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이반 피셔는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 연주 무대로 아시아 중 유일하게 한국을 선택했다. 지난해 암스테르담에서 전곡 연주를 마쳤고, 이달 룩셈부르크를 거쳐 20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사진 빈체로]
‘베를린 필을 제친 오케스트라’. 네덜란드의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이하 RCO)에 2008년 붙은 별명이다. 영국 음악잡지 그라모폰의 설문조사 ‘세계 20대 오케스트라’ 결과였다. 미국·유럽의 평론가 11명은 RCO를 세계 1위 오케스트라로 꼽았다. 베를린 필, 빈 필, 런던 심포니가 뒤를 이었다.
RCO가 이달 20~23일 한국에 온다. 나흘 동안 베토벤 교향곡 9곡을 모두 연주한다. 함께 내한하는 지휘자 이반 피셔(64)에게 물었다. ‘RCO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가?’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최고의 기준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자”고 답했다.
피셔는 “아름다운 소리 면에서 최고를 꼽는다면 RCO가 맞다”고 했다. 하지만 최고의 기준을 ‘완벽함’으로 본다면 순위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완벽하고 철저한 연주를 하는 점에서는 미국 오케스트라가 1위에 올라야 할 것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진중한 오케스트라를 꼽으라면 베를린 필하모닉이다.”
헝가리 태생의 피셔는 25세에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암스테르담의 RCO뿐 아니라 베를린·뉴욕·보스턴·파리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전 세계의 일류 오케스트라가 그에게 40년 동안 객원 지휘봉을 맡겼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피셔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소리만큼은 RCO가 세계 최고다.”
◆소리의 비밀=무엇이 그 소리를 만들었을까. 피셔는 원인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단원들의 분위기와 전용 콘서트홀이다. 피셔는 “RCO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단원 각자는 소리가 전체에 얼마나 아름답게 섞여드는지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현악기나 관악기 중 어느 파트가 홀로 돋보이지 않는다. 전체가 잘 정돈돼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오케스트라 소리의 잘 잡힌 균형은 그런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
또 전용 콘서트홀은 RCO의 정체성과도 같다. 오케스트라 이름 중 ‘콘세르트허바우’는 네덜란드어로 콘서트홀이다. 암스테르담의 공연장 ‘로열콘세르트허바우’가 1888년 4월 생겼고, 7개월 뒤 RCO가 공연장 전속 오케스트라로 창단했다. 이 홀은 소리의 울림이 좋기로 유명하다. 오케스트라 사운드 또한 127년 동안 이 공연장에 맞춰 다듬어졌다.
◆“베토벤 연주는 영적 여행”=RCO는 현재 수장(首長)이 없는 상태다.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는 11년간 맡았던 음악감독직을 지난달 그만뒀다. 새로운 음악감독 다니엘레 가티는 내년 임기를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RCO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지휘자가 피셔다. 최근 몇 년 동안 매 시즌 객원 지휘를 맡았다. RCO와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2년 전 시작해 전집 음반을 내놨다.
피셔는 RCO의 베토벤 전곡 연주에 대해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은 청중이 다양한 감정을 순서대로 느끼도록 하는 목적으로 만들었다면, 베토벤은 청중을 다른 사람,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드는 것으로 교향곡의 목적을 바꿔놓았다”며 “이번 전곡 연주에서 베토벤만의 드라마틱한 성향을 이끌어내려 한다”고 밝혔다. 베토벤 교향곡 속에 담긴 고난과 싸우는 인간 정신의 좌절과 승리의 의미를 되새겨보겠다는 의미다. 그는 “그래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는 영적인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피셔와 RCO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는 20일 1·2·5번, 21일 3·4번, 22일 6·7번, 23일 8·9번의 순서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02-599-5743.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http://joongang.joins.com/article/753/17546753.html?ctg=
◆이반 피셔=1951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첼로로 음악을 시작해 76년 런던 러퍼트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지휘자로 데뷔. 유럽·미국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한창 주가가 높던 83년 헝가리로 돌아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림. 현재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
http://www.sac.or.kr/program/schedule/view.jsp?seq=21972&s_date=201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