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15년 '아몰랑'
[한겨레21] [조영일의 관부연락선]표절의 기원
약 100년간의 한국근대문학사에서 지금처럼 한국문학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던가 싶다. 비록 문학인들이 단체로 메르스보다 전염력이 강한 '꿀벙어리스'에 걸린 것이 안타깝지만 말이다. 그런데 표절이 작가 개인의 윤리 문제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이번 경우에는 그것이 더 명확한데,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이 무려 15년 동안 억압돼왔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독자들은 도대체 왜 한국문학을 읽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왜 재미가 없을까? 비슷한 사람들이 소설을 쓰기 때문이다. 신인 소설가들의 이력을 참조하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거지만 80~90%가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이들은 초·중·고 시절 똑같은 국어 교과서로 공부하고 대학에서 비슷한 문학 수업을 받고 작가가 된다. 하지만 작가적 성공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이때 그들이 많이 의존하는 것이 바로 독서 경험이다. 즉, 한국문학에서의 표절이란 경험의 결핍에서 비롯된 무차별성을 독서 체험으로 메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다.
물론 독서 체험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것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는 작가적 지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신경숙의 실패는 그것을 이른바 감성적 문체와 이야기로만 커버하려는 데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15년간이나 '아몰랑'했다는 것은 그로 인해 '표절에 대한 감각' 자체가 마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절 여부를 판정하는 기구를 만들겠다고 난리부르스인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따라서 비웃음을 사기 좋은 일로, 한국문학에 대해서'만' 글을 쓰는(따라서 외국문학에 문외한에 가까운) 문학평론가들에게 그것을 감별할 능력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대부분의 표절 의혹이 독자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조일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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