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독으로부터 찾는 해답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김재혁 역 | 고려대학교출판부
2천 편이 넘는 시작품과 많은 수의 산문을 쓴 릴케는 또한 유럽 서간문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양의 편지를 남겨 놓았으며, 지금까지 7천 통이 책의 형태로 출간되기도 했다. 1902년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한 시인 지망생이 자신의 습작시들과 함께 속내를 털어놓는 한 통의 편지를 28세의 시인 릴케에게 보낸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두 사람 간의 편지는 1908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편지들에서 드러나는 릴케는 한 선배 시인으로서의 조언자이지만 또한 자신의 문학, 시에 대하여 진솔하게 고백하는 친구이기도 하다.‘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이 편지의 진정성은 교훈적인 가르침과 더불어 시인의 이러한 공감과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에 있다.
○작가 소개
1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이후 로베르트 무질의 첫 장편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의 배경이 되는 육군고등사관학교로 옮기나 결국 자퇴한다. 1895년 프라하대학에 입학하고서 1896년 뮌헨으로 대학을 옮기는데, 뮌헨에서 릴케는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시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독일식 이름인 라이너로 바꿔 필명으로 사용한다. 1901년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만나 결혼한다. 1902년 파리에서 로댕을 만나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는다. 클라라와 헤어진 릴케는 로마에 머무르며 《말테의 수기》를 완성하였으며, 이후 1911년에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후작 부인의 호의로 두이노 성에서 겨울을 보낸다. 이곳에서 바로 전 세계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릴케 만년의 대작이며 10년이 걸려 완성할 《두이노 비가》의 집필을 시작한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릴케는 스위스의 뮈조트 성에 머무는데, 이곳에서 그는 폴 발레리 등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낸다. 발레리의 작품을 독어로 번역하고 또 직접 프랑스어로 시를 쓰던 시인은 1926년 백혈병으로 스위스의 발몽 요양소에서 죽는다.
○ 목차
첫 번째 편지
1903년 2월 17일 파리에서
두 번째 편지
1903년 4월 5일 피사 근교의 비아레조에서
세 번째 편지
1903년 4월 23일 피사 근교의 비아레조에서
네 번째 편지
1903년 7월 16일 브레멘 근교의 보르프스베데에서
다섯 번째 편지
1903년 10월 29일 로마에서
여섯 번째 편지
1903년 12월 23일 로마에서
일곱 번째 편지
1904년 5월 14일 로마에서
여덟 번째 편지
1904년 8월 12일 스웨덴의 보레비 고르 프레디에서
아홉 번째 편지
1904년 11월 4일 스웨덴의 후른보리 욘세레트에서
열 번째 편지
1908년 성탄 이틀째 날에 파리에서
○책 속으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뿌리를 뻗어 나오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글쓰기를 그만두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십시오. 조용한 밤중에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말입니다. ‘나는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하는가?’ 그러고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대답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만일 마음속 대답이 그렇다고 하거나, 그 진지한 물음에 대해 글을 쓰지 않으면 차라리 죽을 수밖에 없다는 확고하고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다면, 당신의 생애를 그 필연에 따라 만들어가십시오. 하찮고 쓸데없는 순간 하나하나까지 당신의 모든 순간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의 표식이자 증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연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게 될 것들을 모방만 하지 말고 말로 직접 표현하도록 노력해보십시오. _ p.18~19
당신의 일상이 비록 빈곤해 보일지라도 그것을 탓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탓하십시오. 창조하는 자에게는 가난도 없고, 지나쳐버려도 좋을 만한 빈곤한 장소도 없는 법이기에 일상의 풍요로움을 불러낼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시인이 되지 못하는 당신을 자책하라는 말입니다. 설령 당신이 감옥에 갇혀 세상의 소음조차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소중하고도 풍요로운 추억의 보물창고가 있지 않습니까? 그곳으로 주의를 돌리십시오. 잊고 있었던 아득한 과거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려고 애쓰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개성은 단단해지고, 고독은 넓어져서 어두컴컴한 방이 될 것이며,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소음은 멀리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면을 향한 전환과 자기 세계로의 침잠으로부터 시가 나오게 되면, 당신은 그 시에 대해 누군가에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_ p.20
당신은 절대로 아이러니에 정신없이 빠져들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창작력이 부족한 순간에는요. 창작력이 넘쳐나는 때는 인생을 이해하는 수단으로써 그 아이러니를 이용해보도록 하십시오. 순수하게 사용한다면 아이러니 또한 순수합니다. 그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아이러니에 지나치게 친숙해졌다고 생각되거나, 아이러니와 더 친밀해지는 것이 두렵다면, 그때는 위대하고 진지한 대상으로 눈을 돌리십시오. 그러면 아이러니의 존재는 보잘것없이 무력해질 것입니다. 사물의 깊이를 추구하십시오. 그곳까지는 아이러니가 좇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것의 가장자리에 접근했을 경우에는 거기에서 얻은 견해가 당신 존재의 필요성에서 기원한 것은 아닌지 곧바로 확인해보십시오. 진지한 사물의 영향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는 아이러니가 우연한 것일 경우에는 당신에게서 멀어지게 될 것이고, 그것이 정말로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라면 진지한 도구가 되어 당신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한 가지 수단이 될 것이니까요. _ p.30~32
모든 논쟁이나 비평, 또는 해설에 대해 언제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감정이 옳다고 믿으십시오. 설령 당신이 틀렸다 하더라도 당신의 내면이 자연스럽게 성장하면서 서서히 당신의 인식이 바뀔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이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당신만의 조용한 발전이 되도록 내버려두십시오. 그런 발전은 모든 진보와 마찬가지로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와야 하며, 그 무엇으로도 강요하거나 채찍질을 가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잉태되었다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상과 감정의 싹이 마음속과 어둠 속, 형언할 수 없는 곳, 무의식 속, 그리고 이성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완성되도록 한 채, 크나큰 겸허함과 인내로 새로운 명료함이 태어날 시기를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예술적으로 살아가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예술을 이해하든 아니면 직접 창작을 하든, 이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_ p.42~44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당신은 지금 모든 것의 출발점 앞에 서 있지요. 그래서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제발 당신의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모든 문제에 대해 부디 인내심을 가지고, 그 문제 자체를 꼭 닫힌 방이나 낯선 언어로 쓰인 책처럼 사랑하시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지금까지 그 해답을 가지고 살아보지 않으셨기에, 당신에게 그 해답이 주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살면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그 문제 속에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서서히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순간 그 해답 속에 들어가서 살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그토록 복되고 순수한 삶을 만들어내고 이루어낼 가능성을 내부에 지니고 있을 겁니다. 그곳으로 당신 자신을 이끌어 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벌어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전폭적으로 믿고 받아들이십시오. 다만 당신의 의지에서, 혹은 당신 내면의 그 어떤 필연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하며, 그런 일을 받아들이되 결코 미워하지 마십시오. _ p.55~56
성(g)이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네,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이미 속해 있는 어려운 것으로서, 진지한 것은 거의 모두 어려우며 또 모든 것은 진지합니다. 당신이 그 점을 인식하고 당신의 본성과 태도를 토대로, 당신의 경험과 유년 시절의 힘을 토대로 성(g)에 대해(인습과 관습에 물들지 않은) 온전히 당신만의 관계를 자신 속에서 얻게 된다면, 당신은 당신의 가장 고귀한 소유물인 성에 대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당신의 가치를 잃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육체적인 쾌락은 감각적인 체험으로서 순수한 직관과 다르지 않으며, 또 달콤한 과일이 입안을 가득 채울 때 느끼는 순수한 감정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위대하고 무한한 체험이며 세계에 대한 지각이고, 모든 지식의 충만이자 광휘입니다. _ p.56~58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하게 될 모든 것을 고독한 사람은 지금부터 미리 준비하면서 실수가 적은 자신의 두 손으로 세워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찾아오는 고통에 대해 아름답게 들리는 불만으로 대신하며 참고 견디십시오. 당신과 가깝던 사람들이 멀어져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당신의 주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이웃이 멀어진다면 당신의 영역은 이미 성좌(j X)에까지 도달하도록 매우 넓어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게 대하십시오. 그들 앞에서 확고하고 침착할 것이며, 당신의 회의로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당신의 확신이나 기쁨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그들과 함께 단순하면서도 진실한 공통점을 찾도록 하십시오. 당신 자신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해도 이 공통점까지 반드시 달라져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_ p.63~64
고독이란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크고도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이들에게 고독한 시간이 오게 마련이지요. 비록 진부한 싸구려 연대감이라고 해도 고독을 그 연대감과 바꾸고 싶은 때도 있고, 형편없는 사람도 좋고 그 누구라도 좋으니 그들과 겉치레라도 조금이나마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시간들이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자라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 슬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은 고독 하나뿐이지요. 크고도 내적인 고독 말입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가 몇 시간이고 누구와도 만나지 않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눈에 중요하고 크게 보이는 것들에 얽매여서 어른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을 때 아이들이 고독했던 것처럼, 어른들이 너무나 바빠 아이들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때 아이들이 느꼈을 그 감정처럼, 그렇게 고독해야만 합니다. _ p.79~81
그리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신을 당신이 이제 더이상 믿을 수가 없어서 어린 시절을, 또 그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는 소박함과 고요를 생각해보는 것이 두렵고 고통스럽다면, 친애하는 카푸스 씨, 당신이 진실로 신을 잃어버린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혹시 당신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신을 믿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런지요? 도대체 언제 신을 믿었던 적이 있었던가요? 어른들도 간신히 감당할 정도요, 늙은이들은 그 무게에 짓눌리게 되는 그 신을 혹시 어린아이가 지니고 있다고 믿으시는 건 아닙니까? 만일에 그럴 수 있다고 믿으신다면, 과연 누가 그 신을 진실로 가졌다가 작은 돌멩이를 잃어버리듯 그렇게 간단히 잃어버릴 수가 있을런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신을 가졌던 자가 그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_ p.86
사랑한다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사랑은 어려운 것이니까요. 인간과 인간이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것, 즉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그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은 그저 준비 과정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모든 것에서 초보자인 젊은이들은 아직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배워야만 하지요. 혼신을 다해, 모든 힘을 다해, 고독하고 걱정하며 위로 치닫는 마음으로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배우는 시간은 언제나 길고도 폐쇄적인 기간이기에, 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것이고, 고독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승화되고 심화된 홀로됨이지요.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며 헌신해서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완성되지 않은 사람, 정리되지 못한 사람과의 하나 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_ p.97~99
여인들은 더욱 직접적이고 생산적이며 한층 신뢰로 가득 찬 삶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살고 있는 여인들은 근본적으로 남성보다 더 성숙한 인간이고 더 인간적인 인간임이 틀림없습니다. 남성들은 잉태와 산고의 고통으로 인해 단 한 번도 삶의 하층까지 내려가보지 못했으며, 오만하고 경박하고 성급하여 자기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낮게 평가하는 무리가 아닙니까. 만일 여인들이 외적인 신분의 변화를 겪으며 여성만의 것이라는 인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런 고통과 굴욕을 견디어온 여인의 인간상이 밝게 드러날 것이고, 아직까지도 이를 느끼지 못하던 남성들은 그 사실에 깜짝 놀라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북쪽 나라들에서는 이미 믿을 만한 징조가 엿보이고 있지요. 언젠가는 그들의 이름이 더이상 남성의 대립적인 존재만을 뜻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뜻하는 그 무엇이 될 것이며, 어떤 보완이나 한계로 여겨지지 않고, 자신의 삶과 존재만을 생각하는 소녀와 여인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즉 여성 인간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_ p.106~108
다른 소리들을 덮어버리기 위해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슬픔은 위험하고 나쁠 뿐입니다. 그것은 피상적으로 대충 치료받는 질병처럼 다시 나타날뿐더러, 잠시 멈추었다가 더욱 무시무시하게 돌발하지요. 그러고는 내부에서 응어리가 생겨 생명 있는 것이 되면 삶이 으깨어지고 타락해버려서 도저히 거기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지식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으로 멀리까지 내다보고 우리의 예감 이상으로 조금 더 밖을 내다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좀더 깊은 신뢰감을 가지고 슬픔을 기쁨처럼 견디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슬픔이란 어떤 새로운 것, 어떤 미지의 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감정은 깜짝 놀라 멍하니 입을 다물며, 우리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은 뒤로 물러서고 거기에서 고요가 생겨나며,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것이 그 가운데 서서 침묵하게 됩니다. _ p.115~116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그것이 미치는 범위 이상으로 넓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모든 것, 심지어 전인미답( ???z)인 것까지도 그 속에 있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와 마주칠 수도 있는 가장 이상한 것, 가장 놀라운 것, 가장 불가사의한 것에 대해서 용기를 갖는다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단 한 가지의 용기입니다. 인간들이 이런 의미에서 비겁했다는 것은 삶에 무한한 해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현상이라고 부르는 체험,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따위와 같이 우리에게 몹시 친근한 이런 모든 것들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거부를 통해 삶에서 쫓겨남으로써, 잘만 하면 우리가 파악할 수도 있는 의미들이 오히려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물며 신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개개인의 존재만 더욱 빈약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또한 그 두려움 때문에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_ p.124
그리고 당신의 회의도 길만 잘 들이면 당신의 좋은 특성이 될 수 있습니다. 회의는 지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혹시 회의가 당신의 무엇인가를 파괴하려거든 무엇 때문에 그것이 그토록 미운가를 그 회의에 물어보도록 하십시오. 회의에 증거를 요구하고, 회의를 시험해보십시오. 그러면 회의가 아마도 할 말을 잃고 당혹스러워 하거나 어쩌면 맹렬히 대드는 것을 보게 되실 겁니다. 그래도 그만두지 마시고 논증을 요구하면서 신중하고 일사불란하게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언젠가는 회의가 파괴자에서 당신의 가장 훌륭한 조력자로 변할 날이 올 겁니다. 어쩌면 당신의 삶을 구축하는 데 가장 현명한 조력자가 될지도 모르지요. _ p.140~141
그런 소음과 움직임 속에서도 자리를 잡고 있는 고요라면 그건 매우 커다란 것일 겁니다. 게다가 멀리 떨어진 대양의 존재가 거기에 덧붙여지고 선사시대의 조화 속에서 깊은 음조도 함께 어울려 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당신께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믿음을 가지고 참을성 있게 그 어마어마한 고독이 당신 자신에게 작용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것뿐입니다. 이제는 그 고독을 당신의 삶에서 더이상 지워버릴 수도 없습니다. 고독은 당신이 체험하고 행하는 모든 것과 함께 찾아오면서, 익명의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며 조용히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내부에서 조상들의 피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우리 자신의 피와 섞여서 유일한 것, 반복될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내서 우리 삶에서 모든 변화를 이루어내듯이 말입니다. _ p.146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고독한 인간에게 건네는 릴케의 격려!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한 시인 지망생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열 통을 모아 출간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새롭게 번역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릴케의 사후 1929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릴케의 사상이 아름다운 문체로 쓰여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번역된 고전이다.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 신, 예술, 사랑과 성, 인생과 죽음, 고독에 대한 릴케의 생각이 담긴 이 열 통의 편지는 시인을 꿈꾸는 청년에게 들려주는 조언인 동시에 릴케의 자기 고백이자 다짐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비단 릴케가 살았던 시대의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입시와 취업 경쟁에 내몰려 삶의 의미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고독한 젊은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조언이자 격려다. 릴케의 편지야말로 경쟁에 내몰리는 삶에 지친 우리의 지난한 갈증을 풀어줄 시원하고 맑은 샘물이 될 것이다.
릴케는 1902년에서 1908년까지 7년에 걸쳐 이탈리아ㆍ프랑스ㆍ스웨덴 등지를 여행하면서 청년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열 통의 편지에서 릴케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다. 릴케는 시인으로서의 길을 고민하고 있는 카푸스에게 자신의 밖을 바라보지 말고 자기 자신 속으로 파고들어 가라고 조언한다. 그러고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욕구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정말로 글 쓰는 일을 그만둔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를 권한다. 자기 자신의 고독 속으로 파고든 뒤에야 설령 예술가의 길이 아니라 해도 독자적인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릴케는 말한다. 릴케가 카푸스에게 전하는 이 진심 어린 충고는 오늘날 인생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조언이라고 할 수 있다.
내면의 깊은 곳을 두드리는 릴케의 편지!
릴케는 편지에서 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성(g)은 인간에게 이미 속해 있는 어려운 것이며 동시에 가장 고귀한 소유물이라고 말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성을 삶의 지친 자리를 메우려는 자극이나 단순한 기분 전환용으로 이용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만 성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위대하고 무한한 체험이며, 세계에 대한 지각이라고 말한다. 릴케가 살았던 시대는 성을 남성만의 소유물로 여기고,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던 시대였음에도 릴케는 성에 대해 더 높은 차원의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릴케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 어우러져서 그들에게 속한 어려운 성을 소박하면서도 진지하고 참을성 있게 함께 짊어지고 나갈 때, 세계의 위대한 쇄신이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성에 대한 릴케의 생각은 성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아름다운 조언이다.
편지를 통해 릴케는 내면의 탐구와 성에 대한 것뿐 아니라 예술ㆍ사랑ㆍ인생에 대해서도 카푸스에게 아낌없이 조언한다. 릴케에게 예술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릴케는 편지에서 예술은 끝없는 고독 속에서 나와야 하며,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는 영속적인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쉬운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어려운 것 중에서도 사랑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일이며, 개개인이 성숙해지고 타인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숭고한 계기라고 릴케는 말한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열 통의 편지 속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간이 겪는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릴케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따라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 읽고 나면 한층 더 성숙해진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릴케는 20세기에 살았지만 그의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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