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rGStQNqXHA?list=PL9E57C3692BD1B5D3 (Mikis Theodorakis)
https://youtu.be/wk92Grq_-cA (조수미)
https://youtu.be/VldFeDDLiDQ (아그나 발차)
https://youtu.be/gMwxVdDFl_E?list=PL9E57C3692BD1B5D3 (마리아 파란두이)
마리아 파란두리
Maria Farandouri
그리스 에게 해 키클라데스 제도에 있는 미코노스 섬 전경. 하얀 색 집들로 둘러싸인 항구에 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영국 BBC방송 선정 꼭 가보아야 할 여행지 3위.
"자네 조상들이 나무를 탈 때, 우리 조상들은 철학을 논하고 있었어!"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서 그리스 혈통의 여주인공 아버지가 미국인 사위를 못마땅해하며 읊조리는 독백이다. 이렇게 그리스 사람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당연히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리스 문화는 서양 문화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연극, 스포츠를 비롯해 21세기 우리가 즐기고 있는 문화의 대부분은 그리스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서양식 음계는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화음론'에서 온 것이며 기타는 그리스 고대 악기 키타라에서 명칭을 따왔다. 이렇게 풍부한 그리스 음악의 전통은 현대 그리스 대중음악에도 이어져 왔고 월드뮤직으로도 그리스 음악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민중의 노래, 저항의 노래, 전통과 현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그리스 음악.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전통과 정서를 대변하는 가수로는 단연 마리아 파란두리가 꼽힌다.
마리아 파란두리는 1947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합창단에서 노래했는데, 16살 때 한 공연장에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만난 그녀는 이후 ‘완벽한 테오도라키스 음악의 해석’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페르소나,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그리스의 국민가수, 마리아 파란두리. “나에게 있어 마리아는 그리스 그 자체다. 강렬하며 순수하고 긴장감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는 헤라 여신을 연상케 한다”라고 극찬한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녀의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서 그리스 정신을 느낄 수 있다.
1967년 4월 21일 새벽, 그리스는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군사정권은 비틀즈를 비롯한 서양음악과 축구, 미니스커트, 심지어는 그리스 남성의 상징인 콧수염을 기르는 것까지 금지할 정도로 모든 자유를 억압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가혹한 군부의 탄압으로 예술가들은 설 곳을 잃었고, 타의로 자의로 조국을 떠났다.
마리아 파란두리 역시 테오도라키스의 투옥에 항거하다 국외로 추방된 후, 유럽과 전 세계를 떠돌며 갈 수 없는 조국에 대한 동경, 독재에 대한 항거를 노래했다. 1975년, 7년간의 군부독재가 종식되자 귀국 음악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렸는데 그 제일 중심의 가수는 마리아 파란두리였다. 이후 그녀는 그리스 민속음악과 다른 장르의 결합을 시도하는 한편, 역사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는 터키와의 평화를 위해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행보는 결합과 평화로 향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르죠. 그러나 저는 과거의 일들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작품의 바탕은 다 과거에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은 한 나라의 영혼이고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음악의 초상이고, 저는 단적으로 그런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게 있어 음악은 아주 중요합니다. 가족처럼 말이죠. 음악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기도하면서, 국경일에도 늘 노래를 해왔습니다. 저는 자유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스 자유의 상징’이라는 영예가 아깝지 않은 마리아 파란두리의 말이다.
한때 그리스의 반체제 작곡가였던 미키스 테오토라키스는 1925년 지금은 터키 땅이 된 소아시아의 키오스 섬에서 태어났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 중 우리에게 널리 잘 알려진 것은 '그리스 문화의 대모' 멜리나 메르쿠리(1925~1994)가 주연한 <페드라>(Phaedra_죽어도 좋아)와 앤서니 퀸이 주연한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의 영화음악이다.
청년 레지스탕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작곡한 ‘To treno fevgi stis okto’(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그의 작품의 단편에 지나지 않으며 1,000여 곡이 넘는 민중가곡 외에도 교향곡 7곡, 2곡의 발레곡, 2곡의 대작 오라토리오, 4개의 오페라 등 정통 클래식 작곡가로도 많은 작품을 썼다. 그의 클래식 작품은 쇼스타코비치와 파블로 카잘스로부터 인정받은 바 있다.
민주주의의 본원이면서도 현대에 들어와 치열한 내전과 무자비한 폭력, 군부독재를 경험한 그리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우면서 자신의 조국 그리스의 민주화와 억압받는 민중의 삶을 위로하는 음악을 작곡했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우리 가슴에 깊이 와 닿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지 않을까
Mikis Theodorakis - Zorba (live, 2001)- 그리스 크레타섬 실황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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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andermi.. /Maria Farandouri 지중해의 존 바에즈 라는 찬사를 받는 그리스 최고의 여성싱어 Maria Farantouri... pandermi[I] 는 파란두리의 음색이 절절이 묻어나는 대표적인 곡입니다 투쟁과 저항의 노래가 그리스의 오랜 피지배의 恨과 결합되어 비장한 슬픔이 감돕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존 윌리엄스와 함께 한 그리스의 여가수 마리아 파란두리(Maria Farandouri)가 부른 '판데르 미 (I Pandermi)' 라는 노래입니다.... 절대 고독의 고통! 숨겨진 강바닥과 같은 아득한 새벽과도 같은 고통이여!
'I Pandermi'는 20세기 최고의 스페인 시인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에 그리스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곡을 붙였고 기타의 거장 존 윌리엄스의 반주로 마리아 파란두리가 노래했다. 이 노래는 1967년 군사 쿠데타 한 달 전에 발표됐다.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인 1936년 38세의 나이로 프랑코 총통 측의 민병대에 카프카의 소설에서처럼 ‘개처럼’ 끌려가서 어느 나무 밑에서 총살당했다. 폭력과 압제에 항거하는 상징적인 노래.. . I Pandermi/ 마리아 파란두리(노래)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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