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김지하는 우리들에게 영웅이자 투사였다. 세대가 확연히 다른 1941년생이였지만 그는 20대에 4.19와 5.16을 직접 몸으로 겪고 그 시대의 굴곡진 현대사와 생명이라는 존재의 펄덕거림과 피끓음을 시(글)을 통해 이야기했다. 그런 그의 활화산같이 뜨겁고 황톳길 같은 시는 눈물겹고 척박한, 거칠고 불안한 삶의 한 가운데서 끝내 살아가야하고 살아야만하는 우리들을 대변하는 하는 듯 했다.
대학시절 우리는 민주화와 광주 사태에 대한 무기력한 분노와 참담함으로 교내 데모나 흉내내는 정도였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답답함과 운동권은 아니였지만 시대에 대한 젊음의 무기력한 부채의식과 절망감으로 모두 힘들어했다. 캠퍼스 안에서 수업을 거부하고 교문 밖으로 나가보려는 학생들의 분위기에 각 학과의 교수들은 전전긍긍하며 연일 학생들을 불러 설득했다. 그 당시 과대표를 맡고 있었던 나는 아무 이유없이 자주 불려다녔다. 그때 지도 교수가 교수실도 불러 나에게 했던 질문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김지하의 시집을 가지고 있느냐? 만약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 주고 갔으면 좋겠다. 특히 오적(五賊)은 너무 선동적이고 이념적인 시(詩)라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시집이 돌아다닐텐데 그 시집을 손에 넣으면 제발 돌려보지말고 나에게 가져다달라는 거였다. 너는 과대표이니 학생들을 대신해 그 역할을 해줘야되지 않겠냐는 거였다. 그때처럼 교수라는 기성세대가 혐오스럽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나도 이제는 기성세대를 넘어 라떼(?)의 시기를 넘어가고 있다)불행히도 그 시집은 교내에 돌고 있다는 막연한 소문만 무성한 채 그 실체조차 알수 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읽지말라고 하면 더 읽고 싶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가지말라고 하면 더 가고 싶은 피끓는 젊음으로 무장한 우리인데....물론 나중에 출간된 책을 통헤 모두 읽었지만 그 당시 우리들은 필사본이라도 읽고 싶어 안달을 할 때였지만 모두 압수 혹은 판금이 되어 직접 구해볼수는 없었다.
그 추억의 시집 중 《황토》(한얼문고, 1970)의 초판본을 운좋게 구하게 되었다. 책이 갖는 의미나 가치를 떠나 젊은 그 시절 추억의 한 순간을 이 시집을 통해 아득하게 느껴보고 싶다. 김지하의 누렇게 황토빛으로 변해 퇴색된 낡은 시집을 한참 손에 들고 앉아 스무살 초반의 치기와 멋모르던 마음에 대한 그리움으로 뭉클하고 일렁이는 감동에 오랫동안 젖어본다.(금동원)
후기(後記)
우리들의 의식은 가위 눌려있다. 반은 잠들고 반은 깨인 채, 외치려하나 외쳐지지않고, 결정적으로 깨어나고저 몸부림치나 결정적으로 깨어나지질 않는다.
죽도록 몸부림치지만 그것은 작은 몸짓에 지나지 않고, 필사적으로 아우성치지만 그것은 작은 신음으로 밖에는 발음되지 않는다. 그 작은 신음, 그 작은 몸짓, 제동당한 격동의 필사적인 자기 표현으로서의 어떤 짧은 부르짓음, 나는 나의 詩가 그러한 것으로 되길 원해왔다. 악몽의 시로.
이 작은 반도는 원귀들의 아우성으로 가득차 있다. 외침, 전쟁, 폭정, 반란, 악취와 굶주림으로 죽어간 숱한 인간들의 한에 가득찬 곡성으로 가득차 있다. 그 소리의 모체, 그 한의 전달자, 그 역사적 비극의 예리한 의식, 나는 나의 시가 그러한 것으로 되길 원해 왔다.강신의 시로.
찬란한 빛 속에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없다. 미친듯이 미친듯이 나도 빛을 원한다. 원하지만 어찌할 것이냐 이 어둠을 어찌할 것이냐? 어쩔 수도 없다. 다만 늪과도 같은 밤의 어둠으로부터 영롱한, 저 그리운 새벽을 향하여 헐떡거리며 기어나갈 뿐이다. 포복, 잠시도 쉬지않는 피투성이의 포복. 나는 나의 시가 그러한 것으로 되길 원해왔다. 행동의 시로.
진흙창에서만 피어나는 연꽃의 숨은 뜻, 枯掘의 세계, 투명한 가없는 물의 자유의 높이. 그러나 그것은 끝없는 방황과 쉴새없는 개입, 좌절과 절망의 깊은 수렁을 통과해야만 얻어지는 값비싼 고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에 대한, 인간에 대한, 모든 대상에 대한 사랑, 악몽도 강신도 행동도 모두 이 사랑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사랑의 뜨거운 뜨거운 사랑의 불꽃같은 사랑의 언어.나는 나의 시가 그러한 것으로 되길 원해왔다.
사랑의 상실, 대상에 대한 무관심, 그 권태야말로 모든 우리들의 무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970년 12월 10일
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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