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
- 앙드레 지드 저/ 김화영 역 | 민음사
『지상의 양식』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앙드레 지드의 사상적 자서전이자, 도피와 해방의 교과서이다. 시, 일기, 여행 기록, 허구적인 대화 등 다양한 장르가 통합된 형식으로, 지드가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모든 도덕적 · 종교적 구속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후 이때의 해방감과 생명의 전율을 노래한 작품이다. 지드는 욕망에 충실하고, 순간에 온 존재를 기울이며, 모든 정신적 굴레를 벗어버리라고 말한다. 이 책은 감각으로 먼저 느껴보지 못한 지식은 무용할 뿐이며, 머리로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비워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시작이라고 가르치는 역설의 교과서이다.
작가소개
1869년 11월 22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청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드는 1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엄격한 교율을 강조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살때부터 문학에 빠지면서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하이네를 탐독했고 그리스 신화와 성서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사촌 누나 마들렌은 그에게 예술혼을 유발시키는 평생의 동반자였다. 1891년 소설『앙드레 발테르의 수첩』을 처음 발표하고 시인 말라르메가 이끄는 ‘화요회’에서 예술가들과 친교를 쌓는 등 작가로서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1893년의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아프리카의 작렬하는 태양과 야성적 풍토는 지금까지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엄격한 그리스도교적 윤리에서의 해방을 가져왔으며, 모든 구속에서 풀려난 강렬한 생명력을 향유하는 것이 삶의 길임을 가르쳐주었다. 새로운 생명의 기쁨을 끝까지 추구하려는 의지는 지드의 문학의 독특한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1891년 첫 작품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를 발표한 이래, 주로 도덕과 욕망 사이의 갈등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지상의 양식』에서는 앙드레 지드는 전세계 젊은이에게 육체와 정신의 해방 찬가를 보낸다. 가르와 몽테블랑에서 카뮈와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욕망을 부정하는 종교와 윤리로부터 해방을 꿈꾸던 세대에게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고 표현하라는 이 책의 호소는 전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삶이 베풀어주는 기쁨을 최대한 향유하겠다는 그의 문학의 독특한 출발점은 바로 이 책에서 비롯하였다. 『좁은 문』은 그의 대표작으로 육체적인 쾌락과 지상의 행복을 승화시켜 현실적인 '사랑'을 종교적인 '존재'로 창조하거 사랑하는 남녀의 감정이 얼마나 높을 수 있으며, 절대 순수의 경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19세기 합리주의 사상에 종지부를 찍고 새것을 제시하는 현대 문학의 복음서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외의 작품으로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1891)『좁은 문』(1909)『배덕자』(1902)『전원교향악』(1919)『지상의 양식』(1897)『콩고 기행』(1927)『탕아귀가』(1907)『도스토예프스키론』(1920)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 서평
“맨발에 닿는 세계의 생살, 혹은 소생의 희열”
앙드레 지드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1893년의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그는 아프리카의 작열하는 태양과 야성적 풍토에서 강렬한 생명력을 느끼고, 지금까지 그를 구속해 온 모든 도덕적 · 종교적 윤리에서 해방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소생의 비밀”을 안고 돌아왔고, 그 비밀의 서정적 표현이 바로 『지상의 양식』인 것이다. 그는 영혼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모든 감각을 통하여 자연과 생명을 맞아들이라고 말한다.
지드는 욕망과 본능만이 우리의 길잡이라고 말하며, 모든 가식과 껍데기를 벗고 처녀지에 벌거숭이로 설 것을 주장한다. 또한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단한 유동성들을 뚫고 영원한 열정을 몰아가는 자만이 행복하다고 말하며, 행복은 오직 순간 속에 있다고 노래한다.
지드는 그의 놀라운 통찰력으로 바라본 세상, “맨발에 닿는 세계의 생살”을 서정적이고 수수하게 표현해 냈다. 하늘보다는 땅, 신보다는 인간, 영혼보다는 육체, 형이상학적인 관념이나 이성보다는 형이하학적인 현실의 여러 모습들과 인간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 그는 또한 일생 동안 단 한 번밖에 없는 봄, 그 찬란한 청춘의 끊임없는 열정과 사랑을 노래하며, 과거와 미래에 살면서 정작 지금 이 순간을 놓치는 젊은이들에게, 순간들의 현존에 온 마음을, 온 존재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활짝 핀 꽃보다는 약속이 가득한 꽃망울을, 소유보다는 욕망을, 완성보다는 발전을 사랑”한 지드는 『지상의 양식』을 통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지상의 양식, 영원히 새로운 우리의 양식
1897년에 지상의 양식이 발표된 후 세기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이 책에 담긴 메시지는 그 영원한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출간 당시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너무나 새롭고 독창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지드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문학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인공적 기교와 고리타분한 냄새로 찌들어 있던 시기에 이 책을 썼다. 당시 나는 문학이 다시금 대지에 닿아 그저 순박하게 맨발로 흙을 밟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겼다.
이 책이 얼마나 그 시대의 취미와 충돌하였는가는 당시 이 책이 인기를 얻는 데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떤 비평가도 이 책에 대하여 언급한 바가 없었다. 10년 동안 이 책은 겨우 500부가 팔렸을 뿐이다.”
다만 당시 열아홉 살이던 비평가 에드몽 잘루만이 책의 본질을 꿰뚫었다. 그는 이렇게 평했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책들 중 하나이다. (……) 우리가 가장 초조하게 기다려왔고 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다. (……) 금세기가 베르테르와 르네의 영향을 받았듯이 아마도 다음 세기의 문학은 이 책의 주인공인 메날크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의 평은 적절했지만 너무 일찍 나온 것이었다. “이 책이 감동시킬 대중을 발견하는 데 20년이 걸렸다.”라고 알베르 카뮈가 말했듯이, 20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독자들은 『지상의 양식』을 발견하고 그들 내면에서 폭발하는 열광과 진실에 도취되었다. 전후 세대에게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서슴없이 표현하라는 이 작품의 호소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자, 이 책을 먹어라. 이 책이 너의 오장육부를 쓴맛으로 가득 채우리라. 그러나 너의 입에서는 꿀처럼 단맛이 나리라.”라는 지드의 말처럼 『지상의 양식』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또 앞으로도 영원히 새로운 우리의 양식이다.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 김화영을 불문학이라는 일생의 업으로 기울게 한 작품
민음사판 『지상의 양식』은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불문학자 김화영이 번역하였다. 그는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정치한 문장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탁월한 평론을 선보인 전 방위 문학인이다. 그 스스로 『지상의 양식』이 “나의 소년 시절을 불문학이라는 일생의 업으로 기울게 한 결정적 계기”였으며, “아직 문학이 무엇인지, 독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춘기에 맹목의 열광을 이기지 못한 채 빠져 들었던 책”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작품을 옮기게 된 과정을 회고하며 이렇게 술회한다.
“나는 1960년대 대학의 불문과에 입학하여 바로 이 책을 처음 번역했던 이휘영, 김붕구 교수들의 지도를 받으며 지드와 카뮈를 원서로 읽은 황홀함을 경험했다. 그로부터 다시 40여 년이 경과하여 내 나이 환갑을 넘긴 후, 그리고 대학의 강단에서 또 다른 청춘들을 향하여 바로 그 지드와 카뮈를 함께 읽고 가르치다가 나 또한 그 강단에서 물러난 다음, 마치 뜨거운 청춘 시절의 앨범을 바라보듯이 그 선생님들의 옛 번역들을 한 줄 한 줄 참고하고 원문과 대조하면서 이 책을 새롭게 번역했다. 그리고 또 초벌 번역을 덮어놓고 오랜 동안 마음속에 청춘의 시간을 발효시킨 다음 다시 처음부터 손질하는 데 몇 해가 걸렸다.”
이러한 인연을 통해 『지상의 양식』은 지드의 독특한 형식과 유려한 문체를 완벽하게 살려낸 김화영의 번역으로 민음사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독자 리뷰]
■[지상의 양식] 정말 이 책을 버릴 수 있을까
깐 | 2012-07-26
대학 때 좋아하던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던 이야기 중 하나는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과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대한 추천이었다. 철학 전공이었지만 불어 수업을 들은 덕에 불문학과 가까이 지내셨다고 했던 것 같다. 해가 갈 때마다 선생님의 건강이 진지하게 염려될 정도로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었는데, 그런 분께서 앙드레 지드를 이야기할 때면 강의실 안 어떤 어린 청년들보다 눈이 반짝이곤 하셨다. 누군가가 빛나는 눈으로 말할 때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공유할 수 있게 되는 희열, 이것 때문에 굳이 다른 이를 졸라 책을 추천받게 되는 것 아닐까.
40년의 세대차와 더불어 무수한 환경적 차이가 있음에도 지드의 양식은 선생님 뿐만 아니라 내게도 아주 가치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19세기 후반에 쓰인 <지상의 양식>과 20세기 초반에 쓰인 <새로운 양식>은 모두 성경의 시편을 떠올리게 하는 잠언집 같기도 하고, 스승이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글 같기도 하다. 기대했던 줄글 형식의 소설이 아니어서 집중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각각의 문장들에서 앙드레 지드의 사상이 분명하고 짙에 배어 있어 강력한 메시지로 와닿았다.
<지상의 양식>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추구한다. 직접 경험의 귀중함을 강조하고, 육체적 욕망 또한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살아 있는 매 순간에 실제로 자신의 본능대로 욕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권한다. 이후의 <새로운 양식>은 아무래도 지드의 나이가 지긋해진 이유도 있겠지만, 지상의 양식보다 인간에 대한 강한 믿음과 보다 넓은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삶을 소신있게 살 것을 주장하고,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확신한다.
앙드레 지드는 메날크의 입을 통해 자신의 책을 버리라고 말한다. 다소 선동적인 글인만큼, 나타나엘과 동일시 될 우리 자신이 그의 생각에 완전히 지배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삶의 태도가 여러 경우 중 하나에 불과함을 짚어내면서, 자신의 길은 자신만이 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리 비겁하지 않은 듯해도 자신을 믿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어서, 내 길의 초입인 지금은 얼마간 지드의 책을 부여잡고 있어야 하겠다. 나는 아직, 도저히 지드의 책을 버릴 수가 없다.
욕망하는 것은 득이 되고 또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도 득이 된다 ― 왜냐하면 욕망은 그렇게 함으로써 증가되니까. 내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나니, 나타나엘이여, 욕망의 대상의 늘 거짓될 뿐인 소유보다는 매번 욕망 그 자체가 나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느니라. (21쪽)
사람은 오직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행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최대한으로 많은 인간성을 수용할 것,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공식이다. (27쪽)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맨발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감각으로 먼저 느껴보지 못한 일체의 지식이 내겐 무용할 뿐이다. (39쪽)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그대가 길을 가다가 만나는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대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그대가 꿈꾸던 행복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대의 행복은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다면 ― 그리고 오직 그대의 원칙과 소망에 일치하는 행복만을 인정한다면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45쪽)
아! 청춘 ― 사람이 그것을 가지는 것은 한때뿐, 나머지 시간은 그것을 회상하는 것. (189쪽)
내 책을 던져버려라. 이것은 인생과 대면하는 데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자세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라. 너 자신의 자세를 찾아라.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 하지 말라.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 말하지 말고 ― 글로 쓸 수 있었을 것이라면 글로 쓰지 말라. 너 자신의 내면 이외의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은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에만 집착하고, 그리고 초조하게 혹은 참을성을 가지고 너 자신을 아! 존재들 중에서도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존재로 창조하라. (202쪽)
언어는 실제 삶에서 보다 더 많은 논리를 우리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잦고, 또 우리들 내면의 가장 귀중한 것은 표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부분이니 말이다. (270쪽)
동지여, 아무것도 믿지 말라. 증거가 없이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라. 순교자들이 흘린 피가 입증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형편없는 종교라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순교자들이 있었으면 하나같이 열광적인 신념들을 불러일으켰다. 신앙의 이름으로 사람은 죽고, 신앙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인다. 알려는 욕망은 의혹에서 생겨난다. 믿는 것을 그치고 앎을 얻도록 하라. 사람은 증거가 없을 때에만 강요하려 드는 것이다. 자기를 과신하지 말라. 강요당하지 말라. (286~287쪽)
동지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바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굳게 믿어라. 그대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삶도. 이승의 삶을 위안해주고 이 삶의 가난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어떤 다른 삶, 미래의 삶이 아니다. 받아들이지 말라. 삶에서 거의 대부분의 고통은 신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그대가 깨닫기 시작하는 날부터 그대는 그 고통들의 편을 더 이상 들지 않게 될 것이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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