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997) - La Vita E Bella
감독 : 로베르토 베니니
배우 : 로베르토 베니니, 니콜레타 브라스치
장르: 드라마 116분, 이탈리아/ 2016.04.13(재개봉)
로마에 갓 상경한 시골 총각 ‘귀도’는 운명처럼 만난 여인 ‘도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넘치는 재치와 유머로 약혼자가 있던 그녀를 사로잡은 ‘귀도’는 ‘도라’와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분신과도 같은 아들 ‘조수아’를 얻는다. ‘조수아’의 다섯 살 생일, 갑작스레 들이닥친 군인들은 ‘귀도’와 ‘조수아’를 수용소 행 기차에 실어버리고, 소식을 들은 ‘도라’역시 기차에 따라 오른다. ‘귀도’는 아들을 달래기 위해 무자비한 수용소 생활을 단체게임이라 속이고 1,000점을 따는 우승자에게는 진짜 탱크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불안한 하루하루가 지나 어느덧 전쟁이 끝났다는 말을 들은 ‘귀도’는 마지막으로 ‘조수아’를 창고에 숨겨둔 채 아내를 찾아 나서는데
인생은 아름답고 걸작은 힘이 세다
2030 홀린 재개봉作 `인생은 아름다워`
재개봉 열흘만에 5만명 잔잔한 흥행…삶과 부성애 그린 불후의 명작
제 자식이 고통받길 바라는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비루하고 변변찮은 삶을 살아도 제 새끼의 삶 만큼은 나보다 낫기를, 세상의 모진 풍파와 수난 속에서도 제 피붙이의 삶만큼은 그것을 비껴가기를 염원한다. 어쩌면 이 땅의 아버지 된 사람들의 본능일는지도 모른다. 실로 부성(父性) 앞에서는 좌우도 위아래도 무의미해 보인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9)는 그런 부성의 위대함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보기 드문 걸작이다. 험로의 연속이기 일쑤인 우리네 삶에서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됨을 역설하는, 생에 대한 찬가(讚歌)이기도 하다. 최악의 상황에 처해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내내 읊조리는 이 영화는 그래서인지 지금도 힘이 세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 13일 국내에서 17년 만에 재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유수 신작들을 물리치고 남녀노소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개봉 9일 만에 관객 5만2000여 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끌어모았고, 박스오피스 9위를 유지하고 있다. 잘 만든 신작 예술영화도 이 정도 흥행을 거두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이 영화 수입·배급사인 씨네그루 관계자는 "꾸준한 입소문과 함께 상영관 수를 점차 늘려가는 추세"라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좋은 영화'라는 인식이 널리 각인돼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된 관객층은 20·30대 젊은이다. 22일 CGV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30대가 53.7%로 과반(20대 37%·30대 26.7%)이었다. 40·50대는 29.4%(40대 18.2%·50대 11.2%)였고, 전체 연령대 면에서는 여성(64%)이 남성(36%)보다 많았다. 또한 여성은 20대(41.7%), 남성은 30대(31.4%)가 가장 많이 봤다.
김대희 CJ CGV 홍보팀 과장은 "처음 접하는 젊은 층이 많다는 건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게 이 영화가 재미와 감동을 두루 갖췄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로베르토 베니니가 연출과 주연을 도맡았다. 나치의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 말 이탈리아가 배경이다. 참혹한 수용소 안에서 아내와 아들을 마지막까지 지킨 한 유대인 가장의 숭고한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명대사의 향연이지만 귀도(로베르토 베니니)가 독일군 장교 숙소에서 벌이는 작은 소동과 뒤이은 시퀀스는 특히나 이 영화의 백미다.
음식을 나르다 우연히 축음기를 발견한 귀도는 여자 수용소 어딘가에 있을 아내 도라(니콜레타 브라스키)를 위해 젊은 시절 함께 듣던 '호프만 이야기' 3막을 튼다. 낡고 허름한 수용소 침대에 누워 있던 도라는 이 노래가 들려오자 남편의 신호임을 알고 눈시울을 붉힌다.
독일군에게 총살을 당하러 가는 순간에도 낡고 작은 캐비닛 안에 숨어 있는 아들 조슈아(조르조 칸타리니)를 안심시키려고 웃음기 띤 윙크를 보내고,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귀도의 마지막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런 귀도가 아들에게 읊조렸던 다음 대사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압축해놓고 있다. "아들아, 아무리 처한 현실이 이러해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다."
제51회 칸영화제(1998년) 심사위원 대상작이다. 이듬해 제7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7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남우주연상·외국어영화상·음악상을 한데 휩쓸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제작 배경 및 시대적 배경
(1) 제작 배경
이 영화의 영감은 베니니의 개인적인 아픔, 역사적 진실, 그리고 베니니 자신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결합되어 탄생된 것이다. 베니니의 가문의 아픔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 영화는 2차대전 말기 순박한 농부였던 아버지가 유대인으로 오인 받아 나치 수용소에서 겪은 고생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베니니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투스카니에서 시작된다. 시대적 배경은 물론 베니니가 출생하기 이전의 상황이지만 그의 가족이 역사적 격랑과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근거로 이야기가 구성됐다. 베니니의 아버지는 유태인이 아니었음에도 전란중에 수용소에서 비극을 겪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아픔 때문에 베니니는 파시즘 지배하의이탈리아에 관하여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니니 는 우연히 자신의 가슴을 울린 글을 읽고 난 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그것은 혁명가 트로츠키에 관한 글이었다. 혁명가 트로츠키가 벙커에 갇혀있다. 그는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들이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기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직 공포만이 존재하는 그 순간에도 트로츠키는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남겼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 트로츠키가 보여 준 너무나 특별한 인생의 우수와 비애에 관해 생각에 빠져들었던 베니니는 가장 극악한 상황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사랑과 기쁨과 웃음에 힘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리기 오래전부터 베니니는 파시즘 지하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자행했던 유태인 말살 정책에 관해 조사하고 연구해왔다. 유태인 강제 수용소 안에서 꽃핀 너무나 특별한 귀도의 사랑 이야기인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2) 시대적 배경
동화 같은 이야기와 치 떨리는 공포의 역사가 공존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파시즘이 지배했던 1930년 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끌려가야 했고 죽어야 했던 참혹한 시대였다. 흔히 홀로코스트라 일컬어지는 나치스의 유태인 학살은, 1942년 1월 20일 소위 '유태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이 논의된 이후부터, 1945년 4월 20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유태인 격리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이 대량으로 죽음을 맞게 된 사건을 말한다. 또 넓은 의미로 나치스의 유태인 학살은, 1933년부터 1945년에 걸쳐 12년 동안 시행된 나치스의 유태인 차별 정책의 피해로 유태인들이 숨진 사건을 말하기도 한다.
유태인 차별 정책은 실질적으로 국가의 단결력을 강화하여 효율을 높인다는 목표 이외에도, 독일 사회에 새로운 급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나치스당이 정말로 독일을 바꾸어 놓고 있다는 대중 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이기도 했는데 이와 같은 연원에서 나치스의 유태인 박해는 시작되었고, 1935년 유태인의 혈통이 섞인 국민을 독일인과 구분한다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는 뉘르베르크 법이 시행 되면서 급진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그 후 유태인의 피해는 더 심각하였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독일은 국가전체가 비상 전시 체제에 돌입한다. 따라서 독일 국민 대다수와 반목이 심하고, 독일 정부의 정책에 반발심이 강한 유태인들에 대한 차별대우는 더욱더 엄격해졌다. 유태인들은 공립학교를 비롯한 모든 공공시설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사업과 토지 거래가 금지되었다. 나치스는 점점 더 차별을 심화하였다. 유태인들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를 빼앗아, 게토라 불리우는 특정 지역 이내에서만 살게 하였고, 유태인들에게 '다윗의 별'이라는 뱃지를 달게 하였다.
이러한 법령은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도 매우 인기를 얻어, 급속히 퍼져나갔다. 점차 유럽 전체의 유태인들이 이같은 차별 대우 속에서 숨져갔고, 독일이 군사적으로 유럽을 점령함에 따라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1941년, 국가 총동원령의 일환으로 12세가 넘는 유태인 남자는 군수 공장에 징집되어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 국가 총동원령에 따른 강제 노동 징집은 다른 독일인들에게도 가해졌지만, 유태인들은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고, 노동 환경 또한 일체의 인도적 처사 없이 가혹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1942년 1월 20일 베를린교외의 그로센반제에서 아이히만을 비롯한 15명의 나치 주요관료가 모여 유태인들의 관리 지침을 재정비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유태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이었다. 그 내용은 결코 유태인들을 모아서 독가스로 모두 죽인다는 것이 아니었다. '유태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은 유태인들을 외부에서 접촉하기 어려운 동부의 외딴 수용소에 모아놓고, 군수 산업에 종사하게 하면서, 독일의 국가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적절히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유태인 학살은 납득갈만한 이성적 판단의 산물이었으며, 악명높은 '마지막 해결책'에서 조차도 처형이나, 살해와 같은 단어는 절대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영화등을 통해 익히 보아 온 것과 비슷하다. 전쟁 중에 독일의 물자는 극도로 부족하여, 군수물자와 '보통독일시민'들의 물자도 여의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태인들의 위생이나 식량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좁은 수용소 안의 유태인들은 비위생적인 환경과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끊임없이 질병으로 죽어나갔고, 그와 비슷한 숫자의 유태인들이 굶어 죽었다. 한편 이처럼 유태인들의 생명이 경시됨에 따라, 일부 광기에 찬 군인들에 의해 유태인들은 잔혹하게 죽어나갔고 사소한 이유로 유태인들은 사살 당하였고, 비인간적인 모욕을 가하는 일도 빈번해 졌다.
출처: cafe.daum.net/history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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