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며 외 1편
금동원
1.
겨울 내내 차나무는 뿌리에서부터 짙어진다
비바람을 견디며
여린 잎은 세상을 경계하는 얇은 막을 풀고
땅 속에서부터 단단하게 밀어올린
고통과 뜨거움이 숨어있는
가장 보드라운 연둣빛 잎을 피운다
2.
새의 혀처럼 가녀리고 보드라운 잎사귀는
인내의 맛
아픔의 맛
헌신의 맛
견딤과 어울림의 맛
기다림의 고통을 덖으며 만들어낸
은은하고 맑은 완성의 향을 우려낸다
3.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결실에는
차 잎의 아픔과 짓이김 속에
뜨거움으로 치대고 비비고 쥐어짜면
배어나오는 푸른 피
상처를 품고 견딘 빛나는 몸의 부활
아홉 번의 덖음은
연약함을 이겨내고 숙성된 피의 맛으로
향기롭고 신선한 햇차가 된다
4.
가장 순결한 첫 잎의 차 맛은
제 몸을 던져 만든 마지막 사랑
삶이란 언제나 견디며 만들어가는 믿음 같은 것
시와 닮은 차를 마시며
시로 다할 수 없는 생의 뜨거움을 품는다
가을 기도
함께 가는 길, 언제나
눈이 부시게 하소서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하소서
오월의 덩굴장미처럼 마주보고 활짝 웃을 수 있게 하소서
따뜻한 손의 온기와 부드러운 눈빛으로 마음의 평온 있게 하소서
서늘한 그리움, 그 설렘으로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함께 울고 보듬어주는 위로의 가슴이 되게 하소서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해 삶을 사랑하고
하루하루 시를 쓰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날들이게 하소서
가을 날 무르익은 풍요와 사랑으로
함께 가는 길
언제나 모든 이의 작은 소망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이루어지게 하소서
- 2020 [토지문학제 기념사화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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