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이모저모
횡단/ 이수명
금동원(琴東媛)
2019. 7. 27. 13:27
『횡단』- 이수명 시론집
이수명/ 문예중앙
이수명은 한국 시단에서 가장 유니크한 자의식으로 시와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를 수행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하고, 2004년 네 번째 시집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를 출간한 중견시인으로서 시론집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현대시작품상(2011) 심사위원들은, 이수명 시인이야말로 한국 시단에서 가장 독특하고 개성적인 시문법으로 작품 활동을 벌여왔다고 말한다.
책에서 저자는 현역 시단에 머무르고 있는 시인답게「미래파를 위하여」편에서는 황병승, 김행숙, 김민정, 이민하, 장석원 등의 시를 대상으로, ‘비주류로 주체의 대이동’, ‘가족을 대결의 주제로 설정’, ‘중심(주류)로부터의 탈주’ 등으로 대표되는 미래파의 시적 특징을 읽어내고 있으며, 미래파에 대한 깊은 관심과 더불어 한편으로, "미래파는 너무 늦게 문화 운동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담고 있다
○작가 소개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를 수료했다. 현재 시인과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불은 담장의 커브』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낭만주의』, 『라캉』, 『데리다』 등이 있다. 2001년 제2회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1. 「시론 1」 중에서
시가 어디서 왔고 어디서 오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것은 시인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설사 그가 안다 해도 그가 아는 것은 극히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시는 혼돈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시가 혼돈 속에서 태어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혼돈을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 상관없이 그 완성물이 아름답고 정연하여, 혼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시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짜여 있거나 정연한 아름다움을 지닌 시도 그 미덕은 혼돈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다. 시가 그 위에 서 있는 혼돈이라는 성채는 시의 힘이다. 질서가 아니라 혼돈이 힘이다. 혼돈의 질서가 힘이다. 한 편의 시 속에 담긴 혼돈의 내력이야말로 분명 시를 압도적이게 만드는 힘이 된다. 우리가 시에 빠지는 것은 그 시의 위대한 질서를 만들어낸 혼돈의 크기인 까닭이다. 우리는 이 혼돈으로부터 예기치 못하게 상승하는 것이다. 영혼은 언제나 자신의 궤도를 벗어나 보다 큰 궤도에 진입하기 바라며, 이 과정은 혼돈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정신을 교란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시는 우리들 스스로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시가 어디서 왔고 어디서 오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것은 시인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설사 그가 안다 해도 그가 아는 것은 극히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시는 혼돈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시가 혼돈 속에서 태어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혼돈을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 상관없이 그 완성물이 아름답고 정연하여, 혼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시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짜여 있거나 정연한 아름다움을 지닌 시도 그 미덕은 혼돈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다. 시가 그 위에 서 있는 혼돈이라는 성채는 시의 힘이다. 질서가 아니라 혼돈이 힘이다. 혼돈의 질서가 힘이다. 한 편의 시 속에 담긴 혼돈의 내력이야말로 분명 시를 압도적이게 만드는 힘이 된다. 우리가 시에 빠지는 것은 그 시의 위대한 질서를 만들어낸 혼돈의 크기인 까닭이다. 우리는 이 혼돈으로부터 예기치 못하게 상승하는 것이다. 영혼은 언제나 자신의 궤도를 벗어나 보다 큰 궤도에 진입하기 바라며, 이 과정은 혼돈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정신을 교란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시는 우리들 스스로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가 되게 하는 것이다.
---p.24
2. 「시론 1」 중에서
상상력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무를 만드는 것이다. 상상력은 형태를 건조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에 낯설어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멀어지려고 하고, 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 힘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시들은 때로 상상력을 불필요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르네 샤르는 ??매혹적인, 우리는 그 새에 경탄하고 그 새를 죽인다.??라고 썼다. 이 단도직입적인 진술은 새에 대한 상상력을 제압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이 새는 이를테면, 우리에게 날아온 새가 아니다. 샤르는 새로운 새를 만들어내지 않고 우리 가운데 있는 새를 불러내고 있다. 불러내 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을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것, 이것은 상상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p.30
3. 「시론 2」 중에서
시인
시인은 덫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 덫에는 자신만이 걸려든다. 시를 썼을 때 그는 그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펜을 잡고 언어와 씨름하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이 쓰고 있는 시가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어떤 시에 근접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 접근이 용이치 않아 불만족스러울 때는 덫이 옥죄어들고, 어느 순간 갑자기 폭발하듯 언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 그는 그 덫에서 해방됨을 느낀다. 한 편의 완성된 시 앞에서 시인이 느끼는 감정은 사실 이 해방감 외에는 없다. 그는 해방되기 위해 쓰고 또 쓰는 것이다. ---p.37
결국 우리가 한 편의 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의 것은 없다. 그리고 한 편의 미지를 얻는 것은 한 편의 우주를 얻는 것과 같다. 그 한 편 한 편의 우주는 시를 통하여 끊임없이 우리의 세계에 편입해왔다. 이것은 세계를 확장하는 가장 숭고한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무한한 것으로 만드는 가장 즐거운 일이다. 시는 존재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 특별한 임무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시가 있음으로써 우리는 미지와 우주와 무한의, 동행이 된 것이다.
---p.47
4. 「1950년대 초현실주의의 운명」중에서
김구용 시가 자아 부재의 확인과 무아로 전개되는 양상은 그의 진아 찾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것이 이상 시의 주소로 그를 포괄할 수 없는 점일 것이다. 이상 시에서 주체의 분열이 시간이 사라진 현재형으로 영원히 진행된다면, 김구용의 주체의 소멸은 다음 국면으로의 전환을 야기하는 존재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김구용의 작업을 두고 “모더니즘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 모두는) 모더니즘의 초극”이라고 한 김윤식의 지적은 다시 한 번 적절하다. 우리 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을, 그중에서도 초현실주의를 과격하게 극화시키고 스스로 이를 붕괴시킨 최초의 예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초현실주의는 이후 간헐적으로 우리 시사에 등장하지만 김구용의 격렬한 탐사를 받던 위용에는 이르지 못한다. 초현실주의는 김구용에게서 독특하게 1950년대적 고유성으로 존재할 수 있었으며, 그의 파괴적 실험에 의해 운명을 다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0년대 이후 그것은 이제 창조적 전진이 아니라 보통 명사화되어 모방되고 복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pp.98~99
5. 「비로소 모든 뚜껑을 열고」 중에서
2000년대에도 그러했지만, 다가올 2010년대의 시인들의 작업은 아마도 이와 같은 위기를 스스로 부각시키는 가운데 필사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자신의 시가 새로움이라는 낙후됨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놓여질 수 있다는 위기감 말이다. 더욱이 ‘문학 자체가 문화의 아웃사이더가 된 시대’(보토 슈트라우스, 『커플들, 행인들』)에 비대해진 부정의 육체가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겹쳐진다. 문학은 점점 주변화되고 문화의 변방이 되어 가는데, 아니 더 비관적으로 말해 침몰해가는 배와 같이 되어 가는데, 이 기울어가는 배에서 부정은 예봉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 것인가. 역설적이지만 이렇게 앞뒤로 곤란하기에, 우리는 젊은 시인들을 바라보고 시의 진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자신의 비대해진 육체를 의심하면서, 스스로를 탈피하는 형식의 모색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부정은 보다 과감하게 도전하고 도전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자문과 함께 각자의 모험이 충분히 공허한 공전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pp.163~164
6. 「책머리에」 중에서
시에 대한 사유와 읽기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여러 지대를 횡단했다. 시의 불가능과 현대시의 불가피함 사이를, 첨예화되는 감각과 변전하는 도모 한가운데를, 문학의 발생과 전환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길이 없는 곳에서 횡단하고 있었다는 고백을 해야만 한다. 이 횡단은 문학의 횡선, 횡보, 선회, 횡렬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실마리를 상상하고 그것을 뭉쳐 있는 실타래 속으로 되돌리곤 하였다. 실타래를 건드리게 되는 것, 이것이 횡단의 한 의미일 수 있을 것이다.
---p.8
○출판사 리뷰
이 책은 「횡단」, 「횡선」, 「횡보」, 「선회」, 「횡렬」의 총 다섯 개의 부(部)로 나뉘어진다. 제1부 「횡단」은 시론, 이미지, 상징, 시간과 공간, 시의 언어 등에 대해 탐문하는, 시에 대한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제2부 「횡선」은 김구용과 1950년대의 의미, 미래파나 최근 시인들의 시를 통해 2000년대 문학을 진단하고, 함께 한국의 아방가르드 시사를 계보화하여 그 성격을 해설하는 문학사적인 조망을 그려냈다. 제3부 「횡보」는 시인론으로 시인들의 시집 한 권을 통해 각각의 시집에서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았고, 제4부 「선회」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시인의 시세계를 밝혀보는 작품론이다. 제5부 「횡렬」은 마그리트, 브네, 뒤샹 등 현대 예술에서 각별한 한 세계를 이루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조명하는 예술론을 담고 있다.
이수명 시인은 이 책을 통해 "시란 무엇인가? 하는 다소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현금의 시들에 나타나는 다양한 징후들을 조감해보고 그 위상을 맥락 속에서 가늠하여 이후의 시들을 전망해보는 폭넓은 자리"(「책머리에」중에서)를 마련하고자 했다.
언어의 불투명함으로 세계의 두께를 읽다 … 시와 언어에 대한 본질적 탐구
“시는 언어이면서, 언어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시는 현실에 대한 것도, 비현실에 대한 것도, 꿈도 이상도 들려주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나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재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말하는 행위가 우리에게 가까스로 제공해주는 이해와 오해의 만남 같은 것들을, 그 시끄러운 욕망을, 욕망의 피로를 시는 알지 못한다. 시는 다른 곳에 존재한다. 시의 언어는 이야기하거나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횡단』, 41쪽
이수명 시인은 이 책의 제1부 「횡단」에서 ‘시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자각적인 탐색을 선보인다. 시인은 시론, 이미지, 상징, 시간과 공간, 시의 언어 등에 대한 이러저러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 중심에는 시인만의 ‘언어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이 담겨 있다. 권혁웅 시인은 “지난 15년 동안 이수명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국시의 첨단 가운데 한 지점을 탐색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이수명은 언어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으로 시와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를 수행해왔다. 시인이 보기에 투명한 언어, 의사소통의 단순한 매개체로서의 언어란 불가능한 언어다. 시는 언어 바깥에는 없으며, 언어는 그 불투명함을 통해서 대상에 이르는 불가능한 거리를 가시화한다. 역설적으로 대상과의 ‘만날 수 없음’이 세계의 윤곽을 만들어낸다.”며 이수명의 유니크한 시세계를 추천하고 있다.
1부 중에서 특히 「말한다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 「시론 1」, 「시론 2」 등은 ‘시와 시론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의 토대’, ‘이미지 혹은 말’, ‘운율’, ‘시인’, ‘현대시’ 등에 이르기까지 시문학에 얽힌 여러 가지 단상을 아포리즘 형식의 감각적인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김구용, 한국 아방가르드, 미래파, 그리고 2000년대 시의 분석과 전망
"김구용의 작업을 두고 "모더니즘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 모두는) 모더니즘의 초극"이라고 한 김윤식의 지적은 다시 한 번 적절하다. 우리 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을, 그중에서도 초현실주의를 과격하게 극화시키고 스스로 이를 붕괴시킨 최초의 예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초현실주의는 이후 간헐적으로 우리 시사에 등장하지만 김구용의 격렬한 탐사를 받던 위용에는 이르지 못한다. 초현실주의는 김구용에게서 독특하게 1950년대적 고유성으로 존재할 수 있었으며, 그의 파괴적 실험에 의해 운명을 다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0년대 이후 그것은 이제 창조적 전진이 아니라 보통 명사화되어 모방되고 복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횡단』, 99쪽
『김구용과 한국 현대시』라는 연구서를 펴낸 이수명 시인은 "김구용 연구"로도 시단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서도 「1950년 초현실주의의 운명」, 「한국 아방가르드 시의 계보에 대한 노트」, 「직선을 그을 수 있는 무한」의 세 편의 글에서 김구용 시세계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특히 「직선을 그을 수 있는 무한」은 김구용 시인의 산문집과 일기를 바탕으로 이수명이 창작해낸 "가상 인터뷰"로서 김구용 시인에 대한 시인만의 깊고 폭넓은 이해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제2부 「횡선」은 1950년대 김구용의 시와 한국 아방가르드 시사를 분석하고, 또한 최근 미래파 시인과 2000년대 시문학 작품들을 진단하였다. 먼저 1950년대 초현실주의와 관련하여, “김구용은 초현실주의 기법을 최대한으로 사용하여 초현실주의를 붕괴시키게 되는 역설에 이르게 된 것이다. 몽환적 주체가 소멸되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초현실주의의 강력한 내파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을 구술하는 주체가 소멸되는 것은 더 이상 무의식의 놀이를 계속할 수 없음을 뜻한다.”(『횡단』, 95쪽)고 말하며 1930년대 이상(李箱)의 초현실주의에서 더 나아가 이를 극한까지 몰고 간 김구용의 시세계를 파헤친다. 또한 「한국 아방가르드 시의 계보에 대한 노트」에서 이수명은 한국 아방가르드의 대표적인 시인들의 몇 가지 특징을 "정치성, 사회세력, 역사적/복제적, 예술사적"으로 구분하여 제시하는데, 한국의 경우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시인은 이상, 김구용”이며, 1950년대 김구용을 끝으로 역사성은 사라지고 이승훈, 황지우 등의 시인들이 복제적 성격의 아방가르드로 등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래파를 위하여」에서, 이수명 시인은 황병승, 김행숙, 김민정, 이민하, 장석원 등의 시를 대상으로, ‘비주류로 주체의 대이동’, ‘가족을 대결의 주제로 설정’, ‘중심(주류)로부터의 탈주’ 등으로 대표되는 미래파의 시적 특징을 읽어내고 있으며, 미래파에 대한 깊은 관심과 더불어 한편으로, "미래파는 너무 늦게 문화 운동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이런 느낌은 이들 문학의 새로움으로 이야기되는 것이―적어도 소재의 측면에서는――다른 장르들을 통해서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다는 당혹감으로 배가된다."(『횡단』, 120쪽)고 하고, 또한 "미래파가 파괴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모습의 가족인가? 가족은 이미 변모하고 있다. 현대의 가족이 지금 어디까지 붕괴되어 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가족의 변화가 아버지의 훼손이라는 일방통행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것이다."(『횡단』, 128쪽)고 말하며 몇 가지 우려 사항을 지적한다.
또 이수명은 미래파나 최근 시인들의 시를 통해 2000년대 시단을 진단하고 2010년대의 우리 시문학을 전망해본다. 이수명은 2000년대 시인들이 “장정일의 무위의 자아와 박상순의 거세된 자아가 공존하는 1990년대를 지내면서 후세대는 햄버거와 광고에 빠지기보다는 학교 주위를 빙빙 돌며 밖에서 배회하는 박상순의 단절된 자아에 밀착했다”(『횡단』, 143쪽),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아 이어 2000년대의 "역할을 꾸며보는 놀이"하는 시인들(황병승, 김민정, 김경주)의 시세계를 파헤친다. 그 외 시편들로 조연호와 김언 시인을 살펴보고, "부정의 힘"으로 다가올 2010년대 시단을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전봉건, 이승훈, 김춘수 그리고 마그리트, 브네, 뒤샹 … 시 작품과 예술 작품 해설
제3부 「횡단」과 제4부 「선회」는 각각 시인론과 작품론이다. 이수명 시인은 제3부에서 이승훈, 최승호, 홍신선, 김민정의 시집 한 권을 통해 그들의 시세계를 건축하고 있다. 그녀는 "대상이 된 시집들에서 진동하고 있는 시적 계기를 찾아 그것이 시인의 내력 속에서 운동하는 양상을 살펴보려 하였다"(『횡단』, 7쪽)고 말하며, 또한 제4부에서는 전봉건, 김춘수, 이성복, 이준규, 이영주, 김성대 등 시인의 한 편 시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얽혀 있는 감각과 인지의 불균형한 선회를 좇으면서 이것이 시의 가능성으로 전환하는 것에 주목하였다."(『횡단』, 7쪽)고 밝히고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파이프는 파이프로 확정된 순간에 이르지 못하며 따라서 파이프가 아니듯이, 이상(李箱)에게서 꽃나무는 꽃나무라는 순간에 도달할 수 없다. 열심히 꽃을 피우는 꽃나무의 행위만 있을 뿐이다. 꽃나무를 닮는 놀이를 이 꽃나무라는 존재, 이것은 꽃나무가 아니다. ―『횡단』, 311쪽
시론집 『횡단』에는 시인이나 평론가들 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러한 예술가와 예술 작품 이야기 속에는 시문학에 얽힌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또 그 이야기 속에서 해당 예술 작품들과 이수명 시인이 사유하는 시적 세계가 맞닿은 지점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제1부 「우리는, 투명한 자들은, 더 멀리 나아갈 것이다」에서도 이수명 시인은 "두 번째 시집에서 만약 내가 변했다면 그 원인으로 나는 서슴지 않고 쇼스타코비치를 꼽는다"(『횡단』, 102쪽)고 말하며 음악과 예술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를 반영하듯이, 이 책의 제5부 「횡렬」에는 마그리트, 브네, 뒤샹의 작품을 대상으로 "지난 시대와 날카롭게 단절하고 새로운 지형을 실험한 이들이 어떻게 예술사의 흐름을 바꾸었는지, 현대성이 이들에게서 어떻게 활성화되어나갔는지를 살펴보았다"(『횡단』, 8쪽)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