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를 읽다

벽(김지하 시인, 1941~)

금동원(琴東媛) 2015. 6. 5. 06:46

 

 

 

 

김지하

 

 

그것 뿐

있는 것은 그것 하나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하나

그것뿐

내 마음에 내 몸에 몸 둘레에

너와 나 사이 모든 우리들 사이

다시 벽

네 이름을 쓰는

네 그리움을 눌러서 쓰는

붉은 벽

옛날 훗날

꿈길도 헛것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

내 마음이 네 가슴속에

녜 몸속에 내 살덩이가

파고들어 파고들어 끝없이 파고들어

기어이 본디는

하나임이 화안이 드러나 열리는

자유, 열리는

눈부신 빛무리 속의 아침바다

그것을 손톱으로 쓰는

그것을 흐느낌으로 우리가 쓰는

온몸으로 매일 쓰는

네 이름을 쓰는

내 그리움을 눌러서 쓰는

그것은 이미 우리 앞에 없다

 

 

- 『유심』, 2015년 6월호에 수록 (p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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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감상 후기)

대학교를 다닐 때 운동권 학생이 아니였어도 '김지하'는 이름만으로 우리들에게는 희망이었고 신적인 존재였다.

그가 쓴 시집 『오적』등을 구할 수도 없었지만,  학교 어디쯤에 돌고 있다더라~라는 소문만 들어도 가슴을 흔들던 그 울렁거림이라니...

하루는 지도교수에게 불려가 김지하 시집은 불온한 시집이니 가지고 있으면(돌아다니면) 무조건 가져다 달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듣고 나왔는데, 그 때 김지하의 시집 원본을 더욱 미치게 구하여 품에 품고 싶었던 열망으로 간절했던,

그러나 당연히 구할 수 없었던 시절의 뜨거움이 이제는 새삼스럽다

 

민주주의여~, 「타는 목마름으로」를 읽으면서 자유를 찾아 신새벽에 뛰쳐나가야 할 것 같았던 청춘이라는 부채의식,

온 몸을 훑고 지나가던 그 전율을  아직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김지하 시인도 나도 세월 속에 녹아 그저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시간 속에서 역사 앞에서 모두 사라졌건, 덮여있건, 변질되었건, 그것들은 이미 우리 앞에 없다. (금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