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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김기택

금동원(琴東媛) 2016. 10. 21. 01:59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김기택 저 | 다산책방




 작가소개

 김기택(1957~)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꼽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갈라진다 갈라진다』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등이 있고 동화책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와 『방귀』를 펴낸 바 있다.




  책 소개


  시는 일과 밥에 붙들려 꽃 지는 줄도 모르는 나에게 다른 세계로 향하는 출구를 열어주었다. 시적 상상에 빠져 있는 동안은,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았다.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 있었고 막힌 것이 뚫리는 경험이 있었다. 차츰 이중생활에 익숙해져서 수시로 현실 공간에서 상상 공간으로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물론 내가 상상 공간에서 숨 좀 쉬었다고 삶의 조건이 조금이라도 바뀌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 나는 여전히 돈과 일과 힘 있는 손이 쥐고 흔드는 대로 휘둘렸으며, 순하게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다가 어수룩하게 당했으며, 아무리 달려도 생활은 거기서 거기였으며, 꽤 달렸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힘 있는 손아귀에 뒷덜미가 잡혀 있었다.
  하지만 시 쓰기를 통해 삶과 현실을 견디어내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시는 내 안의 정체불명의 괴물을 달래주었으며, 쓸모없으면서도 막무가내로 절실하기만 한 욕망을 허구의 공간에서 충족시켜주었다. 시는 지겹고 지루하고 틀에 박힌 일상이나 닳고 닳도록 보아서 아무런 감흥도 없는 것들을 두근거리며 이제 막 처음 보는 것 같은 신선한 ‘첫 경험’으로 하게 해주었다. 답답하고 좁은 시야와 숨구멍을 확장시켜주었다.--- p.10

  하루 종일 말을 하고 나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내 말’이 하고 싶어진다. 그러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판단하거나 오해하거나 득실을 계산하는 귀가 아니라 허공처럼 그냥 다 들어줄 수 있는 가상의 귀가 있어야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어줄 흙구덩이와 바람과 숲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은 말이되 음성이 없고 혀가 없고 발음이 없다. 그 말은 말하는 자의 감정이나 정서는 많지만 말하려는 내용은 별로 없다. 그 말은 공기를 진동시켜 작동하지 않고 몸을 진동시켜 몸 안에서 작동한다. (중략)
  시는 자기 자신을 위한 말이다. 내 안에는 지치고 외롭고 괴로운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는 끊임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는 내가 내 안의 수많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 말은 말로 지친 말을 쉬게 하는 말하기이며, 말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말하기이기도 하다. 내 안에서 들끓는 말을 오랫동안 숙성시키면, 말의 독기와 냄새와 상처는 맛과 향기로 변하면서 남에게 위안을 주는 ‘참 좋은 말’이 될 것이다. --- p.60~61

  나는 전원주택은커녕 한 평 시골 땅도 없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갖고 싶었던 은신처는 외부가 아닌 내 몸 안에다 마련해야 했다. 바로 시 쓰는 일.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혼자 있어도 내 안의 수많은 ‘나’와 이야기하느라 별로 심심하지 않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가 지루하고 심심한 경우가 많다. 여럿이 같이 있어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단어와 문장을 고를 때 오히려 외로워진다. 그러나 나와 대화할 때는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오래된 친한 친구와 같이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유롭다.
  (중략)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다보면 다시 혼자 있는 공간이 그리워진다. 혼자 상상하는 일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바로 내 은신처로 가는 일이다. 바로 ‘지도에 없는 집’이다. 답답하다고 숨 막힌다고 아무 때나 아무 곳으로나 훌쩍 떠날 수는 없다. 생각만 해도 숨이 크게 쉬어지는 곳, 심장이 두근거리고, 기운이 솟는 곳을 마음속에 마련해둔다면 어떨까? 투명인간이 되어 잠시 세상에서 잠적하고 싶을 때, 죽은 듯 이 세상에서 잠시 없어지고 싶을 때, 시공간의 제약 없이 바로 떠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마음도 하나의 생태계이니 세상이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순수한 공간이 필요하다. 물론 이 공간은 허구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곳이다. 시는 그런 곳에 집 짓는 일을 좋아한다
--- p. 233



  출판사 리뷰


「사무원」시인 김기택, 삼십 년 만의 첫 산문집!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투시적 상상력의 힘으로 인간과 사물, 나아가 세계 전체의 물질적 본질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시인’ 김기택. 그는 1989년 등단하여 삼십 년 정도의 시작 활동을 해왔지만, 문인들 중에서도 시집을 발표하거나 시에 관한 칼럼을 쓰는 일 외에는 별도의 활동을 하지 않아 사생활이 잘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김기택의 시 한 편 정도는 인상 깊게 기억하고, 또 좋아하는 시인 중 그의 이름을 꼽기도 할 것이다. 김기택 시인은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를 소개한 신작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를 집필하며 시 감상과 더불어 자전적인 이야기나 체험적 시론, 삶에 대한 이런저런 잡생각들을 덧붙였다고, 그러므로 “나의 첫 산문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라고 밝힌다.

  중학생일 때 짝의 집으로 놀러간 적이 있다. 친구가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데 내 몸은 전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여름인 데다 양말도 귀해서 맨발에 운동화를 신고 다녔는데, 집에 들어가자면 신발을 벗어야 했고 내 발을 보여주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 내 발을 도저히 보여줄 수 없었다. (중략) 어렸을 때 발에 맞는 신발이 없어 작은 신발을 억지로 신다보니 발가락이 심하게 뒤틀리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친구 집에 들어가는 걸 포기했고 몹시 섭섭해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_본문 52쪽에서

  조성환은 일 년 선배였다. 『수호지』에 나오는 무송의 작고 못생긴 형 ‘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까불이였다. (중략) 그에게는 죽음도 어릴 때 맞았던 매와 같았을까. 매를 피하던 그 잔꾀로 죽음에게도 빌었을까? 저승사자의 몽둥이에는 눈도 귀도 달려 있지 않았을 것이고 동정심도 없었을 테니 그 연기가 참으로 딱했을 것이다. 조성환이 맞았을 때, 나도 거의 그 매를 함께 맞았다. 나는 그 애처럼 영리하게 매를 피하지 못했다. 그때는 착하게 사는 것만이 조금이라도 매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는데, 몽둥이 앞에서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내 시를 보며 나도 조성환처럼 삶의 폭력과 고통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_본문 288~289쪽에서

  김기택 시인이 “자꾸 옛날얘기 하는 게 고리타분한 것 같아서 쓰지 않으려고 했”던 어디서도 밝힌 적 없는 남루하고도 보잘것없으며 누추한 과거는, 언제든지 부르면 다가와 잃어버린 것들을 채워주고 고단한 시간들을 위로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추억이 “위로와 평안을 주지만, 때로는 현실을 견디고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 “시 속에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즐거움으로 바꾸는 에너지”가 들어 있다고, 참으로 그다운 말투로 담담히 눌러 적는다.

  “일과 밥에 붙들려 꽃 지는 줄도 모르는 나에게
  시는 다른 세계로 향하는 출구를 열어주었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꼽추」「가뭄」이 당선되어 등단했을 때, 김기택은 그의 대표시 이름처럼 ‘사무원’이었다.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의자고행을” 해야만 되었던 월급쟁이로, 눈만 뜨면 출근하는 무감각한 일상을 이십 년 넘게 살아오면서 그는 출근하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가만히 있어도 다 알아서 깨워주고 면도와 세수를 시켜주고 출근시켜주는 습관, 아무리 피곤하고 모욕적이더라도, 죽은 것과 다름없이 반복되는 기계적인 삶이라는 회의가 들어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어주는 불감증…… 밤늦게 혼자 사무실에 불을 밝히고 있을 이 땅의 모든 직장인들은 고단한 마음의 위로를 어디에서 받고 있을까.

  김기택 시인은 시 속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아무리 시 쓰기가 즐겁더라도 직장 생활과 병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 시집을 꾸준히 내오며 시를 통해 삶과 현실을 견뎌내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여행하다 좋은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 가족이 먼저 생각나듯, 좋은 시를 읽을 때도 여럿이 나누면 즐거움이 얼마나 커질까 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는 등단 30년 만에 첫 산문집 『다시, 시로 숨 쉬는 그대에게』를 펴냈다.

  삼십 년 가까이 시를 써오면서 시에 많은 빚을 졌다. 가진 것도 없는 데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 많은 나에게 시가 찾아와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혼자 있어도 내가 모르는 내 안의 수많은 나를 소개해주고 만나게 해주었으며 나 혼자서도 여럿이 함께 있는 것처럼 풍요로운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아닌 것 같은 나,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는 반가움과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었다. 시는 삶을 압박하고 들볶는 괴로움을 이상한 기쁨으로 바꾸는 마술적인 장치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현실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도 시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즐거웠다. _프롤로그에서

  김기택 시인은 밥벌이에 지친 이들이 고달픈 마음을 시로 달래기를 바란다. 그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시 속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숨이 크게 쉬어지는 곳, 심장이 두근거리고 기운이 솟는 곳, 그런 곳이 시 속에 있다.

  그가 즐겨 감상한 51편의 시들은 내면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주거나 사물이나 자연에 숨어 있는 나를 만나게 해주거나 지리멸렬한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확 바꿔 보게 하거나 자신이 받은 상처를 즐거움으로 바꾸는 에너지가 있는 시들이다. 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네 부분으로 나누어, 제1부에는 봄기운이 나거나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시들을, 제2부에는 여름의 강렬한 햇빛처럼 열정이나 힘이 드러나는 시들을, 제3부에는 차고 신선한 가을바람이 느껴지거나 삶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게 하는 시들을, 제4부에는 겨울의 추위에 맞서 고통을 견디는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하는 시들을 모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몹시 힘들고 위축되어 있다면 그것은 스프링이 한껏 움츠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능하거나 보잘것없는 것같이 보인다면 그것은 제 안의 꽃이 터질 순간의 환희를 기다리는 스프링이 최대한 움츠리고 있기 때문이다. _본문 81~82쪽에서

  김기택 시인이 시와 나눈 절실한 연애담은 고단한 인생사를 버텨내다 무뎌진 가슴을 다시 한 번 요동치게 만들고, 움츠러든 어깨를 쫙 펴게 하고, 오래된 친한 친구와 같이 있는 것처럼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누리게 해준다. 투명인간이 되어 잠시 세상에서 잠적하고 싶을 때, 죽은 듯 이 세상에서 잠시 없어지고 싶을 때, 시공간의 제약 없이 안전하고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곳을 찾는 이들이라면 김기택 시인의 첫 산문집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은신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