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루다 |
앙리 루소 ‘꿈’ |
서울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5월 3일부터 8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오르세미술관전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에는 오르세미술관 소장품 중 해외로 반출이 금지됐던 앙리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인'이 한국에 최초로 공개되어 한국 관객들을 찾는다.
앙리 루소, 298.5X204.5cm, 1910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앙리 루소(Henri Rousseau·1844~1910)의 작품 ‘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야드비가’라는 여인의 꿈속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 왼쪽 중앙에 있는 누드의 여인입니다. 짙은 색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가슴까지 늘어뜨린 이 여인은 긴 소파 위에서 몸은 정면을, 고개는 화면 오른쪽을 향해 있으며, 두 다리를 포갠 채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습니다. 오른팔은 상체를 지지하려고 바닥을 짚고 있고 왼팔은 소파 등받이 위로 길게 뻗어 걸친 채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인은 푸른빛과 붉은빛의 큰 꽃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 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나뭇가지에는 금빛과 은빛 날개를 가진 새가 우아하게 앉아 있고, 검은 원숭이들이 매달려 있으며,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 코끼리는 머리만 간신히 보입니다. 여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동그란 눈을 번뜩이고 있는 사자 두 마리가 있고, 그 앞으로 황갈색의 뱀 한 마리가 지나갑니다. 사자들 뒤에서는 검은 피부의 신비한 여인이 피리를 불고 있는데, 이 여인이 야드비가의 그림자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야드비가는 루소가 젊은 날 헤어진 연인이거나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 클레망스, 아니면 죽은 그의 딸이라는 등 여러 해석이 있지만 누군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루소는 이 그림 옆에 야드비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를 붙여놓았는데, 시의 내용으로 추측해보면 그녀의 꿈과 현실이 결합된 공간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실에서 그녀는 프랑스 파리의 어느 거실 소파 위에 누워 있지만, 그 주변을 둘러싼 밀림은 존재하지 않는 꿈속 풍경이자 루소 자신의 꿈의 공간인 것이죠.
파리 센 강 부두 세관의 하급 공무원이었던 루소는 27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화가가 된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소는 25세에 15세인 아내 클레망스와 결혼해 7명의 자식을 둔 가장이었기 때문이죠. 루소는 평일에 일하고 주말이면 미술관에 가서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며 독학을 해 ‘일요일의 화가’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배운 지 22년 만에 화가로 정식 데뷔하는데 당시 그의 나이 49세였습니다.
이 그림은 루소가 사망하기 몇 달 전 그린 것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한 화가, 세관원이란 이력으로 루소의 초기 그림은 조롱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다른 후기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꿈을 향해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걸었던 루소의 삶이 오히려 그의 그림을 친근하고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루소는 당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경향에 종속되지 않고 그 나름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이룩했습니다. 특히 전통적 관념이나 이성적 논리에서 벗어나 현실과 꿈의 세계가 공존하는 루소의 그림들은 1920년대 등장한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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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
-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
천국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보다 지옥에서 홀로 살기를 선택하겠다고 고백한 이는 소로였습니다. 소로는 월든 숲속에다 오두막 한 채를 짓고 스스로 밭을 일궈 먹으며 평생을 고독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폐렴에 걸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고독하게 세상을 떠났어도 나는 그가 불쌍하거나 안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고독이 불안하거나 무섭지 않은, 아니 고독이 ‘나’의 집인 현자였을 테니까요. 저 그림 앙리 루소의 ‘잠든 집시여인’을 보는데 왜 단순하고 담백하게 살다간 소로가 생각이 나는 걸까요?
아마 보이는 것이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일 것입니다. 한 벌의 옷, 지팡이 하나, 만돌린 하나, 물병 하나! 신발도 없는 것이 그녀가 얼마나 가진 것이 없는지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소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 그림은, 살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 1897년, 캔버스에 유채, 129.5×200.7㎝, 뉴욕 현대미술관
달빛 한줌, 이슬을 모으는 물병, 만돌린 소리와 내 속의 사자, 그녀의 삶의 동반자들입니다. 그것들을 보면 그녀의 단순한 삶이야말로 살아있는 삶이라 고백하게 됩니다.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삶이 왜 숨 막히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사는 데 강남의 집이 필요하고, 비싼 차가 필요하고, 인맥이 필요하고, 명품으로 도배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기름 낀 그 삶의 비만으로 인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너무 바빠서 바람소리를 듣지 못하고, 달빛을 느끼지 못하고, 나를 찾아 걸어 들어오는 야수를 지나칠지 모릅니다. 안락한 삶에 길들여진 우리는 불필요한 많은 것들에 의존해 살이 쪄 갇혀 있고, 길들여지지 않은 그녀는 아무것도 없지만 바람처럼 자유롭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인에게서 가난과 방랑의 흔적을 거둬내면 여인과 사자가 다시 보입니다. 다시 한 번 잘 보십시오. 하늘을 지붕 삼아 달빛 아래 잠들어 있는 여인의 표정을. 그녀의 머릿결과 옷의 무늬까지 한 방향으로 잘 정돈되어 있지요? 그녀의 잠이 편안한 단잠임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깨끗한 방, 깨끗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왜 그렇게 불면증에 익숙할까요? 바람을 막아 줄 방 한 칸 없는 저 여인은 저렇게 잘도 자는데.
살아보면 산 게 없는 꿈같은 인생,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그 인생을 한명회 같은 지향성으로 살까요, 김삿갓 같은 지향성으로 살까요? 사실 저 그림에서 가장 눈이 갔던 것은 여인의 지팡이였습니다. 얼마나 소중했으면 잠든 와중에도 놓지 못하고 있을까요? 자면서도 놓지 못하는 소중한 것이 지팡이인 것으로 봐서 내일도 그녀의 삶은 지팡이가 필요한 고단한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단함은 스트레스가 되어 그녀의 삶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적이 아니라 만돌린을 연주하게 만드는 에너지일 것입니다. 지팡이가 인도하고 만돌린이 정화하는 길을 걸으며 그녀는 고독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해가리라 믿습니다. (.http://news.khan.co.kr)
그림이 보는 이에게 꿈을 줄 수 있다면, 나를 꿈꾸게 하는 화가는 단연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다. 몽환적인 동시에 유쾌하고, 모던한 동시에 원시적인 그의 그림은 나를 늘 즐거운 상상 속으로 몰아넣는다.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열대 우림 속의 호랑이〉(내셔널 갤러리의 ‘<AENTRY_ID="00024">이외에 꼭 보아야 할 그림 20’ 참조)도 마찬가지지만, 코톨드 갤러리에 소장된 이 사랑스러운 소품 〈톨게이트〉도 그렇다. 마치 아크릴로 그린 듯 화사하고 예쁜 색감의 이 그림 앞에서 나는 늘 한참을 서 있곤 한다. 그리고 정식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나이 마흔이 넘어 갑자기 화가로 돌변한 이 엉뚱한 남자의 머릿속에는 대체 어떤 상상들이 들어 있었을까 하고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림에서 톨게이트는 마치 고요한 전원 풍경처럼 그려져 있지만 사실 이 주제는 루소에게는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1886년에 열린 《앵데팡당전(Salon des indépendants)》에 그림을 출품하며 화가로 변신하기 전까지, 루소는 파리 근교에 있는 한 톨게이트에서 세관원으로 일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별다른 희망도 낙도 없는 하급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20년 이상 톨게이트에서 일하던 루소는 어쩐 일인지, 나이 마흔이 넘어서 여러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하며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고갱처럼 처자식을 모두 버리거나 원시 세계로 극적인 탈출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부양할 아이만 일곱이나 딸려 있었다. 루소는 1893년, 나이 마흔아홉이 되어 은퇴할 때까지 계속 세관원으로 일했다.
루소의 그림이 주는 독특한 느낌은 그가 어떤 미술교육도 받지 않고, 오로지 독학으로만 그림을 습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루소 본인도 “내 그림의 유일한 스승은 자연”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스승인 자연은 ‘진짜 자연’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루소가 가장 즐겨 그린 풍경은 열대의 정글이나 사막인데, 루소는 단 한 번도 열대 지역이나 정글에 가 본 일이 없었다. 고갱이 그러했듯이, 루소에게 있어서도 원시 세계와 자연이란 실제 그대로의 자연보다는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상상 속의 자연이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루소가 그린 그림은 원시적인 동시에, 다분히 현대적이다. 그는 사물의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시키고 화려한 원색을 즐겨 사용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그림은 ‘원시’라기보다는 ‘모던’에 가깝다. 이 사랑스러운 소품 〈톨게이트〉만 해도 그렇다. 루소는 이 그림에서 원근법을 고의로 무시하고 있다(일설에 의하면 그는 정말로 원근법을 몰랐다고도 한다). 이 그림에서는 멀리 서 있는 세관원과 가까이 서 있는 세관원의 크기가 똑같다. 톨게이트 너머 멀찌감치 보이는 높다란 공장 굴뚝이 그림에 모던한 인상을 불어넣고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 그림은 좀 이상하다. ‘톨게이트’라면 시외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입구다. 당연히 번잡한 대로 한가운데에 톨게이트가 있어야 하는데, 루소의 그림 속 톨게이트는 꿈속처럼 한적한 시골 풍경이다. 지나다니는 통행인이나 마차도, 자동차도 없다. 오직 두 명의 세관원이 모형처럼 가만히 서서 한가로운 문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 그림은 묘한 알레고리를 숨겨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 속 톨게이트는 화가의 꿈속에서 비춰진 장면일까? 그러나 그것보다는 루소가 마음속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직장의 풍경이 이것 아니었을까 싶다. 늘 통행인에게 시달리는 번잡스럽고 고단한 일이 아닌, 아무도 찾지 않는 한적한 장소에 있는 톨게이트와 그 속에 있는 화가 자신······. 20년 이상 밥벌이가 되었던 직장을 이처럼 독특하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라면, 루소는 분명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평단의 반응은 루소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린애 그림’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루소는 꾸준히 《앵데팡당전》에 그림을 출품했다. 그는 언젠가는 주류 화단이 자신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마티스, 피카소 등 젊은 연배의 화가들과 시인 아폴리네르가 그의 그림을 호평했지만(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을 사 주기도 했다), 제도권 비평은 끝내 루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세관원 자리에서 은퇴한 후 루소는 작은 작업실을 빌려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고 한다.
루소는 고갱과 마찬가지로 나이 마흔이 넘어 일반인에서 화가로 변신한 극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고갱은 끝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불화를 일으켰고, 문명 세계를 떠나 먼 타히티로 떠나야 했다. 그리고 이 극적인 변신 때문에 고갱은 고흐처럼 전설의 화가로 남았다. 고갱과 엇비슷한 처지였지만, 루소의 그림에서는 그 같은 심각함이나 비관적인 가치관이 엿보이지 않는다. 결코 즐거운 기억일 리가 없는 자신의 직장을 그린 이 그림에서조차, 화가는 대상에 대한 유쾌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다. 그의 그림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괴로운 삶에서도 꿈꿀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라고. 그것이 내가 루소의 그림에서 늘 꿈을 발견하고, 또 따스한 위안을 받는 이유다.</AENTRY_ID="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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