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문화예술 이야기

피터르 클레즈 ‘바니타스 정물화’

금동원(琴東媛) 2015. 5. 19. 22:58

유경희의 아트살롱

피터르 클레즈 ‘바니타스 정물화’

 

피터르 클레즈(Pieter Claesz, c 1597-1660), <바니타스 정물화>, 1630년, 캔버스에 유채, 39.5x56cm,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헤이그. 인간의 지식을 뜻하는 낡은 책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아래 놓여 있다. 곧 굴러 떨어져 깨질 듯한 섬세한 유리잔과 방금 꺼진 촛불, 그리고 회중시계는 모두 유한한 인간 존재를 상기시키는 모티브들이다.

 

책과 해골, 헛되니 어쩌라구!

책 그림은 누구나 다 좋아한다. 그래서 화가들도 즐겨 그린다. 미술에선 이런 걸 소재주의라고 부른다. 호감 살 만한 소재로 가볍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말이다. 그런데 책 위에 해골이 놓여 있다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우리라면 거부했을 법한 이런 그림을 네덜란드인은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이런 그로테스크한 취향을 담은 네덜란드 정물화를 일컬어 바니타스(vanitas, 허무, 허영, 영어는 vanity)화라고 한다. 사실 모든 정물화는 바니타스를 의미한다. 특별히 바니타스 정물화(Vanitas still life)라고 명명할 때는 해골, 책, 골동품 등을 통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보다 직설적인 메시지를 드러내는 경우이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30년 전쟁 이후 1650~1660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그려진다. 30년 전쟁(1618~1648)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로마 가톨릭과 연합해 반종교개혁을 주창하며 스페인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 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이기고, 오라녜나사우(Oranje-Nassau) 왕가를 중심으로 한 신교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된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해골(죽음과 부패의 상징), 시계(얼마 남지 않은 시간, 절제의 상징), 꺼진 등잔과 촛불(시간의 필연적 경과, 죽음의 임박), 책(지식의 무용함) 등이 단골 고객으로 묘사된다. 때로 담배와 부싯돌이나 담배쌈지 같은 모티브들이 더해진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보편적인 모티브는 단연코 책과 해골이다.

중세 때 세계는 읽을 수 있는 책처럼 생각됐다. 또한 세계는 신의 의지가 실현되는 무대와도 같았다. 뿐만 아니라 책은 인류의 경험과 지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골 아래 놓인 낡은 책은 죽음 앞에서는 지식과 지혜도 결코 영원한 진리가 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사실은 사람들을 겁주고 위협하려고 ‘메멘토 모리’를 설파한 것이 아니다. 바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 즉 현재를 살라고, 이 순간을 즐기라고 일갈하는 거다.

--------------------------------------------------------------------------------------------------유경희 <10개의 테마로 만나는 아트 살롱> 저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과 예술론을 가르치는 한편, CEO를 위한 특강 등 대중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에 '유경희의 아트살롱'을 연재하고 있다.

'문화예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사이(Mousai)  (0) 2015.05.26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  (0) 2015.05.21
미샤 마이스키 (2015,9/2, 예술의 전당 )  (0) 2015.05.14
이사도라 던컨(1877- 1927)  (0) 2015.05.13
삶과 죽음의 경계를 그리다  (0) 2015.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