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3

방문객/ 정현종

방문객 정현종(1939~)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광희의 속삭임』, (2008,문학과 지성사)

행복해진다는 것 /헤르만 헤세

행복해진다는 것 헤르만 헤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

투명한 사람이 좋다

투명한 사람이 좋다 목적을 두지않는 편안한 만남이 좋다. 속에 무슨 생각을 할까 짐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을 잘 하지 않아도 선한 눈웃음이 정이 가는 사람. 문득 생각나 차 한잔 하자고 전화하면 밥 먹을 시간까지 스스름없이 내어주는 사람. 장미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풀꽃처럼 들꽃처럼 성품이 온유한 사람. 머리를 써서 상대를 차갑고 냉철하게 하는 사람보다, 가슴을 써서 만나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 지는 사람. 흐린 날에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왠지 햇살같은 미소 한 번 띄워줄 거 같은 사람. 사는게 바빠 자주 연락하지 못해도 서운해 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서 말없이 기도해 주는 사람. 내 속을 하나에서 열까지 다 드러내지 않아도 짐짓 헤아려 너그러이 이해해 주는 사람. 욕심없이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

종소리는 내게 와서/ 이애정

종소리는 내게 와서 이애정 눈으로 보지 말고 귀로 듣는 일 소리는 빛으로 울었다 깨우침은 여운으로 다가와 침묵으로 돌아보는 가슴이 되듯 따라 나선다고 함께 하는 건 아니었지 묻는다고 잊혀지는 건 더욱 아니었지 면면히 흐르는 세월이라 탓하지 말고 세월의 혼돈 뒤에 찾은 마지막 말 그렇게 울리렴 종소리로 울리렴 -『이 시대의 사랑법』, (2006, 마을)

우화의 강 /마종기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도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흰빛의 날들 / 잉게보르크 바흐만

흰빛의 날들 잉게보르크 바흐만 요즈음 나는 자작나무와 함께 일어나얼음으로 된 거울 앞에서밀 머리칼을 이마에서 빗질해 넘긴다 나의 숨결과 뒤섞여,우유가 펄펄 날린다.그토록 쉽게 우유는 거품을 낸다.그리고 내가 입김을 부는 창문에는,어린아이 손가락으로 그려진,그대의 이름이 다시 나타난다: 순진함이여!그토록 오랜 세월 후에, 요즈음 나는 고통을 모른다.망각할 수 있을 만큼,그래서 기억을 해내야 할 만큼, 나는 사랑하고 있다, 백열에 이르기까지사랑하며, 천사의 인사로 감사한다.나는 그 인사를 단숨에 익혔다. 요즈음 나는 알바트로스를 생각한다 나를 등에 태우고 날아올라 아무 것도 서술되지 않은 땅으로 훌쩍 건너 온 그 새를, 수평선에서 나는 어렴풋이 느낀다 찬란하게 침몰하면서, 저 건너편의 동화와 같은 나의 대륙..

어떤 날/ 전혜린

어떤 날 전혜린 나의 운명이 고독이라면, 그렇다, 그것도 좋다. 이 거대한 도회의 기구 속에서 나는 허무를 뼛속까지 씹어보자. 몇 번씩 몇 번씩 나는 죽고 죽음 속에서, 또 새로운 누에가 눈뜨듯 또 한번, 또 한번! 나는 고쳐 사는 것이다. 다시 더! 하고 소리치며 나는 웃고 다시 사는 것이다. 과거는 그림자 같은 것, 창백한 것, 본질은 나이고 현실은, 태양은 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분신, 자아의 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떤 날」, 1960, 7,25

곡시(哭詩)--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 /문정희

곡시(哭詩)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 문정희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여자의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출생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처녀 아닌 탕녀! 처절한 낙인이 찍혀 내팽개쳐졌다. 자신을 깨워,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내 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한 타국에서 그녀는 그때 열아홉 살이었다. 뭇 남자들이 다투어 그녀를 냉소하고 조롱했다. 그것도 부족하여 근대 문학의 선봉으로 새 문예지의 출자자로 기생집을 드나들며 술과 오입의 물주였던 스타 김동인은 그녀를 모델로 '문장' 지에 소설 '김연실전'을 연재했다.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성폭력, 비열한 제2의 확인사살이었다. 이성의..

여기(Tutaj)/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여기(Tutaj)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 지구에서는 모든 것이 꽤나 풍요로워. 여기서 사람들은 의자와 슬픔을 제조하지. 가위, 바이올린, 자상함, 트렌지스터, 댐, 농담, 찻잔들을. 어쩌면 다른 곳에서는 모든 게 더욱 풍족할 수도 있어. 단지 어떤 사연에 의해 그림이 부족하고, 브라운관과 피에로기*, 눈물을 닦는 손수건이 부족할 뿐. 여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장소와 그 주변 지역들이 있어. 그중 어떤 곳은 네가 특별히 좋아해서 거기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위해(危害)로부터 그곳을 지켜내고 있는지도 몰라. 어쩌면 다른 곳에도 여기와 비슷한 장소가 있지 않을까. 단지 거기서는 아무도 그곳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을 뿐. 어쩌면 다른 어느 곳과도 달리,혹은 거의 대부분..

미노이의 사막 / 최종월

미노이의 사막 최종월 물 한 그릇을 찾아야 하기에 손톱이 헐도록 사막을 퍼낸다 우물 향해 걷다가 주저앉아 땅을 판다 머리 위로 소복소복 쌓이는 것은 꽃잎도 눈보라도 아닌 마른 모래다 신발이 없는 네 살 미노이가 물통을 들고 다시 걷는다 손톱에 사막이 끼여 쓰라리다 일곱 달 되어 사막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여자 아이는 사막에 버려졌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만 하루 동안 사막에서 울다가 이름 없이 떠났다 사막의 물은 숨어서 흐른다 땅 위에 널린 수많은 이름들이 눈부셔서 하늘 한 귀퉁이에서 깜박이고 있는 보이는 듯 아닌 듯한 아기별이여 만 하루 동안 울어 본 기억도 없이 이름을 가진 네가 눈부시구나. * 미노이: 아프리카 케냐의 어린이 이름 -『사막의 물은 숨어서 흐른다』, ( 마을, 2017) ○최..

친구들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친구들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구에서 별에 이르는 저 광활한 우주 공간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박식하기 짝이 없는 우리들이 고작 대지에서 머리까지인, 이 짧은 사정거리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회한에서 눈물에 도달하기까지 행성과 행성 사이를 떠돌고 있다. 거짓에서 진실로 향하는 여정에서 너는 더 이상 청춘이 아니다. 초고속 제트기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비행과 소리 사이를 관통하는 침묵의 갈라진 틈바구니, 그것은 일종의 세상에 관한 기록. 제트기의 이륙이 좀 더 빨랐다. 뒤늦게 공명하는 소리의 잔향이 몇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비로소 우리를 꿈에서 끄집어낸다. "우리는 결백합니다!" 애타는 고함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누구의 외침일까? 우리들은 창문을 와락 열어젖힌다. 순간 소리가 멈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