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문화예술 이야기

헤세와 그림들 展 (5/2~11/1), 용산 전쟁기념관

금동원(琴東媛) 2015. 6. 15. 00:02

 

미술을 통한 힐링타임-헤세와그림들전 소개

 

 

헤르만 헤세는 음악과 미술을 사랑했고, 평화와 자유와 사람을 사랑한 문학가이자 예술가이고 이번 전시는 그가 남긴 수많은 그림들을 재해석하여 따뜻함과 휴식을 통한 감성 회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되었다. 특히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으로는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이 있으며, 이러한 대표작과 관련된 채색화, 초판본, 사진, 유품 등 영국 로이드 보험사 가치 평가 추정액 1,000억 상당의 작품 중, 5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로, 관객에게 역사적인 감동을 선사해줄 것이다.

이 전시는 배우 김수로 프로젝트_전시 Part 1<헤세와 그림들 展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으로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 전시실에서 11월 1일까지 만나 볼 수 있다. 단, 8월 말까지는 헤르만 헤세의 봄과 여름 힐링 버전이 전시되며, 9월초부터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헤세의 가을이라는 컨셉으로 힐링의 버전이 조금씩 변경될 예정이므로 8월말까지 진행되는 헤세의 예술 세계를 통한 봄과 여름을 만끽하려면 관람을 서두르는 것도 좋을 법하다.

 

 

194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서, 그의 주요 주제는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을 찾기 위해 문명의 기존 양식들을 벗어나 인간을 다루고 있다. 자기 인식을 호소하고 동양의 신비주의를 찬양했으며, 사후에 영어권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헤세동양에 선교사로 있었던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으로 마울브론신학대학에 입학했다. 모범생이었지만 적응할 수 없었던 그는 칼프 탑시계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있었고 후에는 튀빙겐 서점에서 일했다. 갑갑한 전통학교에 대한 그의 혐오는 지나치게 근면한 학생이 자기 파멸에 이르는 내용의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 Unterm Rad〉(1906)에 잘 나타나 있다. 1904년까지 서점 점원으로 일했고 그해 자유 기고가가 되었으며, 실패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극복하는 작가에 관한 〈페터 카멘친트 Peter Camenzind〉라는 첫 소설을 발표했다. 예술가의 내면과 외면의 탐구는 〈게르트루트 Gertrud〉(1910)·〈로스할데 Rosshalde〉(1914)에서 계속되었다. 이즈음 인도를 방문했고 후에 석가모니의 초기 생애를 그린 서정 소설 〈싯다르타 Siddhartha〉(1922)에 반영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는 중립국 스위스에 살면서 군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배격하고 독일의 전쟁 포로들과 수용자들을 위한 잡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1919년 스위스의 영주권을 얻었고 1923년 그곳 시민이 되어 몬타뇰라에 정착했다.

 

인간의 위기에 대한 심오한 감성을 지닌 작가로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 J. B. 랑과 함께 정신분석을 연구했으며 융과도 알게 되었다. 분석의 영향이 〈데미안 Demian〉(1919)에 나타나는데, 이 소설은 고뇌하는 청년의 자기인식 과정을 고찰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곤경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는 유명해졌다. 그의 후기 작품은 그가 융의 개념인 내향성과 외향성, 집단 무의식, 이상주의 및 상징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후기 문학 활동은 인간 본성의 이중성에 몰두했다. 〈황야의 이리 Der Steppenwolf〉(1927)에서는 중년 남자의 유산계급 수용과 정신적인 자기실현 사이의 갈등이 묘사되었다. 〈지와 사랑 Narziss und Goldmund〉(1930)에서는 기존 종교에 만족하는 지적인 금욕주의자와 자기자신의 구원 형태를 추구하는 예술적 관능주의자를 대비시켰다. 그의 최후의 최장편 소설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1943)에서는 극도의 재능있는 지식인을 통해 사변적인 삶과 적극적인 삶의 이중성을 탐구했다.(브리태니커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