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3

내면으로 가는 길 / 헤르만 헤세

내면으로 가는 길 헤르만 헤세 내면으로 가는 길을 찾은 사람에게는 작열하는 자기 침잠 속에서 사람의 마음은 신과 세계를 형상과 비유로만 선택한다는 지혜와 핵심을 느낀 사람에게는 행위와 온갖 사고(思考)가 세계와 신이 깃든 자신의 영혼과의 대화가 된다 -『헤르만 헤세 시집』,( 문예출판사, 2013) 시인 헤세, 그리고 화가 헤세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도록 엄선된 시 139편과 수채화 34편을 수록한 시화집이다. 엄선된 각 시는 본래 《시집》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보완되고 게제된《젊은 날의 시집》(1902), 무상과 우수를 극복하고자 사랑을 노래한 《고독한 사람의 음악》(1916), 격동에서 원숙에 이르는 시기의 서정적 결실을 모은 시집인 《밤의 위안》(1929), 헤세 시집의 마지막 ..

장소에 대하여/ 정현종

장소에 대하여 정현종 모든 장소들은 생생한 걸 준비해야 한다. 생생하게 준비된다면 거기가 곧 머물 만한 곳이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그 무엇이든 풍경이든 귀신이든 그 무엇이든 생생한 걸 만나지 못하면 그건 장소가 아니다 (가령 사랑하는마음은 문득 생생한 기운을 돌게 한다. 슬퍼하는 마음은 항상 생생한 기운을 일으킨다 올바른 움직임은 마음에 즐거운 청풍을 일으킨다) 생생해서 문득 신명 지피고 생생해서 온 몸에 싹이 트고 생생해서 봄바람 일지 않으면 그건 장소가 아니다. 오 장소들의 지루함이여. 인류의 시간 속에 어떤 생생함을 한 번이라도 맛볼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드문 그런 은총을 한 번이라도 겪을 수 있는 것인지...... 시간은 한숨 쉬며 웃고 있고나. 그나마 시와 그 인접예술들은 곧 장소의 생생함 ..

침묵의 소리 /클라크 몬스타카스

침묵의 소리 클라크 몬스타카스 존재의 언어로 이야기하자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나는 그대를 정의하거나 분류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겉으로만 알고 싶지 않기에. 침묵 속에서 나의 가슴은 그대의 아름다움을 반사해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소유의 욕망을 넘어 그대를 만나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허용해 준다. 함께 흘러가거나 홀로 머물거나 자유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대를 느낄 수 있으므로. 사랑의 영원한 가치로서 우리의 덧없는 존재를 긍정하고 싶다.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문학사상사, 1999)

시의 아마추어/ 폴 발레리

시의 아마추어 폴 발레리 내 진정한 생각을 문득 들여다보게 될 경우, 나는 인칭도 태생도 없는 이 내면의 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에 쉬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이 하루살이 같은 형상들을, 자신들의 편의로 중단되며 또 그러면서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서로를 탈바꿈시키는 이 무한의 시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이처럼 겉보기와는 달리 일관이라곤 없으며, 우발적으로 발생하여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생각에, 애당초 양식이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게는 매일 꼭 필요한 몇몇의 존재들에게 집중할 힘도, 지긋지긋한 도망대신 시작과 충일과 결말의 모습을 갖추는 정신적 장애들을 가장할 힘도 없다. 한 편의 시란 하나의 지속으로, 독자인 나는 그것을 읽는 내내 앞서 마련된 하나의 법칙..

굉장한 일/ 정현종

굉장한 일 정현종 무슨 굉장한 일을 하는 듯이 자동차 문을 열고 굉장한 일을 한다는 듯이 자동차 문을 닫고 굉장한 일을 한다는 듯이 트렁크 문을 열고 머리를 처박았다가 꺼내며 무슨 굉장한 일을 하는 듯이 트렁크 문을 닫고 요새 사람들의 중요한 일이 대개 그 비슷한 것일진대 정말이지 사람들이여 무슨 굉장한 일이 좀 있어야겠다. -시집『견딜 수 없네』(문학과지성사, 2013) 정현종은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5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등과 시선집 『정현종 시전집』 『섬』, 시론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靜脈(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靜脈(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數千(수천) 數萬(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三月(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시집『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2000, 답게) ○김춘수(1922~2004) 시인. 경남 통영 출생.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서 ‘인..

래여애반다라/이성복

來如哀反多羅 1 이 성복 추억의 생매장이 있었겠구나 저 나무가 저리도 푸르른 것은, 지금 저 나무의 푸른 잎이 게거품처럼 흘러내리는 것은 추억의 아가리도 울컥울컥 게워 올릴 때가 있다는 것! 아, 푸르게 살아 돌아왔구나. 허옇게 삭은 새끼줄 목에 감고 버팀대에 기대 선 저 나무는 제 뱃 속이 온통 콘크리트 굳은 반죽 덩어리라는 것도 모르고 來如哀反多羅 2 바람의 어떤 딸들은 밤의 숯불 위에서 춤추고 오늘 밤 나의 숙제는 바람이 온 길을 돌아 가는 것 돌아가면 볼 수 있을까. 바람의 어떤 딸들이 신음하는 어미의 자궁을 열고 피 묻은 나를 번쩍 들어 올릴 때 또 다른 딸들이 깔깔거리며 빛바랜 수의를 마름질 하는 것 보다가, 보다가 어미의 삭은 탯줄 끌고 돌아 올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죽고 없는 세상으로 ..

역(驛) /한성기

역(驛) 한성기(1923~1984) 푸른 불 시그낼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역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오고... 비가오고... 아득한 선로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 -『문예』 (1952,05) * 함남 정평 출생. 와 으로 등단한 그는 사물과 실재에의 겸허하고도 차분한 접근과 통찰을 통하여 경이로운 질서와 참신한 시적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시인. 시집으로 등이 있으며, 동인이기도 했다.

설명해줘요 내게, 사랑 /I.바흐만

설명해줘요 내게, 사랑 잉게르보크 바흐만 당신 모자가 가볍게 쳐들리는군요, 인사를 하고,바람에 들썩이는군요 당신의 드러난 머리는 구름을 걸치고 있고 당신의 가슴은 어딘가 다른 곳과 맺어져 있으며 당신의 입은 새로운 언어와 한몸을 이룹니다. 땅 위엔 방울내풀이 무성하고 여름은 아스터꽃을 불어 일으키고 또 불어서 없앱니다. 날리는 꽃송이에 눈멀어 당신은 얼굴을 드는군요, 당신은 웃고, 울다 지쳐 당신 자신에게 쓰러집니다. 당신께 무슨일이 또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설명해줘요 내게, 사랑! 공작이 놀랍도록 화려한 몸짓으로 꼬리를 폅니다. 비둘기는 털깃을 높이 올리고 구구거리는 소리 흘러넘쳐 공기는 한껏 팽창되구요, 숫오리는 외쳐대는데, 온 대지에서 야생 벌꿀이 조금만 덜어내지고, 다듬어진 정원에서도 금빛 ..

사진첩/ 비스바와 쉼보르스카

사진첩 비스바와 쉼보르스카 가족 중에서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한때 일어난 일은 그저 그뿐, 신화로 남겨질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로미오는 결핵으로 사망했고, 줄리엣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늙어빠진 노년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남았다. 눈물로 얼룩진 편지에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승을 등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 장미 꽃다발을 든 평범한 이웃 남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남편이 갑자기 돌아와 고풍스러운 옷장 안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없다! 구두끈과 만틸라*, 스커트의 주름 장식이 사진에 나오는 데 방해가 되는 일도 없다. 아무도 영혼 속에 보스*의 지옥을 품고 있지 않다! 아무도 권총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진 않는다! (어떤 이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