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명인 황병기(黃秉冀,1936 ~)
황병기(黃秉冀, 1936년 5월 31일~ ~ )는 국악 작곡가이자 가야금 연주자이다. 본관은 우주(紆州)이다.
서울 출생, 서울대 법과대 졸업, 2010 제21회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 수상, 현 이화여대 명예교수이다.
침향무(沈香舞): 침향의 향기 속에 추는 춤이라는 의미의 가야금 연주곡이다. 1974년 불교음악인 범패의 선율을 바탕으로 작곡하였다.
새로운 가야금 조율법과 연주법을 사용해 불교의 영향을 받아 꽃피운 신라시대 예술을 표현,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명인의 원숙한 음악적 세계가 돋보인다.
팔순의 가야금 명인 황병기, 7년 만에 미궁 연주
“‘미궁’은 악보 없는 즉흥 음악…나 아니면 아무도 연주 못해”
가야금 술대를 잡은 지 어언 65년째다.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가야금을 만났다. 작곡가로서의 창작활동은 54년째에 접어들었다. 1962년 썼던 창작곡 <숲>이 시작이다. 그 1년 전에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바탕으로 옛 선비들의 노래인 ‘가곡’을 작곡하기는 했다. 하지만 ‘최초의 현대 가야금 창작곡’으로 자리매김되는 <숲>에서부터 그의 예술세계는 막을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이후에 그는 <가을>(1963), <석류집>(1965), <가라도>(1968) 등으로 고아한 정취를 선보이다가, 1974년 작곡한 <침향무>에서 “조선의 전통과 결별하고 신라의 음악을 상상”했다. 이어 1975년 쓰고 발표한 <미궁(迷宮)>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갔다. 정확한 제목은 ‘가야금과 인성(人聲)을 위한 미궁’이다. 우리 나이로 마흔에 접어들어 “창작의 전성기”를 맞아 가야금이라는 전통악기로 현대적 표현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줬다.
팔순의 가야금 명인 황병기가 7년 만에 <미궁>을 무대에서 연주한다. 30일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펼쳐지는 현대음악 콘서트 ‘Right Now Music 2016’에서다. 오랜만의 연주회를 앞둔 그를 자택에서 만났다.
북아현동 언덕길에 하얀 3층집. 황병기와 작가 한말숙(85) 부부가 1974년부터 살아온 집이다. 그는 <미궁>에 대해 “내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악보가 없는 즉흥 음악”이라면서 “나 아니면 아무도 연주를 못한다. 내게서 태어나서 나와 함께 사라질 음악”이라고 말했다.
“<미궁>은 인간이 태어나서 피안의 세계로 떠날 때까지를 묘사하는 음악입니다. 미궁이란 한번 들어가면 나올 길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죠. 나는 인생을 하나의 미궁이라고 생각해요. 가야금 한 대와 여자의 목소리로,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곡을 쓰고 싶어서 작곡했죠. 아예 악보가 없는 음악입니다. 내 창작곡 중에서도 유일하죠. 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음악이 달라져요. 1975년에 무용가 홍신자와 명동국립극장에서 초연했는데 전통적인 가야금 연주법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죠. 울다가 웃다가, 신문 낭독하다가 갑자기 절규하고… 마지막에는 조로아스터교의 구음으로 불교의 반야심경 구절을 낭송합니다. 그렇게 낯선 음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포를 느꼈던 것 같아요.”
당시의 초연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발행하던 잡지 ‘공간’의 100호를 기념하는 ‘국제현대음악제’의 일환이었다. 한데 연주 중간에 한 여성이 무섭다며 연주회장을 뛰쳐나갔다.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가지려던 두번째 연주회는 아예 공연이 불허됐다.
“너무 쇼킹하고 괴기스럽다고 정부 측에서 공연을 못하게 했대요. 나도 나중에야 알았죠. 그렇게 이 곡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졌어요. 내 CD 중에서도 가장 안 팔린 곡이었죠.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갑자기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퍼졌어요. 세번 들으면 죽는다느니, 세계적으로 벌써 3000명이 죽었다느니… 그런 괴담이 나돌기 시작했죠. 학부형들이 전화로 항의하고 어떤 분은 나한테 ‘두번 들었는데, 한번만 더 들으면 진짜 죽느냐?’고 메일을 보내기까지 했어요. 나도 여기에 답장을 보내줬죠. ‘그렇다, 당신은 죽는다. 60년쯤 뒤에’라고(웃음).”
<미궁>과 달리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곡은 <침향무>다. “가야금은 약 1500년간 이어진 악기죠. 가야에서부터. 그래서 가야금이죠. 그런데 우리 음악은 오랫동안 조선에 갇혀 있었어요. 최고의 가야금 독주곡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산조였습니다. 내가 창작곡을 쓰기 전까지 그랬어요. 그래서 신라의 음악을 상상하면서 <침향무>를 썼던 것인데 이게 내 음악 중에서 최고의 히트곡이 됐죠.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아마 수천번쯤 연주됐을 겁니다. 교과서에까지 실렸어요.”
부부가 함께 사는 집이건만 웬일인지 작가 한말숙 여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국립국악원에서 만나 7년 연애하다 결혼했다. 황병기 명인은 “내가 27살, 집사람이 32살 때였다”고 했다. 호칭은 ‘집사람’이었다. 그는 “이제 집사람은 누군가 부축을 해야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내 옆에 있는 존재들은 다 오래된 거죠. 전화번호도 고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번호니까. 국번만 바뀌었죠. 이 집도 1974년에 이대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고, 그러고 보니 마누라도 벌써 50년이 훌쩍 넘었네. 아내는 아래층, 나는 위층에서 살아요. 우린 아무 불편 없이 그렇게 지냈거든. 그런데 지금 여기가 2층이잖아. 그러니 집사람이 안 보이지.”
그는 말끝에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서재 겸 연습실로 사용하는 2층 거실의 테이블은 음반과 악보들로 어지러웠다. 얼핏 보니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릿의 솔로 연주집 등이 눈에 들어왔다. 고전에서 현대음악까지, 또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취향이 그렇게 펼쳐져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뭐냐?’는 우문에 그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의 ‘샤콘느’”라고 답했다. “잠자기 전에 두 시간쯤 음악을 듣는다”면서 “바흐의 음악은 자연 그 자체여서 자꾸 마음이 끌린다”고 했다.
30일 펼쳐지는 ‘Right Now Music 2016’(예술감독 김인현)은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 중간에 1시간의 휴식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이어지는 ‘마라톤 콘서트’다. 국내외 연주자들이 여럿 참여하는 가운데 황병기 명인의 <미궁>은 6시부터 청중과 만난다.
<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