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박목월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구에 그 들은 떼를 지어 몰려있었다. 멍청하게 몰려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 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 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초판본 박목월 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초판본: 1964년 『청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