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신중현(申重鉉 1938~)
신중현(申重鉉 1938~)
한국 록 음악의 대부로 불린다.
6·25전쟁 때 가족을 모두 잃고 공장에서 일을 하는 틈틈이 기타를 치며 음악 공부를 했다. 1958년 미8군 무대를 통해 기타리스트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명곡을 발표하며 한국적인 록 음악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프로듀서로서도 자질을 발휘해 펄시스터즈를 비롯해 김추자와 박인수, 장현 등을 발굴하며 스타 제조기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그는 밴드 더 맨을 결성해 1972년 한국 록 음악사상 불후의 명곡으로 칭송받는 〈아름다운 강산〉이란 대곡을 발표했고, 이후 3인조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밴드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는 1975년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5년 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로 컴백했으나 군사정권의 한계 때문에 성공은 제약적이었다. 2006년 은퇴 공연을 갖고 45년 음악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며 한국 록 음악계의 전설로 남았다
소울과 블루스의 만남은 이런것인가???
개인적으로 정통 록 블루스를 좋아하기에 박인수의 '봄비'같은 대곡은 당연히 나의 애청곡이 될 수밖에 없다.
1960년대말 신중현에 의해 발굴된 한국 소울음악의 창시자격인 박인수(1946년생)...
미8군 무대에서 백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흑인들만의 소울 정신을 흑인들에 의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것이다.
흑인보다 더 흑인의 영혼을 지닌 아티스트라고 신중현은 회고록에서 그의 진가를 서술한 바 있다.
그러나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아가 된 박인수는 미국으로 입양 후 재 입국 마땅히 설자리가 없었지만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미군들과 신중현에 의해 화려하게 데뷔를 하게 되지만, 특히나 '봄비'로 벼락 스타가 된것이 화근이었는지 방탕한 생활과 두번의 이혼과 두번의 대마초 사건으로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었다. 또한 저혈당과 췌장암으로 인한 기억력 감퇴 후유증등,, 아직도 고생을 하지만 하늘이 도우신걸까 그의 아내와 가족들이 오히려 그를 받아들이면서,비록 몸은 정상은 아니지만 인생의 노년기를 행복하게 보내고있다.
얼마전 유투브에서 팬들에 의해 모임을 가진듯한 최근 어느 클럽의 봄비 동영상을 보니 가슴이 절로 뭉클 해지는 내 자신을 볼 수가 있었다.
전성기의 박인수는 아니지만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출처: Byung Ick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