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꽃》
노발리스 저/ 김주연 역/ 열림원
○책 소개
『파란꽃』은 독일의 낭만파 시인 노발리스의 장편소설로, 출간된 이래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1802년 발표된 이 소설은 제1부 기대와 제2부 실현 그리고 루트비히 티크의 속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가가 집필 도중 세상을 떠나면서 끝을 맺지 못한 채 미완의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19세기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이 소설은 독일의 전설 속 시인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소설은 하인리히의 신비한 꿈으로 시작하며, 그는 꿈속에서 본 파란꽃을 찾기 위한 여정에 올라 광부, 은둔자 등 많은 사람을 만나 갖가지 경험을 한다. 그리고 여정의 끝에서 마틸데와 사랑에 빠지며 인간과 자연과 신을 통달하고 위대한 시인으로 거듭난다. 『파란꽃』은 현실과 꿈, 초현실적 환상의 세계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중세를 배경으로 기독교와 동방 문화, 태고시대와 알 수 없는 미래가 공존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한, 작가는 소설 속에 시와 동화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우화적으로 나타내며, 하인리히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낭만주의적 세계관을 가감 없이 서술하고 있다.
○작가 소개
노발리스(Novalis)의 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Friedrich von Hardenberg)로서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철학자다. 1772년에 북독의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실러, 슐레겔 형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 철학적 활동을 시작했다. 슐레겔 형제가 간행한 문예지 『아테네움』에 「꽃가루」를 발표하며 1798년에 문단에 등장했다. 이어 같은 해 「신앙과 사랑」을, 1800년에는 「밤의 찬가」를 발표했다. 1801년에 지병인 폐결핵으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리하여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소설 『푸른 꽃』을 비롯하여 그가 생전에 계획하고 집필한 방대한 양의 철학적, 문학적 텍스트는 유고로 남았다. 그가 남긴 글은 수많은 세대에 걸쳐 예술, 문학, 철학 등 폭넓은 분야에 지대한 영감을 주었다.
○역자: 김주연
김주연은 1941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대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연구했다.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으로서 『상황과 인간』, 『문학비평론』, 『변동 사회와 작가』, 『새로운 꿈을 위하여』, 『문학을 넘어서』, 『문학과 정신의 힘』, 『문학, 그 영원한 모순과 더불어』, 『사랑과 권력』, 『가짜의 진실, 그 환상』, 『디지털 욕망과 문학의 현혹』,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 『미니멀 투어 스토리 만들기』, 『문학, 영상을 만나다』, 『사라진 낭만의 아이러니』, 『몸, 그리고 말』, 『예감의 실현』(비평선집) 등의 문학평론집과 『고트프리트 벤 연구』, 『독일시인론』, 『독일문학의 본질』, 『독일 비평사』 등의 독문학 연구서를 펴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학회장,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역임했다. 30여 년간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책 속으로
그는 푸른 물속에 잠기는 기분이었다. 신기한 꽃이 그 앞에 서 있었으며 지금 막 지나온 튀링겐이 보였다. 그러자 이미 세상 곳곳을 방랑하고 고향으로 되돌아온 듯한, 아예 먼 곳으로부터 이 지방에 여행을 떠나온 듯한 이상야릇한 느낌들이 지나갔다. 급기야 온갖 이야기와 지난 세월이 뒤섞여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 p.31
마침내 그의 손에 낯선 언어로 된 책이 한 권 들어왔다. 라틴어와 이탈리아어 비슷해 보이는 외국어였다. 그는 이 말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가운데 한 자도 읽을 수 없었으나 그는 그 책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책의 제목은 없었으나 뒤척이다가 보니 그림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아주 근사해 보이는 것들이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그는 놀라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번 되풀이해서 들여다보아도 그와 아주 흡사한 것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그림 옆에는 동굴, 은둔자, 그리고 노인이 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른 그림들에서 동양 여인들, 그의 아버지, 튀링겐 지방의 백작과 백작부인, 그의 친구, 궁정 목사 그리고 수많은 아는 사람이 나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옷은 다른 것들이었으며 아주 다른 시대의 것이었다.
--- p.135~136
그의 눈망울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호감 때문에 그의 장미 같은 파트너에 멎어 있었다. 마틸데의 순진한 눈도 그를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의 정신이 아주 사랑스럽게 변장한 듯이 보였다. 그녀의 크고 조용한 눈으로부터 영원한 젊음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한 하늘색 바탕 위에 갈색 별들의 부드러운 빛이 놓여 있었다.
--- p.148
“영원한 별들, 조용한 방랑자여. 너희들을 내 성스러운 맹세의 증인으로 삼노라. 마틸데를 위하여 나는 살 것이며, 내 마음을 그녀의 마음에 충실로서 맺게 하리다. 영원한 태양의 동이 튼다. 밤은 지나간다. 나는 동터오는 태양에 나 자신을 식을 줄 모르는 제물로 태우리라.”
--- p.160~161
“사랑이 무엇인지 전 몰라요. 하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은 말할 수 있어요, 또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을 위해서라면 금방 죽고 싶은 느낌도.”
--- p.180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다정하고 상냥하게 마주보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그 맨 앞에 나그네의 애인이 서 있었으며, 그녀는 그와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리는 들리지 않아서 나그네는 그리운 나머지 그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정하게 웃으면서 그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왼편 가슴에 자기 손을 가져갔다. 그 모습은 무한히 다사롭고 생기 있어 보였다. 나그네는 그 현상이 다시 없어질 때까지 행복한 무아경 속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 p.247
○출판사 리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유럽의 낭만을 이끌다.
꿈과 현실, 초현실적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대서사시!
노발리스는 낭만주의 시 정신을 몸소 체현한 독일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히며 그의 작품 『파란꽃』은 세계 낭만주의 문학을 최초로 대변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파란꽃』은 13세기 초 기사 시인이었던 발터 폰 포겔바이더, 볼프람 폰 에셴바흐 등과 노래 시합을 벌였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시인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을 주인공으로 한 미완의 장편소설로, 원제는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이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더불어 유럽에서 발생한 최초의 소설 양식으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현실과 꿈 그리고 초현실적 환상 세계를 현실 세계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괴테의 낭만주의와는 또 다른, 좀 더 넓은 지평의 낭만주의를 구현해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노발리스는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사랑 그리고 시를 아우르는 종합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비가시적 대상인 꿈의 세계, 자연 속 신비의 세계, 시간의 세계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낭만주의적 세계관을 창조해냈다.
사랑의 감정이 경건한 종교적 감정과 합치되며
신비로운 낭만주의 성신으로 새롭게 태어나다!
노발리스가 이러한 낭만주의적 세계관을 갖게 된 데에는 13살의 어린 약혼녀 소피 폰 퀸과의 만남이 큰 영향을 끼쳤다. “노발리스는 소피를 이야기할 때마다 시인이 되었다”라는 슐레겔의 말처럼 소피는 그 자체로 노발리스의 문학적 감수성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어준 것이다.
그러나 병마와 싸우던 소피는 1797년 3월 19일, 15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등지게 되고 노발리스의 열렬한 사랑 역시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가로막히게 된다. 일상의 질서 바깥으로 튕겨 나와 현실과 환상을 착각한 채 매일매일을 보내던 그는 생을 초월하여 소피를 만나기 위해 그녀 무덤 위에 엎드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의 흐름을 잊고 명상에 빠지기도 했고, 종일 울며 지새다 그녀의 환영을 만나 실성한 사람처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소피의 죽음은 노발리스로 하여 신비주의적, 종교적 감정에 눈을 뜨는 계기로 작용했다. 사랑의 감정이 경건한 종교적 감정과 합치되며 신비로운 낭만주의 성신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는 소피를 영원의 모습으로 상정하고 저승에 가 있는 그녀의 영혼과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다. 『파란꽃』에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여인 마틸데는 소피를 표상하는 인물로 시인이 만들어낸 이상화된 여인이라 볼 수 있다.
소피가 영영 떠나버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노발리스는 가장 사랑하는 동생 에라스뮈스까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게 된다. 사랑하는 이와 연달아 이별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서 깊은 회의와 인식에 빠진 그는 이승과 저승, 유한함과 무한함, 현실과 환상의 이원적 대립과 갈등에 골몰하게 된다. 이때부터 양자를 극복하고 통일하려는 의지를 달구며 창작에 열정을 쏟기 시작하던 그는 마침내 낭만주의 환상소설 『파란꽃』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꿈속에서의 환상적 경험으로 비롯된 운명적 사랑,
환상을 동반하는 노발리스만의 낭만주의 세계관!
주인공 하인리히는 꿈속에서 본 파란꽃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고 이 여정에서 상인, 군인, 광부, 은둔자 등 여러 사람을 만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외할아버지댁에서 만난 노시인 클링스오르의 딸 마틸데를 마주하는 순간, 그녀가 자신의 운명, 즉 파란꽃임을 깨닫고 사랑에 빠진다. 하인리히는 이 사랑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 신을 이해하고 위대한 시인으로 성장한다.
노발리스 문학의 핵심은 ‘세계의 낭만화’이다. 꿈속에서 파란꽃을 보았다는 하인리히의 환상적 경험은 마틸데와의 운명적 사랑으로 이어지는데 이 같은 흐름은 마침내 주인공을 완성된 경지의 성장에 이르게 한다. 환상적이고도 낭만적인 하인리히의 모험은 한 인간이 자연과 정신이 통합된 전체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하인리히와 마틸데의 사랑은 그 성격 자체가 바로 낭만주의 문학의 내용에 적절히 상응하고 있다.
이처럼 노발리스의 낭만주의는 환상성을 동반한다. 그는 『파란꽃』에서 다루는 대상을 전 자연계로 넓혀 환상을 포함한 현실에 총체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따라서 작품이 지닌 초현실적인 환상의 세계, 현실과 꿈이 겹쳐지는 중층적 이미지의 세계는 작가가 적극적으로 의도한 산물인 것이다. 그는 가시적인 현실의 대상만을 인식하기를 배척하고 꿈의 세계, 자연 속 신비의 세계, 과거와 미래 등 보이지 않는 시간의 세계에 모두 도전하고자 했다. 현실 인식의 온전한 완성은 이 같은 방법에 따라서 비로소 수행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노발리스만의 독특한 낭만주의 세계관이다.
사랑의 힘으로 이질적 대상 간의 화해를 꿈꾸다,
그리움을 상징하는 ‘파란꽃’으로 피어난 독일의 낭만주의!
소설은 제1부 기대와 제2부 실현 그리고 루트비히 티크의 속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인공 하인리히는 아이제나흐라는 온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갖가지 현실 체험을 쌓고 위대한 시인으로 성장해 나간다. 노발리스만의 낭만주의적 세계관 아래 꿈과 사랑을 좇아 떠난 여정으로 완성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의 형식도 함께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파란꽃』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성장소설』과 함께 독일소설을 통해 탄생한 성장소설 양식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문학에서 낭만주의 작품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이 소설은 낭만주의 문학에 대한 그릇된 인식-넘치는 사랑과 과도한 정서 표출-과는 무관하다. 『파란꽃』은 우주의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체험과 관념 양면을 통해서 꾸준히 반복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 기저에는 인간과 인간, 나아가서는 인간과 동식물, 무생물인 사물 그리고 사물과 사물 사이에 사랑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해명해놓은 위대한 사상서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상이 갖는 각종 이질적 속성을 하나의 통일된 순간 속에 용해해내려는 작가의 뜨거운 집념 또한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파란꽃’은 이러한 통일, 융해, 중심의 순간에 붙여진 성스러운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노발리스가 창조한 상징 ‘파란꽃’은 무엇보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낱말인 그리움의 상징이 된다. 그것은 나아가서 유한성과 무한성, 꿈과 현실, 자연과 정신, 삶과 죽음을 보다 높은 단계에서 한데 아우르는 총체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파란꽃’은 인간의 오성이 아닌 마음 또는 정서를 통해 볼 수 있는 꽃이며 세계를 파악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인식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하인리히가 다른 장려한 광경을 볼 때마다 “그가 마음속에 품은 꽃이 마치 번갯불에 드러나듯 이따금 그의 내면의 눈에 보이곤” 한 것이다.
노발리스의 『파란꽃』에 대해 시인 하이네는 “이 책 곳곳에서 파란꽃이 반짝이고 드높은 향기를 풍긴다”라는 평을 남긴 바 있다. 독일 낭만주의 전체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고양된 『파란꽃』을 통해 독자들은 진정한 낭만주의적 정신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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