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3

풍장의 습관 /나희덕

풍장의 습관 나희덕 방에 마른 열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책상 위의 석류와 탱자는 돌보다 딱딱해졌다. 향기가 사라지니 이제사 안심이 된다. 그들은 향기를 잃는 대신 영생을 얻었을지 모른다고, 단단한 껍질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려본다. 지난 가을 내 머리에 후두둑 떨어져 내리던 도토리들도 종지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흔들어보니 희미한 종소리가 난다. 마른 찔레 열매는 아직 붉다. 싱싱한 꽃이나 열매를 보며 스스로의 습기에 부패되기 전에 그들을 장사지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때 이른 풍장의 습관으로 나를 이끌곤 했다. 바람이 잘 드는 양지볕에 향기로운 육신을 거꾸로 매달아 피와 살을 증발시키지 않고는 안심할 수 없던, 또는 고통의 설탕에 절인 과육을 불 위에 올려놓고 나무주걱으로..

두이노이 비가-제10비가

두이노의 비가 -제 10 비가 R.M.릴케 나 언젠가 이 무서운 인식의 끝에 서서 화답하는 천사들을 향해 환호와 찬미의 노래 크게 부르게 되기를. 맑게 내려친 심장의 망치가 연약한 현, 주저하는 현 혹은 에는 듯한 현에 닿아도 그 울림소리 흩어지지 않기를, 쏟아지는 눈물이 내 얼굴을 더욱 빛나게 하기를, 남모르는 울음이 꽃으로 피어나기를, 오, 밤이여, 비애의 밤들이여, 그때에는 너희들이 얼마나 나에게 정겨운 것이 되랴. 슬픔의 자매들이여, 너희들 앞에 더 낮게 무릎을 꿇어 받아들이고, 풀어 헤친 너희들 머리칼 속에서 나를 더 풀어 몸 바쳐야 했었건만. 우리들, 고통의 낭비자들이여. 슬픔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행여 끝나지 않을까 기대하며 산다. 그러나 고통은 고통은 우리의 겨울 나뭇잎, 우리의 짙..

너에게 쓴다/ 천양희

너에게 쓴다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 -『시의 숲을 거닐다』,(샘터,2006)

오래된 질문 / 마종기

오래된 질문 마종기 여러 개의 꽃을 가진 부자보다 한 개의 꽃을 겨우 가진 네가 행복하구나. 한 개의 꽃만 있으니 그 꽃의 시작과 끝을 알고 꽃잎의 색깔이 언제쯤 물 드는지, 비밀스럽게 언제쯤 향기를 만드는지. 다가가면 왜 미소를 전하는지, 몇 시쯤 잠이 드는지. 잠이 들면 그 숨소리도 하나씩 다 들을 수 있는 황홀, 꽃을 한 개만 가진 이가 소유의 뜻을 세밀하게 아네. 그러나 언젠가 나이 들어 다 늙고 시든 몸으로 우리가 맨 땅에 질 때, 생전의 모든 의미는 꽃의 어느 기억에 남을까. 아깝고 귀하다고 누가 우리 가까이 다가와 빈손을 잡아 잠 깨워줄까. 기도해 주어! -죽은 내 친구 규창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반신불수가 된 내 오랜 친구를 병문안 갔더니 친구는 침대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성한 한쪽 손으로 ..

소곡/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소곡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 좀처럼 가지 않는 어두운 숲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죽은 자와 산 자가 자리바꿈하는 날이 오리라. 숲은 움직이게 되리라. 우리에겐 희망이 없지 않다. 많은 경찰들의 노래에도 불구하고 가장 심각한 범죄들은 미결로 남으리라. 마찬가지로 우리 삶 어딘가에 미결의 위대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두운 숲을 물려받았지만 오늘은 다른 숲, 밝은 숲을 걷는다. 노래하고 꿈틀대고 꼬리 흔들고 가는 모든 생명들! 봄이 왔고 공기가 무척 강렬하다. 나는 망각의 대학을 졸업하였고, 빨랫줄 위의 셔츠처럼 빈손이다 -시선집 『기억이 나를 본다』,(들녘, 2004) ○작가 소개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Tomas Transtromer, 1931~2015)는 2011 노벨문학상,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

삶은 무엇인가? /마더 테레사

삶은 무엇인가? 마더 테레사 Life is an opportunity, benefit from it. 삶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으십시오. Life is a beauty, admire it. 삶은 아름다움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찬미하십시오. Life is bliss, taste it. 삶은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맛보십시오. Life is a dream, realize it. 삶은 꿈입니다, 이 꿈을 실현하십시오. Life is a challenge, meet it. 삶은 도전입니다, 이 도전에 대응하십시오. Life is a duty, complete it. 삶은 의무입니다, 이 의무를 완수하십시오. Life is a game, play it. 삶은 놀이입니다, 이 놀이에 함께 하십시..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

새벽에 생각하다/ 천양희

새벽에 생각하다 천양희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노트르담의 성당 종탑에 새겨진 '운명'이라는 희랍어를 보고 「노트르담의 꼽추」를 썼다는 빅토르 위고가 생각나고 연인에게 달려가며 빨리 가고 싶어 30분마다 마부에게 팁을 주었다는 발자크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인간의 소리를 가장 닮았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가 생각나고 너무 외로워서 자신의 얼굴 그리는 일밖에 할 일이 없었다는 고흐의 자화상이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어둠을 말하는 자만이 진실을 말한다던 파울첼란이 생각나고 좌우명이 진리는 구체적이라던 브레히트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소리 한 점 없는 침묵도 잡다한 소음도 훌륭한 음악이라고 한 존 케이지가 생각나고 소유를 자유로 바꾼 디오게네스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 문정희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문정희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숨죽여 홀로 운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몰라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당신을 못 볼지도 몰라 입술을 열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면...... 한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을 꽃 속에 박힌 까아만 죽음을 비로소 알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의 심장이 지금 뛰는 것을 당신께 고백한 적이 있다면......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절박하게 허공을 두드리며 사랑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도서출판,2013)

기도하는 시간을 위한 책 / 릴케

기도하는 시간을 위한 책 릴케 나는 세상에서 무척 외롭지만, 매 순간을 신성하게 할 만큼 외롭지는 않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너무 작지만 영리하고 드러나지 않게 당신 앞에 꼭 무슨 물건처럼 놓여 있을 만큼 그렇게 작지는 못합니다. 나는 내 자신의 의지를 원하며, 다만 내 의지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그게 행동을 향해 움직일 때, 그리고 침묵 속에서, 때로 시간이 좀체 흐르지 않아 뭔가 가까이 오고 있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아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있겠어요. 나는 당신의 온몸을 위한 거울이고 싶으며, 또한 당신의 무겁고 흔들리는 영상을 지탱하지 못할 만큼 눈멀거나 늙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드러나고 싶습니다. 나는 드러나지 않은 채 어디 있고 싶지 않아요, 내가 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