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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내 삶의 동력이자 변명"

금동원(琴東媛) 2017. 12. 24. 09:11

■글쓰기는 내 삶의 동력이자 변명"

박해현 문학전문가/입력 : 2017.12.21 03:01 

등단 50주년 앞둔 오정희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 활동
한국 여성문학의 代母로 평가… 최근 '오정희 컬렉션' 기념 출간
        

        

  "글을 쓰면서, 글을 읽고 생각하면서, 글로 인해 괴로워하면서 행복하고 고마운 인생이고 세월이었다."

  소설가 오정희(70)가 새해에 등단 50주년을 맞게 된다. 오정희 소설을 도맡아 내온 문학과 지성사는 최근 등단 50주년을 앞서 기리기 위해 '오정희 컬렉션'(전 5권)을 냈다. 올해로 출간 40주년이 된 작가의 첫 소설집 '불의 강'을 비롯해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새'의 개정판을 낸 것. 작가가 다시 교정지를 보면서 몇몇 문장을 다듬었고, 초판의 일부 오류도 바로잡았다고 한다.

  


        

등단 50주년을 코앞에 둔 오정희는“묻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는 작가로서의 직무 유기와 죄의식을 먼저 떠들어댄 것 같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1968년 문단에 나온 오정희는 삶을 밀도 높은 문체와 강렬한 이미지, 상징의 시학(詩學)으로 형상화하면서 한국 여성 문학의 미학을 심화시켰다는 평을 받아왔다. 작가는 "등단 50주년 소리를 들으면 민망하다"며 "젊은 시절의 글을 다시 보니 치기(稚氣)가 느껴지지만 내가 걸어온 길이니까 대체로 그대로 놔뒀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 문학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엔 오정희 소설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와 더불어 오정희는 요즘 활동하는 대다수 여성 작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982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현재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여성 문학의 대모(代母)'라는 평가에 대해 작가는 "저에게는 박경리 선생님을 비롯한 선배 작가들이 있었다"며 몸을 낮춘 뒤 "글쓰기는 저에게 삶의 변명이자 동력이기도 하다"며 화제를 돌렸다. 올해 주요 문학상을 여성 작가들이 휩쓴 현상에 대해 그녀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중간 지대로서 문학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오정희 소설의 특징은 '여성의 삶과 몸을 통한 인간 존재의 인식, 밀도 높은 문체와 강렬하고 상징적인 언어, 현실과 환상의 혼재, 불안과 공포 그리고 아득한 심연' 등으로 요약되어 왔다. 오정희 소설의 주요 이미지로 '거울, 우물, 저녁, 바람'이 꼽히기도 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아끼던 거울을 갖고 놀면서 '유년의 비밀'을 털어놓은 친구로 삼았고, 거울을 통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나만의 환상을 즐겼다"며 "소설을 쓸 때 그런 원체험을 의식하면서 쓴 적은 없지만 평론가 오생근 선생님이 제 소설에 '거울'이 자주 나온다고 해 저도 깨닫게 됐고, '우물'은 거울의 변형인 셈"이라고 말했다. '저녁'이 자주 등장한 것에 대해 작가는 "어두워질 때 저는 정서적 흔들림이나 떨림을 느낀다"며 "평론가 김화영 선생님은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멀리서 오는 어스름'이라고 했는데, 그 불분명한 삶의 순간은 어린 아이의 몽환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오정희 소설 속의 여성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경계한다. 작가는 "젊은 날의 글을 보면 '자기 신비'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학대하기도 했는데, 자기 신비에서 벗어나야 세상과 타인의 신비가 보이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는 불우한 초등학생들을 돌보는 자원봉사 활동에 나선 적도 있다. 그 체험으로 목격한 아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섬세하게 그려낸 장편 '새'는 2003년 독일에 서 리베라투르문학상을 받았다.

 
  문학과 더불어 걸어온 반세기에 대해 작가는 "제 초기 소설은 인생의 비밀과 심연을 관념적으로 드러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반석(盤石)이나 비의(秘義) 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도 그 '없음'을 찾아서 헤맨 삶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뒤 "내가 뭘 찾지도 못한 채 이런 말을 하니 민망하다"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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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오정희(吳貞姬)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맛깔스런 문장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작가. 40년이 넘도록 작가로서, 여자로서 숱한 계절을 반복하면서도 튼튼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새 계절을 맞이하는 큰 작가이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작품으로 가지각색의 삶을 작품을 통해 담아낸다.

  1947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나 197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79년 「저녁의 게임」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1982년 「동경」으로 제15회 동인문학상, 1996년 「구부러진 길 저쪽」으로 오영수문학상, 1996년 「불꽃놀이」로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독일에서 번역 출간된 『새』로 독일의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했는데,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서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사에서 매우 의미 깊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초기에는 육체적 불구와 왜곡된 관능, 불완전한 성(性) 등을 주요 모티프로 삼아 타인들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철저하게 단절되고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의 파괴 충동을 주로 그렸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중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존재보다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여성성을 찾는 작품들을 썼다.

  국어의 미학적 지평을 넓힌 작가의 문장이 빚어낸 작품들은 존재와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여성적 자아의 내밀한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또한 형체가 없는 내면의 복잡한 사건들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일상의 슬픔과 고통, 허무의 정체를 추적하고 있다. 저서로는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등의 작품집이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새』 등이 있으며, 많은 작품이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2007년에는 그의 문학인생 40년을 기념하는 문집 『오정희 깊이 읽기』가 출간되기도 했다


   유년의 뜰 불의 강 중국인 거리 바람의 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