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 1942.~)
브라질의 작곡가, 가수, 기타 연주가, 작가, 정치 운동가로 브라질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널리 인기를 누렸다. 그래미상을 두 차례, 라틴 그래미상을 아홉 차례 수상한 브라질의 '국민가수'로 불린다.
https://youtu.be/SMvZNEt424g?list=RDIZB3bh3eMew(Besame mucho)
https://youtu.be/rM4KT2lVdpY(So In Love )
https://youtu.be/IZB3bh3eMew?list=RDIZB3bh3eMew (
cucurrucucu paloma en vivo )
1942년 브라질 북동쪽 바이아 주의 산투 아마루 다 푸리피카상(Santo Amaro da Purificação)시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카에타누 이마누에우 비아나 텔리스 벨로주(Caetano Emanuel Viana Telles Veloso)다. 유년시절 문학, 영화제작, 음악 등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보사노바 음악과 보사노바의 대부로 불리는 조앙 지우베르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0대 시절 대학생 신분으로 바이아 주의 주도인 사우바도르(Salvador)로 가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1965년 중반 리우데자네이루로 진출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에 진출한 직후 가사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고 음반제약사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1967년 갈 코스타(Gal Costa)와 함께 만든 데뷔 앨범 『도밍고(Domingo)』가 출시되었다. 동시에 1967년 초반부터 역시 음악가인 동생 마리아 베타니아(Maria Bethânia), 미우통 나시멘투(Milton Nascimento), 지우베르투 질(Gilberto Gil) 등과 함께 팝과 아방가르드를 혼합하고, 브라질 전통 문화에 외국 문화의 영향을 결합한 독특한 음악을 표방한 트로피칼리즈무(Tropicalismo) 운동을 시작하여 1968년 공동 앨범 『트로피칼리아(Tropicalia)』를 내놓았다. 당시 앨범에 1964년 군부 쿠데타와 독재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 군부의 요주의 감시 대상이 되었고 동료 지우베르투 질과 함께 체포되어 잠시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후 벨로주와 지우베르투 질은 2년 간 런던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1972년 브라질로 돌아왔다.
귀국 이후 해외의 여러 음악 양식과 브라질 민속 음악 양식 및 리듬을 섞은 음악을 주로 발표하였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해외, 특히 이스라엘, 그리스, 포르투갈, 프랑스, 아프리카 등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1993년 트로피칼리즈무 운동 25주년을 기념해 『트로피칼리아(2 Tropicalia 2)』 앨범을 내놓았다. 아이티와 브라질의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아이티(Haiti)」라는 수록곡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감독의 『에로스(Eros)』,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óvar) 감독의 『그녀에게(Hable con ella)』, 『프리다(Frida)』 등의 사운드트랙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벨로주는 2015년 현재 그래미상을 두 차례, 라틴 그래미상을 아홉 차례 수상한 브라질의 '국민가수'이다.
영미권의 감상자에게 카에타누 벨로수를 설명하려다 보면 브라이언 윌슨과 스티비 원더, 밥 딜런과 시드 바렛, 존 레논과 밥 말리를 멋들어지게 혼합한 존재가 떠오른다. 사실상 영어권 팝 음악계에는 벨로수와 같은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데, 벡과 커트 코베인, 데이빗 번 같은 인물이 그를 숭배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양성적이고 지적이며 불손하면서도 당당한 그는 축구장을 가득 메운 청중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상한 음악을 들려준다. 이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은 1960년대 말 브라질에서 일어난 교묘하게 선동적인 팝아트 운동 ‘트로피칼리아’의 형성에 핵심적인 텍스트다. 벨로수는 비틀즈의 ‘네오록’에 브라질 문화 특유의 반응으로 도전장을 내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좌파 시인과 화가, 극작가, 영화감독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했다.
그의 음악은 사이키델릭 로커가 연주하고 클래식 작곡가가 오케스트레이션을 맡고 관악편성과 바로크 보컬 하모니가 곁들여진 보사노바라고 할 수 있다. ‘Clarice’의 울렁이는 사이키델릭 록과 ‘Clara’의 복잡한 코드 변화, 체 게바라에게 바치는 ‘Soy Loco Por Ti, America’의 쾌활함까지 음악 자체도 굉장했지만, 포르투갈어를 한 마디도 모르는 사람도 벨로수의 ‘구체시(具體詩)’ 가사에 흥미를 느꼈다. 브라질의 10대들은 그의 음악을 사랑했지만 당시 군부독재 수뇌부는 그를 싫어했다. 벨로수는 2년 후 브라질을 떠나 런던으로 망명했는데, 그 사건은 전설적인 음악인으로 입지를 다지고 멋진 음악세계를 계속 전개하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Caetano Veloso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2006. 8. 21.,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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