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나의 詩 106

봄 청소/ 금동원

봄 청소 금동원 어느 날 문득 집 안을 들여다보니 퇴락한 초가처럼 뒤숭숭하다 봄이 오신거다 침대 밑을 털어내고 노란 빛 침대 시트를 깔고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일상의 게으름을 제각각 제자리로 되돌려 보내 주고 무거운 옷치레도 깊은 서랍 속에 잠재운 뒤 액자에 쌓여 있는 무료함마저 털어내고 나니 사진 속 우리 식구들 모두 활짝 웃고 있네 -시집『 여름낙엽』( 2008, 월간문학출판부)

나의 詩 2016.03.30

오대산의 봄/ 금동원

오대산의 봄 금동원 아들놈의 벼락공부에는 조바심을 치면서 좋은 대학 보내려는 찌그러진 모성이 벼락기도를 하러 오대산을 오른다 상원사 적멸보궁 앞마당엔 때늦은 봄눈이 내리고 삼월에 내리는 서설에 기쁨의 두 손 모으니 살얼음 깨고 솟아오르는 봄의 열기 하찮은 세상을 쓰다듬듯 흐르는 물소리에 비우고 내려놓은 부서진 마음 설익은 깨달음을 이삭 줍듯 주워 담아 철없는 다람쥐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모이로 던져주자 좁은 어깨에 실린 오만한 집착과 욕심은 사라지고 한걸음 한걸음씩 차오르는 벅찬 희열 작은 가슴에 품은 침묵 속의 큰 일침 이제 네 길을 따라 조용히 하산하라 오대산의 봄은 그렇게 죽비 한 방을 후려친다 -시집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월간문학출판부, 2011)

나의 詩 2016.03.27

시(詩) / 금동원

시-詩 금동원 시를 쓰면 버려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꾸 자꾸 버리라는 그 말이 시 쓰는게 신나야지 왼 종일 벌서듯 힘들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그 말이 시는 가슴에서 솟구쳐 뿜어대야지 머리를 쥐어짠다고 써지는 게 아니라는 그 말이 시가 뭔지 알기나 하는지 시, 제대로 쓰고나 있는지 시를 왜 쓰고 있는지 목숨 내놓고 쓴다는 게 뭔지 겁먹어는 봤는지 밑천이 바닥난 장사치처럼 본전도 못 건지고 이미 너덜너덜 거덜 난 것은 아닌지 껄렁하게 목청만 돋우는 건달패처럼 이리오고 저리가고 우르르 와장창 소란스럽기만 하고 인물값 하는 시도 없지만 몸값 하는 시도 없는 것을 보면 평생 번듯한 시 하나 쓰기는 그른 것도 같다 소원이라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 『우연의 그림 앞에서』, (2015, 계간문예)

나의 詩 2016.02.19

시체처럼 누워/금동원

시체처럼 누워 금동원 등을 붙이고 누운 사방은 열린 벽이다 투명한 관으로 만든 공간이다 의식도 염을 끝내고 이제 진짜의 세상 속으로 떠나고 없다 상복을 입은 의지들은 탈진하여 무기력하고 습관도 사소한 부분만 남아 우리가 껍데기임에 대한 곡소리만 들린다 '우리 껍데기 맞습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도무지 기억에도 없는 그곳에 시체처럼 누워 위선의 염치와 가식의 조롱만을 남긴 채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다 사라져 가는 세상 관 속에서 의연히 뼈의 자격을 누리리라 깊은 땅 속으로 회귀하는 고단한 숨소리 곁으로 담담하게 들려오는 메아리 "우리 껍데기 맞습니다." -시집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월간문학출판부, 2011)

나의 詩 2015.06.20

나를 바라보는 방법/금동원

나를 바라보는 방법 금동원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 마음 안에 숨은 내 모습 육체 속에 갇힌 내 모습 모두가 내 것이다 무조건 내 것이다 사춘기의 통과의례 가임기의 통과의례 완경이라는 통과의례 갱년기라는 절차를 끝으로 이제 살아 생전 이런 형식의 업은 용납하지 않겠다 마음 안에서 옴츠려 웅크린 내 모습 밖이 안이고 안이 밖인 내 마음의 동굴 가슴 뭉클하게 솟구치는 동질감 육체 속에 갇힌 내 그림자 연민으로 들여다보고 마주 바라보다가 이내 알아차린다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을 형식인 것을 사소한 순간적인 찰나의 문득, 이런 것들이 모여 내 결론을 정당화시키고 돌아앉는다. -시집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월간문학출판부, 2011)

나의 詩 2015.06.12

사랑니/금동원

사랑니 금동원 땅 속 깊이 웅크려 숨은 금맥처럼 감정의 골을 파고 절절한 고통 움켜쥔 채 스스로를 가두어 지키려는 기억 하나 있다 오래된 사랑의 풍경으로 남아 견고한 성채처럼 겹겹이 이와 이사이에 벽을 쌓고 절대 드러내지 않는 희망 하나 있다 한 때 사랑했던 어느새 사랑했던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세상을 뚫고 나와 움트고자 했던 뽀얀 사랑니 닮은 그리움 하나 있다면 아프지 말고 숨겨 두었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날 함께 가져 가리라. -시집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 (월간문학출판부, 2011)

나의 詩 2015.05.30

슬픈 인연/금동원

슬픈 인연 금동원 경인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베트남 처녀 소개라는 달콤한 문구 장가 못 간 시골 노총각들 베트남엘 가면 꽃 같은 처녀들이 남아돌아 삼백만 원 사백만 원 오백만 원 내 입에 맞는 음식을 고르 듯 맘껏 골라 사나흘이면 결혼식에 기념사진 신방까지 난 총각딱지 뗀 새신랑 베트남에선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은 일 열아홉 처녀의 순정보다 집안을 살려야지 한국은 잘 사니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굵은 손마디의 늙은 신랑이면 어떠랴 이제 부모님 동생들 잘 지낼 수 있을거야 중간상인 성사비로 다 뜯기고 가진 거라곤 두렵고 아슬한 마음 뿐인데 난 열아홉 살 새댁 인연은 하늘이 내린다는데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글로벌 시대이니 우리는 하나라고 떠드는 세상에서 희망차고 설레는 사랑이 오늘만 같기를 꿈꾸며..

나의 詩 2015.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