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나의 詩 106

개미 /금동원

개미 금동원 책장 아래를 아슬아슬 기어가는 저놈은 어제보다 살이 올랐다. 인간인 나보다 먹이를 더 잘 찾으며 길과 집을 잘도 만들어 놓는다 저놈이 나보다 낫다는 건 벌써 알고 있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이놈은 여러 곳에 삶을 저장해 두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에 어울리는 음식과 온도와 방을 잘 저장해두었다 반드시 살아나갈 비상구와 밀실이 있는 이놈이 징그럽다 바닥에 박힌 때만도 못한 놈이 두렵다 난 아직도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하루를 쥐고 서성이고 있는데 말이다. -시집『여름낙엽』, ( 월간문학 출판부, 2008)

나의 詩 2018.12.12

설국* 이야기/ 금동원

설국雪國* 이야기 금동원 회색빛 하늘을 뚫고 하얗게 빛나는 이야기들이 까마득히 쏟아져 내린다. 나는 묻는다. 여기가 설국입니까 성벽처럼 쌓인 눈 속에 파묻힌 신사神寺 앞에서 온 몸을 던져 길을 내어 마중 나온 시마무라와 다마코, 슬프고 매혹적인 눈빛의 요코를 만나고 우리는 마주앉아 삼나무의 그늘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사의 헛사랑, 헛일인 허무와 공허의 골짜기로 쌓이는 눈의 하염없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루 해가 뜨고, 또 지고... 설국의 이야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투명하게 흘러가는 세계를 바라본다 쌓이고 쌓여 가는 설국의 시간을 마주하고 세속적 의미를 부여하며 화려한 문구를 덧입혀 이 말할 수 없이 선명하고 아름다운 이 나라의 꿈같은 고요를 설명하지 않으리라 점점 사라져 가는 골짜기의 마을들과..

나의 詩 2018.11.17

고요함에 대하여 /금동원

고요함에 대하여 금동원 슬픔을 깨우는 서늘한 바람의 감촉 털어지지 않는 뽀얀 무섬증 무덤가 꽃들의 속살거림, 둥둥 떠다니는 투명함, 설명할 수 없는 달콤함, 코끝을 맴돌며 퍼지는 흥분 귀뚜라미의 울림 사람 냄새 스치듯 가버린 파도 소리의 허전함 나의 어딘가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시집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 월간문학출판부, 2011)

나의 詩 2018.10.30

여름낙엽 /금동원

여름낙엽 금동원 자꾸 뒤돌아 보게 되는 날 미련 탓인가 지난 봄의 목련은 더욱 그립고 벌써 지루해지는 샐비어는 빗 속에서 더욱 붉다 슬픔도 시리게 화려한 날 눈물은 사치스러워 흩어진 날들을 줍는다는 게 숨쉬는 일만큼 쉽지 않고 벌써 매미는 울기 시작했다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계절들 이미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로등 아래에서 일곱살의 기억을 찾아 기차를 탔다 -시집 『여름낙엽』,(월간문학출판부, 2008)

나의 詩 2018.09.29

한여름 밤의 동화 / 금동원

한여름 밤의 동화 금동원 밤은 야릇해 한여름 밤은 참 이상해 훠이훠이 휘젓는 팔 장단에 소복소복 내딛는 발걸음에 어둠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어스름이면 보라빛으로 퍼지는 짙은 슬픔 여기저기 풀어헤친 마음자락을 거두고 사라진 바람소리 찾으러간다 꿈은 달콤해 한여름 밤의 꿈은 더욱 나른해 살랑살랑 흔드는 팔 장단에 간들간들 간지러운 발걸음에 흙빛 하늘에 둥글고 찰진 보름달 뜨면 풀피리 닮은 휘파람 소리 여기저기 흩어진 마음자락 찾아들고 분홍빛으로 차오르는 새벽 맞으러간다.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 (2011, 월간문학출판부) 비양도가 바라보이는 협재 해수욕장에서

나의 詩 2018.08.24

사이사이로 우리는/ 금동원

사이사이로 우리는 금동원 푸름과 맑음 사이의 공간은 웃음이다 빛나는 것들 사이의 그늘은 가벼움이다 살랑대는 모든 것의 사이사이가 설렘이라면 봄에 자라나는 여름에 젖어 드는 가을이면 익어 가는 겨울이 되어 사라지는 모든 생각의 사이사이로 우리는 계절의 교접으로 태어난 생명을 읽는 것이다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 (2011, 월간문학출판부) 제주의 8월 어느 날 풍경 싱가폴 쥬롱새 공원에서

나의 詩 2018.08.16

8월의 노래/ 금동원

8월의 노래 금동원 너는 매미고 나는 시인이다 온전한 목소리로 속삭이기엔 고통이 너무 큰 기다림이었기에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다 아득한 세월을 품어온 너의 핏빛 울음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나의 노래가 똑같은 이름표를 단 뜨거운 가슴이라는 것 처절하고 간절하게 뜨겁고 눈물겨운 우리들의 노래 깊은 곳에서 갓 퍼 올린 듯 신선하고 맑았으면, 이 노래가 혼절할 듯 온몸을 던져 몰아쉬는 숨소리 텅 빈 껍데기로 쌓여가는 우리들의 8월이 지나간다 노래는 늘 어렵고 시는 언제나 깊은 강 저편에 있다 -『우연의 그림 앞에서』, (2015, 계간문예)

나의 詩 2018.08.02

소나무꽃/ 금동원

소나무 꽃 금동원 영원한 푸른 꽃이고 싶다 사방이 열린 소통이고 싶다 뿌리가 깊은 시간이고 싶다 하늘을 향해선 미소를 땅을 엿보았을 땐 겸손을 사람의 냄새를 지닌 숨결이고 싶다 무지개 빛깔의 찬란함 속에서 제 색깔을 골라내는 시선으로 서로를 보듬고 껴안을 가슴을 지니고 싶다 떠오르는 태양을 가슴에 품고 석양의 향기를 갈무리 하는 오늘도 하루를 사는 참인간이 되리라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2011, 월간문학출판부) * 천연기념물 242호 까막딱따구리가 소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아주 찍기 어려운 사진을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이기동 사진작가의 시화작품)

나의 詩 2018.07.28

7월의 논/ 금동원

7월의 논 금동원 침묵하고 돌아앉은 논두렁, 농부도 없이 땡볕으로 가득 찬 들녘 그늘에 걸터앉은 건 한가한 바람 뿐이다 아직 설익어 보잘것 없기는 벼이삭이나 풀벌레나 똑같은 품새 홀연히 날아든 호랑나비 몸짓 아슬아슬 어설프다 배추흰나비의 날개짓이 들꽃처럼 산뜻하고 덩치 큰 우물처럼 깊어진 7월의 논 마음을 들킨 듯 겸손해져 고요하고 정갈하다 욕심이 사라진 바람의 손길도 넘치지 않아 여유롭고 뒷산에서 들리는 이름 모를 새 소리 메아리도 없는 허전한 소식만 빼면 모든 것이 제자리다.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 (2011, 월간문학출판부) (작은노트) 어린시절 외가에서의 소소한 추억 몇 조각이 떠오른다. 큰 느티나무 그늘 정자 마루바닥이나 외가 툇마루에 누워 외할머니가 주시던 쌀막걸리(설탕을 섞은)를 한 모..

나의 詩 2018.07.17

그리워지다 /금동원

그리워지다 금동원 그리움이란 멈춤 없는 시간의 징검다리를 건너다가도 문득, 울컥한 뜨거움에 목이 메어 잠시 걸음을 멈추는 거다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 알 수 없는 망각이 되어 아주 오래 전 일처럼 까마득하고 아련한 여운인 거다 누군가 그리워진다는 것은 라일락 만발한 꽃밭에서 길을 잃은 봄날처럼 며칠 내내 쉬지 않고 내리는 장맛비처럼 숨이 멎을 듯 짙푸른 늦가을 하늘처럼 첫 눈이 내리면 찾아가는 옛 다방의 추억처럼 시간 속에 겹겹이 싸여 더욱 오롯하게 짙어가는 멍 같은 거다 온 몸 가득 돋아난 생 가시처럼 못 견디게 생생하고 눈물겨운 슬픔이다 외로움이 불러 낸 오래된 친구 같은 것이다 - 『우연의 그림 앞에서』, (계간문예, 2015) (작은 노트) 폭염이다. 한여름의 작렬하는 태양은 올해도 변함없이 뜨겁..

나의 詩 2018.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