의 책/이소영  (0) 2019.11.04
모비 딕 1~2 / 허먼 멜빌  (0) 201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