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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금동원(琴東媛) 2020. 6. 27. 00:48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녹색평론사

 

 

○책 소개

“지금 인류사회가 직면한 진짜 위기는 환경위기가 아니라 정치의 위기이다.”
-호세 무히카(우루과이 전 대통령)

『간디의 물레』(1999) 그리고 『땅의 옹호』(2008) 이후 10년 만에 출간된 사회평론집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의 오랜 생태적 사유를 정리한 책이다. 또한 이것은『녹색평론』이 1991년 창간 이래 의도해온 중심적인 작업, 즉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가 별생각 없이 당연하게 수용해왔던 삶의 관행, 즉 ‘서구식 근대’의 논리에 따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한 문명을 근원적인 각도에서 의심해보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사상적 토대를 구축하고 넓히는 데 기여하려는” 작업의 30년 결산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지난 4월에 출간된 문학론집 『大地의 상상력』을 김종철의 문학인생의 한 매듭으로 볼 수 있다면, 이번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는 김종철의 생태사상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는 저작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자기파멸적인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생활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특히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해온 근대적 문명”은,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인 만큼 “필연적으로 종말의 파국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한계를 그 출발점에서부터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화석연료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산업경제에 너무나 깊게 중독된 나머지,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촉구하는 숱한 경고와 징후들을 거듭 무시하면서 “계속해서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면서 점점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그 결과 인간생존의 불가결한 기반인 자연 및 사회 생태계가 대규모로 파괴되었고, 마침내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조만간 여하한 형태의 문명이 존속하는 것도 불가능할지도 모를 심히 불길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현세대의 인류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긴급한 것은, 순환적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일”이다. “지혜롭게만 실행된다면 거의 영구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생존·생활 방식이 농사라는 점을 재인식하고, 그 농사의 궁극적인 토대인 토양을 건강하게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숙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작가 소개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진주의 남강 변에서 자라던 유년시절에 6·25 전란을 겪었다. 전쟁 이후 마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읽고, 공군사관학교의 교관으로 군복무를 했다. 제대 후 숭전대학교, 성심여자대학, 영남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70~80년대에는 문학평론 활동을 하다가, 1991년에 격월간 《녹색평론》을 창간하여 에콜로지 사상과 운동의 확대를 위한 활동에 열중해왔다. 2004년에 대학의 교직을 그만두고 《녹색평론》의 편집·발간에 전념하면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한국 최초의 ‘녹색당’ 창립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였다. 또, 2004년 이후 10여 년간 ‘일리치 읽기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자주강좌를 개설·진행했다.

저서에 《시와 역사적 상상력》(1978),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1999), 《간디의 물레》(1999),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2008), 《땅의 옹호》(2008), 《발언 I, II》(2016), 《大地의 상상력》(2019) 등이 있고,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2002),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2007)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 리뷰



오늘날 피크오일, 기후변화 등 지구의 물리적, 생태적 한계는 인류의 미래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극단적인 양극화, 난무하는 폭력, 저질 상업문화와 오락산업의 득세, 실물경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부푼 카지노경제 등 사회적인 한계도 인류문명의 당면한 종식을 예고하고 있다. 인간성과 인간관계의 소멸을 대가로 한 경제성장과 이른바 ‘진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뛰어난 지성을 지니고 있다는 인간이 집단자살체제를 만들어 놓고, 종말의 명백한 징후 앞에서도 방향을 바꾸기는커녕 점점 가속을 붙여가며 혼란의 아귀지옥 속으로 질주해 들어가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일찍이 인류가 경험한 적 없는 대혼란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긴급히 최량의 지혜를 모아야 할 이때, 우리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정치’로 이어진다. “아무리 순환적 삶의 질서의 회복과 흙의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회로 방향전환을 하자면, 우리의 집단적 삶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 즉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다.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는 ‘세계화’, ‘경제성장’, ‘진보’ 등등의 권력엘리트들 중심의 논리를 거부하고 근대문명의 ‘어둠’을 포괄적, 심층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진정으로 인간다운, 지속 가능한 공생의 사회를 독자가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저작이다. 이 책은 많은 사회평론, 사회사상이 그렇듯이 ‘당위’를 이야기하고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정과 환대에 기초한 삶, 농적(農的) 순환사회라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자유협동주의, 소국주의 사상, 상호부조론, 협동주의, 지역화폐, 사회신용론,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문화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기본소득, 시민의회 등등과 같은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세간의 오해나 피상적인 세평과는 달리) 김종철이 역사 속에서 그리고 동시대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대안적 사상, 실험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례를 가지고 논의를 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 결과 그의 논리는 힘이 있고, 설득력을 가진다.

들여다볼수록 기가 막히고 암울한 현실일지라도 조금이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책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급진적’으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희망보다 더 필요한 것은 행동입니다. 우리가 행동을 시작하기만 하면, 희망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희망을 찾는 대신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때, 오직 그때에만 희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

아래는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머리말 일부이다.

“되돌아보면, 한국 사회를 포함해서 온 세계는 지난 수십 년간 아까운 시간을 터무니없이 허비해왔다. 세계는 지금 기후변화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비롯해서 미증유의 수습하기 어려운 환경적·사회적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이는 이미 1970년대 초 이래 충분히 예고돼왔던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1970년대 동안 두 차례나 발생한 ‘오일쇼크’는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산업경제가 조만간 수명을 다할 것임을 명확히 경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는 화석연료에 너무도 깊게 중독된 나머지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계속해서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면서 점점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그 결과, 인간생존의 불가결한 기반인 자연 및 사회 생태계가 대규모로 파괴되었고, 마침내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조만간 여하한 형태의 문명이 존속하는 것도 불가능할지도 모를 심히 불길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만약에 우리 모두가 수십 년 전부터라도 ‘나무 심기’에 집중해왔더라면, 지금은 훨씬 더 희망적인 상황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중략)
말할 것도 없이,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인류사회는 그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편의를 증대시켜왔다. 물론 그러한 풍요와 편의로 인한 혜택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인구는 언제나 매우 제한적이었고, 아직도 세계에는 최소한의 연명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역사상 유례없이 인간사회가 이토록 엄청난 생산성을 기록했다는 것은 놀라운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자기파멸적인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난 2~3세기 동안 이른바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생활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따라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영구적인 지속이 가능한 방식, 즉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물질적 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순환적’ 방식으로 갈 수 있는 길을 탐구하고,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방향으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유한한 지구상에서 직선적인 성장·진보를 끝없이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모순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이상, 지금 가장 긴급한 것은 순환적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혜롭게만 실행한다면 거의 영구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생존·생활 방식이 농사라는 점을 재인식하고, 그 농사의 궁극적인 토대인 토양을 건강하게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숙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순환적 삶의 질서의 회복과 흙의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회로 방향전환을 하자면, 우리의 집단적 삶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 즉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이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지금 인류사회가 직면한 진짜 위기는 환경위기가 아니라 정치의 위기이다”라고 했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녹색평론』과 그 밖의 지면을 통해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내가 되풀이해서 강조해왔던 것은 그 때문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현실을 근원에서부터 직시하고 끊임없이 다시 봐야 한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별세

한국 생태주의 운동의 대표적 사상가로 활약
1991년 사재 털어 생태·인문지 창간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오래된 미래’ 등 출간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한국의 대표적 생태사상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그는 생태 문명과 공동체 건설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운 지식인이자 실천가였다.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1980년부터 영남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교수 재직 중인 1991년 사재를 털어 생태·인문에 근거한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녹색평론> 창간은 그의 사상적 진전이었다. 등단 이후 <문학과지성> 계열에 이어 <창작과비평> 계열의 문학비평을 썼던 그는 문학적인 글쓰기를 넘어서려고 했다. 그는 “현실을 근원에서부터 직시하고 끊임없이 다시 봐야 한다. 세상에 대한, 지식 사회에 대한 절박한 위기감을 느낀다”고 하기도 했다. 세계의 궁극적인 문제,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내닫기 위해, 우리 시대의 근원적인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녹색평론>을 창간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녹색평론> 창간사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고 엄중히 물었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고인은 2004년 교수직을 내려놓고 생태 사상을 전파하고 생태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녹색평론> 발간에 전념해왔으며, 2011년에는 녹색당 활동에도 참여했다.

“<녹색평론>이 곧 김종철이고, 김종철이 곧 <녹색평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인이 편집과 발간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녹색평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공동체 사회의 회복과 재건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나라 생태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주요한 사회 담론을 이끌어가는 매체였다.

고인은 지난 2008년에는 <녹색평론> 통권 100호 돌파를 기념해 그간 발행된 잡지의 서문을 모은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를 출간했다. 그는 그 책에서 세계가 가파른 벼랑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세계 전체를 통하여 지적 엘리트들이 드러내는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권력과 돈에 복종하고 협량한 명예욕에 사로잡힌 지식 사회, 그리고 헛된 글쓰기와 헛된 상상력을 꼬집었던 것이다.

고인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협동적인 공동체, 상부상조의 사회, 하늘과 땅의 이치를 따르는 농업 공동체, 생태학적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길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녹색평론>을 통해 그의 이러한 생태 사상을 널리 퍼뜨렸고, 그 목소리에 공감하는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독자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녹색평론> 독자모임은 전국적으로 수십여 개에 이르고 있다.

고인은 1978년 첫 평론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를 내고 21년 뒤인 1999년 두 번째 평론집인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을 냈는데 이때 이미 생태주의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지의 상상력> <간디의 물레> <땅의 옹호> 등을 냈다. 평론집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으로 1999년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2001년에는 교보환경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1996년 부인과 함께 번역해 출간한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녹색 상상력의 대명사적인 책이었다. 김종철은 오래된 미래의 녹색 상상력으로 우리의 영혼과 마음의 심장부를 건드리는 새로운 글쓰기를 지향한 생태사상가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태언(전 인제대 교수) 씨와 아들 형수(대학 강사) 씨, 딸 정현(<녹색평론> 편집장) 씨가 있다. 빈소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7일 오전 9시.

최학림·오금아 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