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3

청춘/ 새뮤얼 울만

청춘 새뮤얼 울만 젊음이란 삶의 기간이 아닌 마음의 상태이네. 그것은 장미빛 볼,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이 아닌 의지, 상상력, 감성의 질과 정도의 문제이네. 그것은 삶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신선함이네. 젊음이란 주저하는 의욕을 움직이는 용기, 안이함을 뛰어넘는 모험심을 뜻하네. 그것은 흔히 이십 세의 소년에게서보다 육십 세 어른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네. 단지 햇수로 늙는 사람은 없네. 우리는 이상을 버림으로 늙는 것이네. 세월은 살결을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포기하면 영혼이 주름지네. 걱정, 공포, 자기불신은 마음을 굽게하여 정신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네. 육십 세이든 십육 세이든, 모든 이의 마음엔 경이로움에 끌리는 매력과 미지의 것에 대한 어린이 같은 끊임없는 욕망 그리고 삶의 유..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시집「수평선 너머」(한길,2009) 『날마다 한 생..

로르카 시 읽기- 강의 백일몽 외

(작은 노트) 이번 스페인 여행 중에 아쉽지만 일정상 가보지 못한 곳이 로르카의 기념관이다. 로르카는 정현종 시인의 번역으로 나와있는 시집을 통해 작품을 접해봤지만, 스페인을 방문하고 나서 만나는 로르카는 당연히 특별하게 다가온다. 더우기 '두엔데'라는 스페인 특유의 정신, 혹은 정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내용을 인용해본다. 강의 백일몽 로르카/ 정현종 역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그 영상들은 남긴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우리한테 바람을 남겨 놓는다.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바람은 수의를 입힌다 (얼마나 슬프고 짧은 시간인가!) 허나 그건 우리한테 그 메아리를 남긴다, 강 위에 떠도는 그걸. 반딧불들의 세계가 내 생각에 업습했다 (얼마나 ..

푸른 시간/ I. 바흐만

푸른 시간 잉게보르크 바흐만 늙은이는 말한다: 나의 천사여, 네 뜻대로, 네가 이 열린 저녁을 달래고 나의 팔짱을 끼고 잠시만 걸어간다면, 마법에 걸린 보리수들의 주문을 이해한다면, 푸른 빛 속에 섞여 한깟 부풀어 있는 램프들, 마지막 얼굴들을! 네 얼굴만이 또렷이 빛나는구나. 책들은 죽었고, 세계 양극의 긴장은 풀어져, 어두운 물결이 겨우 붙들어매놓고 있을 뿐, 네 머리칼의 머리핀은 빠진다. 나의 집에는 쉼없는 바람과 달의 휘파람소리- 이어 자유궤도의 도약과 기억에 의해 끌려온 사랑뿐이야. 젊은이가 묻는다: 당신은 앞으로도 그럴 건가요? 내 방의 그림자들 앞에서 맹세하세요, 그리고 보리수의 주문이 어둡고 참되다면, 꽃들과 더불어 그것을 읊고, 당신의 머리칼과, 흘러사라지려는 밤의 맥박을 열어놓으세요! ..

너무 좋아서 / 정현종

너무 좋아서 정현종 너무 좋아서 나는 너를 번역하기 시작한다 네 눈을 '눈'이라고 번역하고 네 얼굴을 '얼굴'이라고 번역하고 네 손을 '손' 네 가슴을 '가슴' 네 그림자를 '그림자' 그리고 네 기쁨을 '기쁨'이라 번역하고 네 슬픔을 '슬픔' 네가 있으면 '있다'고 하고 네가 없으면 '없다'고 하고 흘러 흘러 피는 '피'로 네가 문장의 처음을 열면 나는 끝없는 그속으로 들어가 인제는 날개의 하늘이 된 거기서 자유형 헤엄을 치는데, 알코올 함유량이 부드러운 40도쯤 되는 가령 '술집'은 문맥을 부드럽게 하느니 그리하여 단어를 섞어서 수수께끼를 만들기도 하는데 열쇠는 사랑(사량?) 오 추억이 삶보다 앞서가는 신명의 묘약! 너무 좋아서 나는 너를 번역하기 시작한다 메아리와도 같은 숨쉬는 문장이여 내 죽음은 아..

제주4.3.70주년에 읽어보는 세 편의 시

바람의 집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가 바람의 집이었던 것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삶창, 2017) 생(生)은 아물지 않는다 이산하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

야사하(夜思何-이밤에 무얼 생각하나요)

조선의 여류시인 황진이(黃眞伊, 1506~1567?,중종~명조,)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시가 하나 있다. 야사하(夜思何- 이 밤에 무얼 생각하나요) 황진이가 젊은 시절 썼던 시로 알려진 특유의 감성적이고 애잔한 마음이 그대로 읽혀지는 시다. 대제학을 지낸 소세양과 한달간 동숙하고 헤어진 뒤 황진이가 사랑했던 남자 소세양을 그리는 애타는 마음을 글로 적어서 시비(侍婢) 동선이를 시켜 한양에 있는 소세양에게 전하게 했다는 시가 夜思何(야사하)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실과 다르다. 아래의 시 ‘야사하(夜思何)’는 흔히 황진이가 지은 시를 작가 양인자씨가 번역하여 작사를 하고 이선희가 노래 부른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본래 먼저 양인자씨가 작사한 ‘알고 싶어요’ 노래 가사를 소설가 이재운씨가 양..

즐거운 편지/ 황동규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시선 『三南에서 내리는 눈』, (1975, 민음사 ) (작은노트) 황동규 시인의 를 읽노라면 대학교 1학년 때가 많이 생각난다. ..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장석주 너무 멀리 와버리고 말았구나 그대와 나 돌아갈 길 가늠하지 않고 이렇게 멀리까지 와버리고 말았구나 구두는 낡고, 차는 끊겨버렸다. 그대 옷자락에 빗방울이 달라붙는데 나는 무책임하게 바라본다, 그대 눈동자만을 그대 눈동자 속에 새겨진 별의 궤도를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한들 이제 와서 어쩌랴 우리 인생은 너무 무겁지 않았던가 그 무거움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고단하게 날개를 퍼덕였던가 더 이상 묻지 말자 우리 앞에 어떤 운명이 놓여 있는가를 묻지 말고 가자 멀리 왔다면 더 멀리 한없이 가버리자 - 시집『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 갈수 있다면』(세계사, 1998) 출판사 서평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받고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