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제주일보
- 승인 2020.10.20 19:33
금동원 시인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을은 커피와 잘 어울린다. 바싹 마른 낙엽이 그리움의 몸짓으로 바람결에 이리저리 뒹구는 풍경은 왠지 스산하고 쓸쓸하다. 차갑고 고독한 기운이 온몸 가득 스며들 때 따뜻하고 진한 커피 한 잔은 그 어느 것보다 마음의 위로와 여유를 준다.
집 근처에는 여러 개의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 있다. 꽤 유명한 이름의 커피집에서부터 독특한 이름을 내건 작은 카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가게마다 나름의 판매전략을 써서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보려고 한다.
고급 품종의 다양한 커피 맛으로 승부를 걸어 취향이 확실한 손님을 붙잡는 곳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서비스와 부가적인 혜택으로 손님을 유혹하기도 한다. 커피와 함께 서비스로 토스트와 쿠키를 무료로 준다던가 이른 출근길 모닝커피는 가격할인을 많이 해주기도 한다. 몇 잔의 커피를 마시면 한 번의 공짜 커피를 주는 쿠폰제도는 이미 일반화돼있다.
손님들 역시 자기 방식의 단골 카페를 만든다. 어느 집 커피가 내 입에 맞으며 분위기가 더 세련되고 편안한지, 예쁜 커피잔이나 바리스타의 커피 내리는 차분한 솜씨도 만만찮은 심사평에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이 개인적 취향과 선택의 문제여서 손님을 기다리는 커피집에서 볼 때는 참 고민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입에 딱 맞는 커피 맛과 아늑한 분위기의 단골 카페를 정해두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커피 애호가의 마음은 즐거운 고민이자 작은 기쁨이고 행복한 비명이다.
요즘 카페들은 일찍부터 문을 연다. 오전 7시 즈음이면 직장인들을 위해 이미 커피집 안에서는 원두 가는 소리와 진한 커피 향이 흘러나온다. 오래전에 봤던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파리의 아침 카페 풍경이다. 부드럽고 고소한 크루아상을 곁들여 혼자 커피를 마시던 파리지앵의 모습이 그렇게 멋지고 여유 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텀블러에 담긴 커피를 들고 출근하는 직장인의 모습에서 자유로운 당당함과 삶의 활력이 느껴졌다.
지금은 우리나라 도시의 아침 풍경이 그렇다. 커피 한 잔이 그리워 집 앞 카페에 간다. 무르익는 가을의 풍경을 만지며 커피 마시러 가는 길은 나만의 사랑 타임이다.
쌉싸름한 바람결이 시간의 흔적을 밟으며 스쳐 지나간다. 빛바랜 그리움이 쌓여가는 계절의 향기를 맡는다. 우두커니 시간을 붙들고 선 채 아련하게 흘러가는 푸른 강물을 떠올려본다. 가을빛으로 물든 큰 유리문을 열고 들어설 때 반겨주는 친절한 바리스타의 웃음도 정겹다. 잠깐의 머무름이 주는 여유, 자신과 대화하는 마음의 평온이 좋다. 커피를 기다리는 잠깐의 설렘도 좋다. 평소 즐기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의 깊고 부드러운 꽃향기가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준다. 커피가 주는 작은 일상의 행복에 감사하며 한 모금의 커피를 입술에 적셔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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