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언어》 -발견하고 경험하게 하는 자연의 말들
-우숙영 저/이민선 그림 | 목수책방 |
◎목차
하늘
해 : 햇살의 빛과 볕 | 달 : 달은 변덕쟁이가 아니다 | 햇무리와 달무리 : 날씨를 알려드립니다 | 일식과 월식 : 거대하지만 조용한 우주의 은밀한 이벤트 | 별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 은하수 : 은하수가 알려 준 비밀 | 별자리 : 선으로 만든 이야기 | 혜성과 유성 : 손님별이 남기고 간 선물 | 무지개 : 바라만 봐도 충분한
땅
흙 : 꿈꾸는 흙 | 모래 : 약하지만 강한 작은 알갱이 | 바위와 돌 : 기억을 품은 크고 작은 돌 | 논과 밭 : 먹을거리를 키워 내는 땅 | 산 : 너른 품을 지닌 땅의 주름 | 길 : 생명의 흔적
물
연못 : 고요한 연못 | 호수 : 달과 구름의 거울 | 도랑과 내 : 생명을 품은 땅의 실핏줄 | 강 : 묵묵히 담아 흐르는 강 | 바다 : 땅끝에서 만난 거대한 소금물
식물
숲 : 저마다의 생태 | 눈 : 눈은 다 계획이 있다 | 꽃 : 이유 있는 아름다움 | 잎 : 근면 성실한 지구의 노동자 | 줄기와 가지 : 하늘과 땅 사이의 삶 | 열매와 씨앗 : 떠나는 마음, 떠나보내는 마음 | 뿌리 : 조용한 연대 | 낙엽과 단풍 : 담담한 아름다움 | 나이테 : 살아온 대로 기록된다 | 이끼 :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동물
개와 고양이 : 닮아 가는 삶 | 닭과 소 : 너의 이름은 | 다람쥐와 고라니 : 다양성이 사라진 세계 | 벌레와 곤충 : 공존의 거리 | 나비와 나방 : 선을 넘는 녀석들 | 매미와 귀뚜라미 : 계절의 알림음 | 개구리 :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 잉어와 피라미 : 물고기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 제비와 왜가리 : 이동하는 삶과 정박하는 삶 | 참새와 직박구리 : 새의 언어
날씨
구름 : 하늘의 기분 | 비 : 비를 사랑하는 기술 | 눈 : 만지고 뭉칠 수 있는 날씨 | 바람 : 바람을 담은 바람 | 안개 : 땅 위에 내려앉은 구름 | 이슬과 서리 : 계절의 기척
시간과 계절
새벽과 아침 : 아침의 탄생 | 저녁과 밤 : 밤이 돌아왔다 | 봄 : 취소되지 않는 봄 | 여름 : 여름의 맛 | 가을 : 선택하는 가을 | 겨울 : 깊어지는 계절
자연 속에서
하늘빛 바라보기 | 마음 가는 대로 걷기 | 자연 속 색 이름 찾기 | 바다색 채집하기 | 초록색 바라보기 | 모든 것을 끄고 듣기 | 가까이 다가가 냄새 맡기 | 맛의 기원 찾기 | 가만가만 만져 보기 | 불 바라보기
◎작가 소개
글:
우숙영은 언어와 데이터를 도구 삼아 무엇인가 만드는 사람. 대기업 선행디자인팀에서 미래의 물건과 경험을 디자인해 왔다. 기술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차가움에 베일 때면 자연 속을 산책하며 온기를 얻었다. 산책하며 주운 자연의 이름과 이야기를 모아 《산책의 언어》를 썼다. 현재는 인간과 기술, 자연의 경계에서 일하며 지속가능한 삶과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림:
이민선은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 세상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모든 방식에 관심이 많다.
◎책 속으로
그늘 밑은 서늘하고 햇볕 밑은 따스한 봄. 바람 부는 어린잎 사이로 볼 수 있는 햇싸라기는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움직임이다. 소시락소시락 가벼운 바람이 불 때마다 연둣빛 어린잎 사이로 물빛 하늘과 볕뉘가 일렁인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애를 쓰다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어떻게 찍어도 눈으로 보는 풍경보다 아름답지 않다. 어떤 좋은 카메라에도 담을 수 없는 빛여울과 볕내가 정수리와 어깨로 위로 살금살금 떨어진다. 축축하게 젖었던 마음도 햇살의 빛과 볕에 천천히 말라 간다.
달은 변덕쟁이가 아니다. 매일의 모양도 보이는 시간도 달라 변덕스럽게 느껴지지만, 그 움직임과 변화는 규칙적이다. 우리가 달의 사정을 알 만큼 오랜 시간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달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달은 달만의 호흡으로 오늘도 묵묵히 가깝고 멀게 지구를 돈다. 차고 이지러지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산다.
어둠이 골고루 내린 밤.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아본다. 북두칠성과 닻별은 찾았지만, 나머지는 쉽지 않다. 아쉬운 마음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서로 떨어져 있는 아무런 사이도 아닐 별 두 개를 찾아 선을 그었다. 주변에서 총총 빛나고 있는 다른 별들도 찾아 이었다. 공식적인 별자리는 아니지만 괜찮다. 어차피 밤하늘의 이야기는 제각각 떨어져 있던 서로 상관없던 별 사이를 이은 하나의 몸짓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산책길에 나뭇등걸을 보았다. 많은 사람이 쉬어 갔는지 조금 매끈하다. 그루터기에 앉는 대신 가만히 옆에 앉아 손으로 나이테의 흔적을 따라 그렸다.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읽었다. 마주 닿은 손끝을 통해 나무도 읽었을지 모르겠다. 살아온 대로 기록된 날것의 인간 삶을.
아름답고 유익하기만 한 나비는 없다. 징그럽고 해롭기만 한 나방도 없다. 그저 인간이 그어 놓은 선일 뿐이다. 오직 인간만이 다름을 찾아내 ‘너’와 ‘나’를 나누고, 옳고 그름을 규정한다. 물론 나비와 나방은 인간이 부르는 이름과 편견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나비와 나방은 오늘도 인간이 그어 놓은 선을 훌쩍 넘어 자신의 의지로 꽃을 쫓고 빛을 따른다.
이동하는 삶과 정박하는 삶. 그 사이에서 새들은 자신의 형편에 맞게 머물고 떠난다. 떠나는 것에도 머무르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오늘도 철새와 텃새는 자신의 부리로 칼깃을 다듬으며 내일을 위해 용감하게 떠나고, 씩씩하게 오늘을 산다.
눈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날씨 중 가장 감각적인 날씨다. 만질 수 있고 뭉칠 수 있다. 밟을 수 있고 그 위에 누울 수 있다. 냄새를 맡고 먹어 볼 수도 있다.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자국눈은 금세 사라지지만, 깊게 쌓인 길눈은 단단하게 굳어 사람이 건널 수 있는 눈다리가 된다. 싸락싸락 내린 쌀알 같은 싸라기눈은 사박사박 쉽게 밟고 걸어갈 수 있지만, 발등이 빠질 정도로 내린 발등눈은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이 푹푹 빠진다. 고체였다가 액체가 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쌓이기도 한다. 눈에는 고정된 감각이 없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산책하며 모은 자연의 이름과 이야기
‘자연’을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심하고 예민하게 ‘자연’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과 날씨, 매일 모습을 바꾸는 우리 주변의 식물들, 인간의 친구가 되어주는 친근한 동물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아도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새와 곤충. 하루의 대부분을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지내는 사람이라도, 자연을 만나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알고 보면 우리는 늘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자연이 품고 있는 뭇 생명이 베푸는 것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막상 우리에게 늘 보고 경험하는 ‘자연’을 설명하고 묘사해 보라고 하면 막막해진다. 식물은 ‘초록색’이고, 하늘은 ‘푸를’ 뿐이고, 좋은 풍경 앞에서는 그저 ‘아름답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자연에 조금 더 가까운 존재였던 어린 시절에는 주변 자연을 호기심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 안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보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공룡부터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신기한 곤충이나 바다생물 이름도 하나하나 외워서 불러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갈수록 주변 자연환경과 뭇 생명을 향해 발달시켰던 우리의 감각의 촉수는 점점 더 무디어져 갔다. 『산책의 언어』는 이렇게 나도 모르게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그래서 자연을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가난해진’ 사람들이 새로운 ‘단어’를 통해 다시 자연에 더 가까워지고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저자는 기술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차가움에 베일 때마다 자연 속을 산책하며 온기를 얻었고, 산책하며 주운 자연의 이름과 이야기를 모아 이 책을 썼다.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게 해 주는 ‘언어’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새로운 시각’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여행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게 해 주는 열쇠가 바로 ‘언어’다. 저자는 늘 곁에 있었지만 다시 새롭게 바라보고 싶은 자연의 다양한 구성원과 그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자연과 자연현상에 붙여진 이름과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수집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우리의 경험이 깊어지고 연결되길 바라며 인간의 감각과 표현, 행동과 관련한 단어들을 선별했다.
책을 읽다 보면 분명 우리말인데 뜻을 모르는 단어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는 동시에 새로운 이름과 이야기를 알아 갈수록 그것들이 결코 낯설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연의 이름과 이야기를 아는 일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어린 시절 사랑했던 공룡과 곤충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것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는 그렇게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 시절 자연과 맺었던 관계를 회복시켜 준다.
‘단어’를 통해 자연과 새로운 관계 맺기
『산책의 언어』는 에세이와 사전이 결합된 ‘사전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하늘, 땅, 물, 식물, 동물, 날씨, 시간과 계절, 자연 속에서, 이렇게 크게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우숙영 작가가 쓴 짧은 에세이와 이민선 작가의 그림이 이어진다. 그리고 저자가 세심하게 의미를 음미하며 하나하나 수집한 키워드별 관련 단어와 단어 설명이 붙는다. 작가가 보고 경험한 자연을 우선 글과 그림으로 만나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단어들과도 만나게 된다.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마음이 가는 부분부터 읽어도 좋다. 단번에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캠핑이나 여행, 산책 등 자연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련 있는 키워드와 단어를 찾아 조금씩 꺼내 보아도 좋다.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일, 낯선 단어들을 통해 다시 나만의 방식으로 자연과 관계를 맺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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