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드 그리그(Edvard Grieg)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민족주의 음악가이다. 북유럽 특유의 정서를 서정적인 멜로디로 아름답게 그려 '북구의 쇼팽'으로 불린다. 〈피아노 협주곡〉, 극음악 〈페르 귄트〉 등이 있다.
○에드바르드 그리그
에드바르드 그리그는 1843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태어났다. 6살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2살 때 처음으로 작곡을 했다. 15살 때 베르겐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의 추천으로 독일의 음악 명문 라이프치히 음악원으로 유학을 갔다.
1862년, 공부를 마친 그리그는 고향 베르겐으로 돌아와 귀국 독주회를 연 후 음악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베르겐은 문화적으로 매우 낙후된 곳이었다. 그래서 1863년, 문화예술의 고장인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갔다. 여기서 그리그는 많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노르웨이 국가를 작곡한 리카르드 노르드락이었다. 노르드락으로 인해 그리그는 난생 처음 고국의 민요와 웅대한 자연의 위대함에 눈뜨게 되었다. 두 사람은 오이테르페(Euterpe)라는 그룹을 만들고, 북유럽의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주하고 소개했다.
1867년, 그리그는 사촌인 니나와 결혼했다. 그리고 이해에 오슬로 필하모닉의 지휘자이자 음악원 부원장으로 취임했다. 니나는 실력 있는 성악가였지만 결혼한 후 성악가로서의 삶을 포기했다. 가끔 연주회를 열기는 했지만, 가정주부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그리그는 자신이 아내가 세계적인 성악가로서 이름을 떨칠 기회를 박탈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전에는 그녀의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지 못했다. 나의 가곡을 그녀만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영혼 저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을 가지고 말하듯이 부를 수 있는 성악가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1870년, 그리그는 리스트의 초청을 받고 이탈리아로 갔다. 이때 리스트에게 피아노 협주곡의 악보를 보여 주었다. 리스트는 이 곡의 장대한 스케일과 뛰어난 색채감에 매료되어 "이 곡이야말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혼이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875년부터 결혼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개성이 강한 두 사람은 자주 다투었다. 그리그는 니나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자주 우울감에 빠졌다. 1877년부터는 도시를 떠나 노르웨이 서쪽 산악 지방에 자주 머물렀는데, 이로 인해 니나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리그는 그 지역 사람들의 사투리와 민요, 악기, 춤곡에 깊이 매료되어 노르웨이 사투리를 가사로 한 〈12개의 선율〉을 작곡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그는 1880년, 베르겐 하모니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부임했다. 여기서 2년 동안 일한 후 1883년 니나를 노르웨이에 두고 독일로 여행을 떠났다. 이때 그리그는 결혼 생활을 포함한 자신의 삶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이듬해에 니나가 독일로 그리그를 만나러 왔다.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그리그와 함께 연주회를 열었다. 이때 그리그는 자신이 현실을 잘 보지 못하고 병약했으며, 자유를 찾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렇게 화해한 두 사람은 1885년, 베르겐 근교의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집을 짓고 그곳에 들어가 살았다.
1894년,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터졌다. 프랑스 육군의 포병대위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라는 유대인이 간첩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건이었다. 나중에 진범이 밝혀졌으나 장교들은 자기들의 실수를 덮으려고 사건을 은폐했다. 그러자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로로르〉라는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고 시작하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게재했다.
그리그 역시 에밀 졸라의 생각에 동조했다. 1899년 콜론 오케스트라의 초청을 받았을 때 그는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프랑스의 정의롭지 못한 처사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초청을 거절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신문에도 자기 생각을 밝히는 글을 실었다. 이 일로 수입이 줄어들고 친구들이 등을 돌렸다. 1903년에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는 경호원을 대동해야 할 정도였다.
1907년, 그리그는 영국에서 열리는 리즈 페스티벌에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출발 전날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인 9월 4일,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그의 음악은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작곡 기법의 측면에서 보자면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가깝다. 하지만 낭만주의의 서정성 위에 노르웨이 특유의 향토색을 입혔다는 점에서 민족주의 음악가로 분류된다. 멜로디는 민속적인 소재에서 왔지만 독창적인 화음과 대담한 조바꿈으로 웅장하고 그늘진 북구의 정서를 그려 냈다.
그 자신이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그리그는 피아노곡을 많이 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은 1868년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 in A minor Op.16)〉이다. 1악장은 팀파니가 크레셴도로 발 구르는 소리를 내면 피아노가 높은 곳에서 양손으로 옥타브를 치면서 격정적으로 하강하는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그 후에 민요풍의 멜로디와 낭만적인 멜로디의 1주제, 노래하듯 서정적인 2주제가 제시된 다음 다양하게 발전해 나간다. 2악장은 느린 템포로 피아노 선율이 바위틈을 따라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처럼 곡선을 그리며 밑으로 떨어진다. 3악장에서는 향토색 짙은 멜로디가 격렬하고 힘차게 연주된다. 피날레에서 도입부에 나왔던 모티브가 다시 나온다.
관현악곡으로는 피아노 소품을 모아 놓은 〈서정 소곡집(Lycir Pieces)〉 중에서 네 개를 뽑아 이것을 관현악용으로 편곡한 〈노르웨이 춤곡집(Norwegian Dances Op.35)〉을 비롯해 〈두 개의 슬픈 선율(2 Elegiac Melodies Op.34)〉, 모음곡 〈홀베어의 시대에서(Holberg Suite Op.40 'From Holberg's Time')〉, 극음악 〈페르 귄트(Peer Gynt)〉 등이 있다.
이 중 〈페르 귄트〉는 그리그가 1874년 초,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의 부탁을 받고 연극 공연을 위해서 작곡한 것이다. 줄거리는 페르 귄트라는 주인공이 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방랑하다가 돌아와 사랑하는 여인의 품 안에서 죽는다는 것이다. 4막 전주곡인 〈아침 기분〉은 플루트가 새벽빛이 떠오르는 조용한 모로코 해안의 아침 분위기를 목가풍으로 노래한 것이다. 〈오제의 죽음〉은 페르 귄트의 어머니 오제가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연주되는데, 약음기를 단 현악기가 어둡고 극적인 화음의 주제를 반복해서 연주한다. 〈아니트라의 춤〉은 아라비아 추장의 딸 아니트라가 춤을 출 때 나오는데, 현악기와 트라이앵글이 연주하는 아라비아풍의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다. 〈산신의 전당에서〉는 산속 마왕의 궁전이 나오는 2막에서 막이 오르기 전부터 연주하는 행진곡이다. 〈아라비아 춤〉은 4막에서 소녀들이 아라비아 추장 앞에서 춤을 추는 동양풍의 경쾌하고 활기찬 춤곡이다. 〈솔베이그의 노래〉는 〈페르 귄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솔베이그가 페르 귄트를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이다. 음악은 솔베이그가 죽어 가는 페르 귄트를 안고 부르는 〈자장가〉로 끝난다.
1884년에 발표한 피아노 모음곡 〈홀베어의 시대에서〉는 덴마크와 노르웨이 문학의 창시자 홀베어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다. 홀베어가 살았던 시대의 음악 양식을 사용했는데, 옛 모음곡 양식이지만 19세기의 음악어법을 가미해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제1곡 〈전주곡〉은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두 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제2곡 〈사라반드〉는 느린 춤곡이며, 제3곡 〈가보트〉는 3박자의 귀여운 춤곡, 제4곡 〈아리아〉는 서정적인 노래, 5곡 〈리고동〉은 생기발랄한 춤곡이다. 그리그는 이 곡을 이듬해에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극음악 〈십자군 병사 지구르트〉, 관현악 〈두 개의 노르웨이 선율〉, 〈교향적 춤곡집〉, 실내악 〈현악 4중주〉,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 피아노 독주곡 〈노르웨이 민요에 의한 변주곡 형식의 발라드〉, 가곡 〈그대를 사랑해〉, 〈음유시인의 노래〉, 〈봄〉, 〈첫 만남〉 등이 있다.
○글: 진회슥
이화여대 음대에서 서양음악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이론을 공부했다. 1988년 월간 「객석」이 공모하는 예술평론상에 '한국 음악극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평론으로 수상, 음악평론가로 등단했고, 「객석」, 「조선일보」, 「한국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 매체에 예술평론과 칼럼을 기고했다. 이후 KBS와 MBC에서 음악프로그램 전문 구성작가로 활동하며 MBC FM의 「나의 음악실」, KBS FM의 「KBS 음악실」, 「출발 FM과 함께」, KBS의 클래식 프로그램인 「클래식 오디세이」 등의 구성과 진행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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