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산책

세바스치앙 살가두(1944~)

금동원(琴東媛) 2017. 2. 27. 21:15

 

세바스치앙 살가두

 

  세바스치앙 살가두(1944~)는 브라질 미나스 제라이스 주에서 작은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상파울로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건너 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과정 수료 뒤 런던 국제커피기구에서 일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방문하고 나서 커다란 영감을 얻어 29세에 고액 연봉의 국제커피기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사진가로 전업했다. 그는 국제분쟁과 기근의 현장에서 유니셰프, 국경없는의사회, 적십자, 국제연합난민기구 들과 함께 작업하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표현해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몇 달씩 피사체와 동고동락하며 사진을 찍는 작업 방식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여전히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사진집 『다른 아메리카』,『사헬, 비탄에 빠진 인간』, 『불확실한 은총』,『인간의 손』, 『엑소더스』, 『아프리카』, 『 GENESIS』이다. 시그마에이전시, 감마에이전시, 매그넘에이전시를 거쳤고, 1994년에 아내 렐리아 와닉 살가두와 아마조나스이미지스를 설립했다. 이 부부는 인스치투투테라를 설립해서 브라질 숲을 살리는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불린다. 『 세바스치앙 살가두, 나의 땅에서 온 지구로 』이 책은 그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최초의 자기 고백으로,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온 지구로 나아가는 한 사진가의 뜨거운 여정을 담백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출처 :백소영(TRAVEL & MAGAZINE)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 `GENESIS` 지구에 보내는 러브레터

  신정인 기자/입력 : 2014.10.22 10:27:44  

 

 

  원시시대 지구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건 사진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제네시스(GENESIS) 프로젝트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8년 동안 갈라파고스,알래스카, 사헬 사막등 세계 120여 개국을 돌며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지구의 모습을 담아낸 거장 포토 저널리스트, 대단한 연서를 들여다보고 있다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ãoSalgado)의 사진에는 짙은 드라마가 공존한다. 바라보는 순간 강렬하게 다가와 쉽게 시선을 뗄 수 없게 하는 자연의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인 시와 같다. 살가두가 처음부터 사진가의 길을 갔던 것은 아니다. 브라질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1971년부터 국제커피협회에서 경제학자로 근무 중에 아프리카를 방문하게 된다. 당시 아프리카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한 상황이었다. 이 때 건축학을 전공한 아내가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를 들여다 본 것이 살가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사진은 전 세계에서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휴머니즘의 백미를 보여주는 사진가에게 수여하는 유진 스미스상 이외에 50여 개의 세계보도사진상을 수상한 대단한 포토저널리스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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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바호 구역에서 바라본 콜로라도 강과 작은 콜로라도 강의 합류지점.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은 이 합류지점에서 시작된다.아리조나. 미국.2010.

(아래) 잠비아에서는 밀렵꾼이 코끼리를 사냥하기 때문에 코끼리는 사람과 차를 무서워한다.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 놀래서 관목으로 아주 빠르게 도망친다.카푸에 국립공원.잠비아.2010.

 

◆직접 환경운동에 나서는 다큐사진의 거장

   살가두는 사회적 이슈와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사진으로 전달했으며, 직접 복원 운동에서 나서는 환경주의자로도 이름 높다. 황폐해진 고향 땅에서 ‘인스티튜트 테라’ 캠페인을 벌여 나무 200만 그루를 심어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게 했고, 숲에서 하루 10만톤의 이산화탄소가 정화되도록 노력했다. 또 2001년부터 13년 동안 유니세프 특별대사로 일하며 국경없는 의사회, 말라리아 박멸 프로그램, 기아 탈출 프로그램 등과 협력해 일하기도 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둘째 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헌신하는 부모이며, 건축가 및 큐레이터로 일하는 부인을 정성껏 외조하는 가족애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세계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으려 몇 년간에 걸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너무나도 자주 죽음과 파괴, 부패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제네시스(GENESIS)는 급격한 경제·사회의 변화속에서 인간들이 겪어야 했던 대가를 보여주었던 ‘노동자들’, ‘이민자들’에 이어 완성된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3번째 장기 글로벌 이슈 프로젝트이다. 이번 전시는 살가두가 2004년부터 8년 동안 갈라파고스, 알래스카, 사헬 사막 등 전 세계 120여 개국을 돌며 기록한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지구의 가장 순수하고도 웅장한 모습을 담은 사진 작품 245점과 3D 체험 제작물, 살가두의 소품들로 채워진다. 파리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촬영은 매번 수주일이 소요되었으며, 모진 더위와 추운 지역에서의 힘겨운 도보 이동은 물론 경비행기, 헬리콥터, 항해용 선박과 카누도 동원했다. 2004년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2011년에 완성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살가두는 기생충을 막기 위해 수염과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렸으며, 안면 신경마비 증상까지 이겨내 감동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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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를 향해

   제네시스(GENESIS)는 살가두의 개인적 삶 중 두 가지 에피소드에서 태어난 프로젝트다. 1990년대 말, 그의 아버지는 그와 그의 아내 레일리아에게 소 목장을 주었다. 그 목장은 지금은 69세인 살가두가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그 시절의 그 곳은 ‘절반 이상이 우림으로 뒤덮인 완벽한 낙원’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우리에겐 믿기지 않는 새들과, 재규어, 악어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수십년 간의 벌채로 인해, 그 땅은 생태학적으로 재앙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의 농장뿐 아니라, 모든 지역이 그랬습니다. 침식으로 인해 물이 사라진, 죽어버린 땅이었습니다.”

  1999년, 살가두는 6년간의 사진 연대기인 ‘이주(Migrations)’ 프로젝트를 마쳐가는 중이었다. ‘이주(Migrations)’는 기근과 전쟁, 구직으로 인해 세계로 풀려버린 인류의 흐름을 실은 사진적 연대기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를 망명자 캠프, 전쟁지역으로 이끌었으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치게 만들었다. “나는 수많은 야만성을 목격해왔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지요.”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 종(인류)의 생존을 믿지 않습니다.”

  참혹한 현실에 지친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그의 브라질 낙원을 회복시키기 위해 살가두와 그의 아내는 가족의 땅에 숲을 재조성했다. 이제 그곳의 나무들은 200만 그루가 넘는다. 많은 새들과 야생동물들이 돌아와 그 지역은 자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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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두의 대단한 여정

   살가두는 자신의 개인적인 세계가 재생되자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다음 프로젝트로 오염되지 않은 지역, 환경적 기억 저장소이면서 동시에 원시시대 지구의 영광을 지닌 땅을 가자고 말이다. 살가두가 결정한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파괴된 것을 찍는 것이 아닌, 아직도 그대로인 것을 찍을 겁니다. 우리가 잡고 지켜내야 할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는 희망적인 통계자료를 인용하기를 좋아했다. “우리 행성의 45%는 아직 처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제네시스(GENESIS) 프로젝트 초창기인 2004년, 살가두는 칼라하리 사막, 인도네시아의 정글과 갈라파고스 섬이나 마다가스카르처럼 다양한 생물이 사는 곳을 찾아 32번의 여행을 했다. 아프리카에선 열기구를 타고 물소 떼의 주위를 맴돌았다.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탄다면 그들에게 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유목민인 네네츠 족들과 시베리아를 횡단하기도 했다. 네네츠 족은 매해 순록으로 수백 마일을 이동한다. “난 그들로부터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운반할 수 없는 것을 주면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런가 하면 살가두는 포클랜드 섬에서 떠오르는 엄청나게 많은 거대한 알바트로스 떼를 보았고, 샌드위치 제도에서는 ‘펭귄의 낙원’을 발견했다. 그는 그 곳들을 “세계의 끝에 놓인 섬들, 혹은 브라질에서 말하는 것처럼 ‘바람이 다녀가는 곳’”라고 말한다.

  살가두가 다녀온 천국은 위험에 놓여 있지만, 아직은 잃어버리지 않은 곳이다. 그의 사진들은 간신히 남아있는 잃어버린 세상의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인류가 어떤 위험에 빠져 있는지, 그리고 이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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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의 다큐 사진가, 세바스치앙 살가두

   살가두(1944~ )는 브라질 미나스 제라이스 주에서 작은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상파울로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과정 수료 뒤 런던 국제커피기구에서 일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방문해 커다란 영감을 얻어 29세에 고액 연봉의 국제커피기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사진가로 전업한다. 몇 달씩 피사체와 동고동락하며 사진을 찍는 작업 방식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여전히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사진집 <다른 아메리카> <불확실한 은총> <인간의 손> <엑소더스> <아프리카> 등이다. 시그마에이전시, 감마에이전시, 매그넘에이전시를 거쳤고, 1994년에 아내 렐리아 와닉 살가두와 아마조나스이미지스를 설립했다. 이 부부는 인스티튜트 테라를 설립해 브라질 숲을 살리는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